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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코니 Aug 13. 2023

#2 사무실에서 울려 퍼지는 슬리퍼 끄는 소리

무심한 소리의 뒤편


  고무창의 둔탁한 소리와 함께 계단실이 울렸다.

  "잠깐만요!"

  엄마의 까칠한 목소리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계단을 어떻게 올라왔어요?"

  나는 아리송한 질문을 받고 무슨 말인지 이해할지 못했다.

  "사뿐사뿐 걸어야 하는데 그렇게 크게 발걸음을 옮기는 거예요? 그러면 아파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시끄럽지 않을까요?"

  "네, 시끄러워요."

  "만약 집 안에 공부하는 형이나 누나가 있다면 어떨까요? 그런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집중을 할 수 없을 거예요. 그게 성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조심해야 돼요."

  엄마의 날이 선 목소리가 회색의 계단실에 길게 울려 퍼졌다. 말하자면 일종의 가스라이팅이었다. 나는 그 말에 의기소침해져 고개를 숙였다. 나는 계단을 오르고 있던 7살의 어린애에 불과했다. 복잡한 감정이 들었지만, 그걸 표현할 만큼 어휘력이 풍부하지 못한 나이였다.




  매일 아침, 사무실로 향하는 동료들의 발걸음 소리가 내 귀를 찔렀다. 철썩철썩. 끌려다니는 슬리퍼의 소리는 복도의 긴장된 공기 속에서 정적을 깨트렸다. 이런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내가 조금은 예민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소리는 분명 나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점심시간 가까워지면 그 소리는 좀비처럼 되살아난다. 철썩철썩. 나는 다시 긴장감이 든다. '또 시작이네.' 나는 바로 옆을 지나가는 그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지적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언론에서 보도되는 묻지마 칼부림 사건들로 인해 갈등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귀마개를 끼거나 무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그 소리를 무시하려고 했다.


  '언제까지 참아야 할까?'


  문득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 사람 앞에서 용기를 내어 말해보려고 한 적도 있다.

  "죄송하지만, 슬리퍼 소리가 조금 크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은 언제나처럼 나의 예상을 빗나갈 것이다. 유별나다며 되려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힐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도 생긴다.


  나는 고민 끝에 익명 게시판에 '조용한 사무실 문화'를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특정인을 지목하는 게 아니라, '슬리퍼의 소리,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 사적인 통화 소리 등 다양한 소리가 타인에게는 불편함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글을 올린 후, 많은 동료들이 공감해 주었다. 몇몇은 수위를 넘나드는 공격적인 댓글을 달기도 했다. '가정교육이 문제'라는 등의 입에도 담지 못할 폭언이 달리는 것을 보고 솔직히 통쾌하기도 했다. 누군가 묵은 설거지를 대신해 주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바로 그날부터 사무실 분위기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그 소리는 여전히 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책상 위에 작은 메모가 놓여있었다.

  '에티켓에 대한 피드백 감사합니다. 슬리퍼 소리에 주의하겠습니다.'

  그 메모지의 필체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슬리퍼를 끌며 걷던 사람들 중 한 명일 것이라 예상된다. 그날을 기점으로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결론적으로 지금은 슬리퍼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다른 동료의 키보드 타이핑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아무래도 사무실 분위기가 더 조용해진 탓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나의 글을 어떻게 알았을까?






This work is purely fictional. Any resemblance to actual persons, living or dead, or actual events is purely coinciden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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