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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적 작가 시점 Apr 27. 2022

금괴 특수강도 공범으로 검거된 그녀, 진실은?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전화드리고 한번 찾아뵐게요!

2008년 여름 서울 서초경찰서 강력팀 사무실.

피해자 이 씨(58세)가 1kg 골드바 2개(당시 시가 7,200만원 상당)를 길거리에서 지인들에게 강탈 당했다는 다소 황당한 신고를 접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골드바를 감정 받아서 팔아 주겠다고 하여 가지고 나갔는데, 여자 1명을 포함한 3인조가 길거리에서 자신을 밀치고 금괴를 빼앗아서 택시를 타고 달아 났다는 것이다.


통신수사 등으로 범인들을 특정하고 대구와 서울에서 권 씨(55세)와 안 씨(50세, 여)를 각각 체포했으나, 나머지 공범 박 씨는 자취를 감추어 검거하지 못했다.


권 씨와 안 씨를 사무실로 데려와 추궁하자 범행 일체를 부인했다.


오히려 이 씨로 부터 골드바를 순순히 건네 받았다고 한다.

이 씨가 건설업에 사용한다며 200억 수표 사본(일명 자금표)을 구해달라고 하면서 자금력 증빙으로 골드바 2개를 주길래 이를 명동의 사채업자에게 건네주고 자금표를 구해 주려 했으나, 자신들도 골드바를 돌려 받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수표 사본인 일명 '자금표’는 자금력 증빙이나 입금확인증 구실을 하는 것으로 수표 사본에 지점장의 확인도장이 찍혀 있으며 1억원짜리 수표 한 장당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쪽 진술이 극명하게 대립하자 피해자가 당시 목격자가 있다며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목격자 조사 결과, 범행 장면을 직접 보지는 못하고 범행 직후 피해자가 길거리에 넘어져 있는 상황을 보았다고 했다.

하필 그 현장에는 cc-tv도 없어서 관련자들의 진술로만 실체적 진실을 확인해야 했다.


고민이 되었다.


양쪽의 진술을 다 들어 보아도 느낌은 피의자들의 말이 맞는 것 같은데, 목격자도 있고, 체포시한은 다가오고... - 체포를 하게 되면 48시간 내에 구속영장을 신청하든지 석방하든지 결정을 해야 한다.

pixabay image


다른 케이스와 달리 피의자들 면전에서 고민을 이야기했다.


“선생님들 말씀이 맞는 것 같은 심증이 듭니다. 하지만, 목격자도 있고 정황상 선생님들께 유리한 것이 없어서 고민입니다. 구속이든 석방이든 어떤 결과가 나오든 이해해 주십시오.”


어려울 때는 원칙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증거재판주의에 입각했다.

 

심증은 피의자들 말이 맞는 것 같지만...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고, 목격자도 있고, 특수강도라는 죄명, 피해액이나 증거인멸 가능성 등을 고려해 봤을 때 구속영장을 신청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구속영장 신청서 작성 등 구속 절차를 밟고 있던 다음 날 아침.

민원인 김 씨가 팀장인 나를 꼭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면담을 요청하였다.

보통 이런 경우 수사 대상자에 대한 청탁일 가능성이 커서 면담을 거절하려 했으나, 너무도 간곡히 부탁을 하기에 면담을 하게 되었다.


면담 결과... 사람 아니, 인간에 대한 배신감이 확 밀려왔다.

이 씨가 피해를 변제받기 위해 허위사실로 피의자들을 몰아 간다는 것이다.

자신 또한 자금표를 구하기 위해 도주한 박 씨에게 의뢰를 하였다가 피해를 보았는데, 이 씨가 자기처럼 강도 당했다고 신고를 해야 사건이 빨리 끝나니까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오늘 아침에도 이 씨가 전화를 걸어 왔길래 자기는 도저히 못하겠다고 생각 좀 해 보겠다고 전화를 끊고는 억울한 사람이 생기면 안될 것 같아 바로 경찰서로 왔다고 한다.


담당 형사에게 일단 구속영장 신청 절차를 멈추고, 석방 준비를 하도록 했다.


김 씨가 이 씨에게 전화를 하는 것을 옆에서 들어 보았다.


김: 사장님, 저 경찰서 왔는데요, 아까 말씀하신대로 하려고 하니 도저히 못하겠네요.
이: 이봐, 괜찮다니까 나 보라고. 그냥 강도 당했다고 해야 사건이 빨리 끝난다니까.

김: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잖아요. 저 그냥 사기로 고소하려고 하는데요.
이: 아이 참, 그냥 강도로 신고해요.

김: 그렇게 하면 그 사람들이 억울하게 피해 보잖아요. 그냥 여기서 다 사실대로 말할게요.
이: 참 내. 그러면 내가 또 다른 목격자 만들어 내고 해야 해서 골치 아프다니까.

나: (휴대폰을 바꿔서) 이○○ 씨! 저 천 팀장인데요.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이: (놀라며) 아... 팀장님, 그게... 그게... 아니구요.

나: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이제는 역으로 무고죄로 들어갈 걱정하셔야 할 겁니다.


그랬다!


사기죄로 고소하면 통상 피의자에게 출석요구서를 발송하고 출석요구에 응하면 조사를 하고, 소재불명일 경우 기소중지(지명수배) 처분을 하여 수사기간이 최소 2개월 정도 걸리는 것을 안 이 씨는 강도로 신고할 경우 강력사건으로 분류되어 신속히 처리되는 맹점을 악용하여 목격자도 만들고, 허위로 신고를 한 것이었다.


피의자들을 석방한 이후, 이 씨를 상대로 무고죄로 입건을 하여 구속영장을 신청하였으나, 판사의 정상 참작으로 인해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


이 씨의 말에 놀아났다는 생각에 씁쓸했지만,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게 된 사건이었다.



한편, 그렇게 나의 인간적인 번뇌와 고민을 듣고 석방되었던 안 씨는 다음 날 문자를 연거푸 3차례 보내왔다.

pixabay image


안 씨의 딸은 모친의 불구속을 위해 수천만 원에 합의를 봐야 한다는 이 씨의 반 협박(?)에 대신 변제한다는 합의서를 작성하려 했는데, 신중을 기해서 생각해 보라는 나의 권유를 받아 결국 합의서는 작성하지 않았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나에게 더더욱 감사함을 느꼈을 것이다.


갑자기 전화를 드리기도 실례될 거 같아 이렇게 문자를 보냅니다.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아무튼 잊지 않을게요.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전화드리고 한번 찾아뵐게요.
항상 기억하며 기도할게요.



대다수의 민원인이 그렇듯 안 씨는 그 후로 연락이 없었다. 나도 이제는 그 분의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고 하는 건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안 씨는 언제든 내가 생각날 일이 있으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고, 그러한 민원인들의 감사함이 나의 이 일에 대한 열정의 원동력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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