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식
현재
영국이형이 이상해진 건 2년 전부터다.
은주 누님이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시작한 시점이다. 영국이형도 갖은 고초는 다 겪었다. 사방팔망으로 뛰어다니며 구명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세상의 반응은 냉담했다. 그때 대부분의 은행 예금과 하나 남은 아파트까지 날려 먹었다. 지금은 두 딸과 함께 반지하 쪽방으로 전락했다.
당연히 분하기는 하겠다. 인정한다. 그렇다고 담당 검사를 손보자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냔 말이다. 우연히 담당 검사를 손님으로 태웠다는 말을 듣고 세상이 참 좁긴 좁다는 걸 실감했다.
검사도 영감 감투씩이나 쓰고 자가용도 없나? 서울 변두리인 개포동에 그것도 좁아터진 도개공 아파트에 사는 건 또 뭐람.
어쨌든 그날 대충 달래서 보내려고 했더니, 괜히 노름꾼들 싸움에 끼어들었더랬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소주병으로 머리통을 까던데 정말 무슨 일이 나는 줄 알았다. 대충 수습하고 도바리를 깠었다.
조금 전에 난데없이 연락이 와서는 그날 말한 쇠몽둥이를 요구하고 있다. 한동안 잠잠하길래 단념한 것 같더니. 그동안 작전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아, 정말 괴롭다. 어제 먹은 술도 덜 깨서 머리가 아픈데 말이다. 정말 사고라도 치면 어떡하나. 그렇다고 그냥 슬쩍 넘어갔다간 내가 불벼락 맞는다. 대충 나무 몽둥이 적당한 것 하나 쥐어 주고 말아야겠다.
두목
한 달 전
"쓸만한 것 같은데, 쟤 한 번 알아봐."
이연길이 목례했다. 미세한 반응이다. 그러나 믿음이 간다. 연길이는 애가 지나치게 과묵한 게 흠이지만, 일 처리 하나만큼은 똑 부러진다.
녀석을 처음 만난 건 연길 거리였다. 거지꼴을 하고 상인들에게 개 패듯이 두들겨 맞고 있던 걸 내가 거두어 왔다. 얼마나 굶었는지 노점상 만두를 훔치다가 잡혀 두들겨 맞으면서도 허겁지겁 입안에 만두를 밀어 넣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연길이라고 부른다. 실제 이름은 물어본 적 없다. 아마 그의 가슴속에 묻어 두었을 것이다. 그저 나는 연길이라 부르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도 나름 흡족한 것 같다.
"시끄러워지기 전에 일어나시죠."
연길이 말했다.
우리는 큰 대자로 뻗은 남자 두 명을 성큼 넘어갔다.
영국
한 달 전
김정남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이후,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는 날에는 제어가 되지 않았다. 책임회피를 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애들에게까지 손찌검을 할 만큼 타락하고 말았다. 차이나타운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날 이후 몇 날 며칠을 가슴을 졸이며 지냈다. 다행히 그 어느 곳에서도 사이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시 택시 영업을 시작했다. 어쨌든 돈은 필요했으니까.
개포동으로 지나갈 일이 있으면 몇 시간씩 그의 집 앞을 지켜보곤 했다. 택시 휴무 날에는 아예 진을 치고 잠복했다. 그런 점에서 은색 스텔라는 아주 유용했다. 먹고 자고 모든 행동이 가능했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다는 장점도 갖추고 있었다.
김정남의 동선과 행동 패턴을 파악했다. 동선과 패턴이랄 것도 없었다. 집과 직장만 왕래했다. 출근은 지나치게 일렀고, 퇴근은 지독하게 늦었다. 검사는 겉보기에는 그럴싸해 보여도 못해 먹을 짓이었다.
한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내 눈에 자주 걸리적거리는 차량이 발견되었다. 남색 프라이드 베타였다. 웬 남자가 타고 있었다. 그쪽도 내가 신경 쓰이는 건 마찬가지였나 보다. 수시로 나를 의식하며 흘끔거렸다. 우리는 반나절의 견제 끝에 말문을 떼었다. 소변을 보러 아파트 뒤뜰을 들락거리다 마주친 게 계기였다.
"혹시 형씨도 김정남?"
"어, 그쪽도?"
우리는 생각보다 말이 길어졌고, 이내 대포집으로 옮겨 말을 이어갔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은주 이야기를 하며 복수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주장했다.
"어, 뉴스에서 본 것 같소. 그런 내막이 있었는지 몰랐군. 형씨도 참 딱하구려."
나는 끄덕이고 입안에 소주를 털어 넣었다.
"나는 씨팔, 마약사범으로 무려 5년을 썩었소. 마약은커녕 술도 못 마시는데, 씨팔!"
사내는 찬물을 들이켰다.
"아니, 대체 어찌 된 일이오?"
"제기랄, 난 외항선을 타는 선원이오. 2년 만에 겨우 귀환해 집에서 쉬고 있었소. 그런데 회사에서 긴급하게 연락이 왔소. 트리디나드 토바고라는 섬나라로 급히 가라는 거였소. 카리브해에서 조업하던 우리 회사 선박에서 기관사가 상어에 발목을 물리는 사고를 당했다는 거요. 급히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는 거였소. 의아하실 수도 있지만, 참치 그물을 걷다 보면 상어가 자주 걸려듭니다. 선원들이 한가할 때 상어 지느러미를 채취하기 위해서 잠시 구석에 밀어 놓고 조업을 마저 합니다. 의례적인 일이지요. 어쨌든 나는 소식을 듣고 곧장 짐 보따리를 싸서 공항으로 갔소.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연로하신 노파가 무거운 짐을 들고 낑낑대는 거 아니겠소. 딱해서 내가 좀 들어주었더니 떡대들이 달라붙어 바닥으로 얼굴이 처박혔소. 그 노파는 마약상에 고용된 지게꾼이었던 거요. 나는 마약운반책으로 검거되어 꼼짝없이 5년을 썩었소. 5년이오! 자그마치 5년을!"
"미안하지만, 내 아내는 20년이오…. 그것도 아동학대랍디다. 뜨거운 솥에 데일 뻔한 아이를 좀 엄하게 혼냈기로서니 아동학대는 너무한 처사 아닙니까? 이런 인민재판도 없습니다. 그것도 20년형이라니!"
그렇게 김정남은 내가 인계받는 것으로 교섭을 끝냈다. 이름 모를 사내의 원한까지 오롯이 내가 떠맡는 조건이라 어깨가 무거웠다. 그래 내가 속 시원하게 쇠몽둥이찜질을 해주겠다. 기다려라. 김정남아.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곧 가마.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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