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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헤다 Sep 15. 2022

심부름 강박증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희생이 요구된다.

 "난 심부름 강박증이 있다"


 나는 내 딸들에게 심부름을 잘 시키지 않는다. 아니, 거의 시키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더 맞다. 설령 건너편에 있는 것을 좀 전해 달라는 것도 어지간해선 요청하지 않는다. 가능하면 그냥 내가 가져온다. 반대로 딸들은 내게 심부름을 잘 시킨다. 난 물 한잔을 먹어도 그냥 내가 먹는다. 하지만 딸들은 아빠에게 당연하게 이야기한다. "아빠, 나 물 좀."

 그렇게 키웠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서는 그게 당연한 문화다. 잘못 키우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 그렇게 아빠가 가져다준 물을 먹어본 경험 덕분에 식사할 때 알아서 아빠의 물까지 가져다주곤 한다. 그리고 일단 뭘 요청하든 감사 표시를 꼭 한다. 그와는 별개이지만 자기 할 일은 또 알아서 잘한다. 그와 같은 집안에서의 사소한 일을 심부름이라는 카테고리에 묶기에는 무리일 수도 있다. 심부름은 좀 더 큰 미션일 수 있다. 집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뭘 사 온다던지 그런 것들 말이다. 집안에서의 사소한 것도 잘 시키지 않는데, 그런 미션은 더욱 시키지 않는다. 지금 첫째 아이가 중학생이지만 난 그런 심부름을 시킨 적이 단 한차례도 없다. 심부름시키는 것에 대해서 강박증이 있나 보다.


 어린 시절 내 삶의 한 조각을 살펴보면 심부름 강박이 있는 것이 맞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초등학생 때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들여서 도박을 했다. - 이 사람들의 정체는 잘 몰랐다. 내게는 그냥 아저씨들이었다. 아마도 친구가 아니었을까? 주종목은 고스톱이었다. 어디서 구했는지는 몰라도 겉면 촉감이 까슬까슬한 초록색 군용 담요도 있다. 요즘 군용 모포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정말 까칠까칠했다. 어린아이의 손길에 따가울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화투랑 궁합이 완벽했나 보다. 착착 붙는 것도 최고이고 색깔도 최적화된 아이템이다.
 초등학생인 나는 그 도박판에서 심부름을 하는 스텝이었다. 재떨이가 가득 차면 그걸 비우는 일을 하고, 박카스와 같은 음료수를 사서 선수들 옆에 채워 놓는 일도 했다. 그리고 담배가 떨어지면 담배를 사러 가야 했다. 방안에는 뿌옇게 담배연기가 가득했고 초등생 남자아이는 그 안을 오가며 일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 <우영우>에서 나온, 도박판에서 로또 당첨된 이야기를 다룰 때 등장한 일명 "재떨이"같은 역할을 한 셈이다. 요즘 같으면 뉴스에 나올만한 상황이다. 초등학생 자녀를 도박판의 시다바리(?)로 일을 시킨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장면이다.
 하지만 난 그 일을 하는 것이 좋았다. 용돈 벌이가 제법 쏠쏠했기 때문이다. 담배 심부름을 하면 잔돈으로 생긴 동전 몇 개가 내 수입이 될 수 있었다. 난 50원짜리 빨간색 색연필도 없었다. 연필도 몇 자루 없어서 볼펜통에 끼워서 써야 했다. 그 색연필을 사야 해서 아버지가 일하는 택시회사로 1시간을 걸어서 갔지만 매번 허탕이었다. 그래서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집에서 도박판이 벌어지면 나에겐 학용품과 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셈이었다.
 하루 종일, 그리고 밤이 늦도록 그렇게 심부름을 한다. 잠을 자고 일어나도 도박이 계속될 때도 있었다. 그 사이 담배연기 자욱한 곳에서 잠들었던 탓에 목이 칼칼했지만 일어나자마자 재떨이를 다시 비우고 음료수를 바꿔 놓고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곧장 근처 구멍가게에 가서 담배를 또 사 온다. 당시에는 담배 구매할 때 나이를 따지거나 보거나 그러지 않았다. 아빠가 시킨 심부름인데 어쩌겠는가?


 그런 부수입(?)이 있는 심부름이 당연한 것처럼 된 것일까? 아니면 그때는 원래 다 그랬을까? 아버지는 도박판이 집에서 벌어질 때가 아니어도 내게 같은 일을 시켰다. 재떨이를 비우는 일도 그랬고 담배를 사 오는 심부름도 내가 계속 도맡아서 했다. 하지만 가장 난감한 심부름은 그게 아니었다.

 가장 하기 싫었고, 지금 생각해도 별로인 심부름은 바로 외상 심부름이다. 그것도 담배 외상 심부름. 어린이가 가서 담배를 외상으로 가져오는 거다. 정말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최악이다. 부모가 맞나 싶다. 돈을 주고 담배를 사 오는 것을 아이에게 시키는 것도 심각하지만 외상은 수치심을 배로 더 얹어주는 셈인 거다. 가게의 주인도 달란다고 쉬이 주는 게 아니다. 꼭 불편한 소리를 몇 마디 한다. 욕설을 하기도 했다.
 담배 외상 심부름도 어떤 면에선 애교에 가깝다. 지인이나 친척 어른이 다녀갈 때 나에게 천 원짜리 하나라도 주고 가면, 그 사람들이 가자마자 그 돈을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돈 아빠 좀 줄 수 있을까요?"

 "아빠가 우리 아들 사랑하는 거 알지?"

 다른 때에는 그렇지 않은데 돈 앞에서는 공손하게 존댓말을 한다. 더구나 그 타이밍에 사랑고백은 왜 하는가? 솔직히 그냥 뺏어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실제로 내 앞에 있는 존재는 힘도 세고 쉽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아도 겁나서 돈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에게 담배 외상 심부름은 어려운 일도 나쁜 일도 아니다. 자기 자신이 편하기 위해서 어린아이에게 어떤 일을 시키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 뿐이었으니깐.


 아마 나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 있을 거다. 아니 많을 것이다. 아니, 더 심한 일들을 겪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그 사람은 어떨까? 내가 그렇게 자라왔으니 내 자녀만은 그렇게 안 키우겠다는 사람이 있겠고, 반대로 똑같이, 아니 더 심하게 자녀를 향해 부정적인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군대나 직장에서 우리는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 선임에게 고통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그 위치에 가면, 자기가 받았던 것과 똑같이 하거나 오히려 그 이상으로 아랫사람에게 고통을 선사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이렇게 말한다.

 "야, 나도 너처럼 맞았어."

 "라떼는 더 심했어. 이 자식아!"


 반대로 내가 그 위치가 되면 그러지 않겠다며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이 있다. 혹자는 그럴 것이다.

 "옛날엔 다 그랬지 뭐, 지금과 시대가 달랐잖아?"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옛날에도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은 분명하게 있었다.


 억울함을 풀겠다고 내 억울함의 가해자와 똑같이 행동한다면, 그 억울함이 보상이 될까?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희생이 요구된다. 한 끼 밥을 사주려고 해도 돈과 시간이 희생되고, 편안하게 배려를 하려면 누군가는 - 나 자신일 경우가 가장 높다 -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셈이다. 나 편하자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과연 진짜 편안한 삶일까? 아니, 그런 사람에게 삶이라는 단어를 부여할 수나 있을까?


 그러고 보면 심부름 강박증과 같은 그런 강박증은 가지고 있어도 좀 괜찮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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