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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Dec 28. 2022

모독 5

경창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구급차와 경찰차가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점심시간에 종철과 그의 일당인 용석, 민석이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구급차가 도착했을 당시 종철과 용석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고, 민석은 구급차를 타고 이송 중에 사망했다.

 부검 결과 청산가리에 의한 심정지란다. 즉 독살을 당했다는 것이다.

 사건은 의외로 신속하게 종결되었다. 숨진 아이들과 대립 관계로 있던 두 소년의 소행으로 간주하고 긴급 체포했다.

 용의자들은 범행을 강력히 부인했지만, 소년들의 자취방에서 범행에 사용된 것과 똑같은 조성의 청산가리를 발견했다.

 그 둘은 가족들도 포기했던지 한 아이의 부모가 얻어준 자취방에서 동거하고 있었다.

 사건 담당 형사의 말에 의하면 인간쓰레기의 표본이 따로 없었다고 말했다. 죽은 아이들과 거의 동일한 행실을 일삼고 다녔다. 중학생 주제에 온갖 종류의 못된 짓을.

 용의자 부모들은 꽤 비싼 변호사를 선임했다.

 유능한 변호사는 사법부와 교섭해 범행을 인정하는 대가로 소년원 송치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아냈다.




경창


 청산가리 살인 사건 1년 전, 미선은 교사용 화장실에서 출산을 시도했다. 이어 그 사실을 은폐하려 변기통으로 아이를 밀어 넣다가 보건 교사와 몰려든 학생들에게 제지당했다.

 치밀하게 계획했지만, 산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댔다. 몰려온 사람들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피를 덮어쓴 두 아이는 구급차에 실려가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다.

 미선은 경찰에게 애를 가지게 된 경위를 거짓으로 진술하며, 종철과 그의 일당들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켰다. 

 미선은 영아 살인미수로 입건되었고, 보호처분을 받고 소년원으로 송치되었다.

 그 핏덩이 같은 아기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보육시설에서 거두어 갔다고 들었다.

 당시 미선의 담임이었던 나는 형사들에게 미선의 정신이상 조짐과 남자 문제 같은 듣기 거북한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형사들은 미선이 사건 진술을 할 때, 간혹 흰자위를 보이며 헛소리를 한다고 했다.

 어쨌든 나는 미선이 걱정되었다.

 면회 전 딱 한 번 미선의 집에 방문했다. 낡은 양옥이었다. 대문에 대나무가 꽂혀 있고 빨간색 붓글씨로 '중학생 신동 도사'라고 적힌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할머니는 필요 이상으로 수다스러웠다.

 나는 면회 갈 생각인데 소지품을 챙겨도 되겠냐는 질문에는 퉁명스럽게 알아서 하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선의 방은 아담했다. 책상 하나로 꽉 차는 구조다. 책상에서 얼마 없는 책을 뒤적였다. 어울리지 않은 양장본 노트가 눈에 띄었다.

 노트를 보지 않았으면 좋았겠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 애가 경험한 모든 일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This is a work of fiction. Names, characters, places and incidents either are products of the author’s imagination or are used fictitiously. Any resemblance to actual events or locales or persons, living or dead, is enti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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