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러더스 Dec 08. 2022

연회가 끝난 뒤

넥타이의 악몽

비자도 짧고 경력도 변변치 않은 외국인을 뽑아주는 곳도 있다. 언제나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이벤트 업계. 특정 앱을 통해 그날마다의 일감을 신청하는 21세기 인력시장 같은 곳이지만, 출근 첫날에는 복장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는 등 나름 관리가 이루어지고는 있다. 보내지 못했지만!

설렁설렁 끝난 OT부터 변명을 늘어놓아보겠다. 간판도 없는 사무실에서 담당자가 오지 않은 바람에 대타가 진행한 오리엔테이션은 삼십 분간 접시와 트레이를 들고 돌아다니다 끝났다. 정장 바지도 아니고 검은 트레이닝복을 입고 온 다른 후보자에게 언질조차 주지 않아 넥타이가 필수 복장인지 몰랐더랬다. 심지어는 그 문제의 어플에 계속해서 튕기는 바람에 나흘쯤 되어서야 로그인이 된 내가 넥타이를 구할 수 있는 선택지란 중고옷가게, 월마트, 달러 스토어, 그 외 다른 영세업장. 그날따라 검은색만 없더라. 첫 근무에 이미 경고를 받았기 때문에 여전한 복장 불량으로 출근하던 둘째 날에는 자괴감에 온 몸을 담근 기분이었다.


무대 뒤의 삶

예식장이나 호텔 뷔페 같은 연회장에서 깔끔하게 차려입은 스태프와 그들의 공간이 궁금한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평생 모르고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첫 출근 날 웬만한 컨벤션홀보다 훨씬 넓고 황량한 컨테이너식 건물을 헤매며 길을 잃고 싶지 않다면. 똑같은 사유로 지각한 다른 동료가 경력자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나만 멍청하고 적응을 못 하는 게 아닌가 자책할 뻔했다.

요리사 복장을 입은 남자가 우리에게 차를 태워준 일은 뜻밖의 기적이었다. 평소라면 위험하다고 거절해야 맞지만 일행도 있고 상황이 상황인지라 넙죽 올라탄 우리는 오분의 드라이브 끝에 한 마디를 내뱉었다 : 걸어서 5분이라며...


끔찍하게 차가운 할리우드 스튜디오 같다

아파트 주차장 접이식 문처럼 생긴 입구가 끝없이 늘어서 있는 건물은 충분히 고압적이었다. 내부에 들어선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는데, 기자재가 즐비한 식당 내부나 스태프 룸이라기보단 촬영장 스튜디오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공연장을 꾸밀 때나 사용한다고 믿었던 사다리차와 백여 명 분을 훌쩍 넘는 접시를 운반하는, 바퀴 달린 트레이들 그리고 심각하게 긴 탁자와 늘어선 요리가 나를 맞아주었다. 이 황량하고 쓸데없이 넓기만 한 준비공간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놀랍게도 사방이 하얀 우리의 공간과 검은 융단 카펫, 파티용 조명, DJ기계가 있는 연회장은 단 몇 개의 거대한 문으로 분리되어 있으니, 나는 여태껏 얼마나 협소한 세계만을 경험해온 걸까.


우리는 오합지졸

호되게 혼나리라 각오하고 들어갔는데, 웬걸, 매니저는 뭐 이리 늦었냐고 했을 뿐 폭풍 같은 잔소리는 없었다. 이상하다 싶은 지점이었으나 불과 한 시간도 안 되어 그 넓은 아량의 근거가 드러났다. 언제 누가 신입으로 들어올지 모를 환경에 모두가 오합지졸이었던 것이다. 다른 인력회사와 합세해서 모아놓은 사십 명의 어중이떠중이들은 그나마 있는 선임들과 식탁을 꾸미고, 핑거푸드를 돌리고, 음식을 나르길 반복했다. 일일이 지시를 내리는 회사 매니저 두 명과 센터 매니저 두 명, 그리고 어깨와 손목이 부서져나갈 듯한 업무량. 우리야 단순노동을 반복하는 위치라지만 매일매일 똑같은 절차를 입으로 읊어야 하는 그들은 또 어떤 심정이었을까. 어떻게든 돌아가는 일상에서 그들에게 분노나 일시적인 감정은 무의미해 보였다.


운이 좋으면 백여 명, 운이 없으면 이백에서 사백 명의 유리잔과 코스요리를 나르는 건 사방에서 접시와 컵이 깨져나가고 맨홀보다 조금 더 큰 쟁반을 어깨에 이고 지나가는 행렬 속에서 이를 악물고 버티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서빙할 때를 제외하곤 커다란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남의 잘못이 하필 그 자리에 있는 나의 잘못이 되거나, 같은 신입이면서 사사건건 업무를 지시하는 팀원도 있기 마련이다. 이전이었다면 욱하고 치밀어 올랐겠지만 놀랍게도 감정은 바로바로 사라졌다. 특히 손님들이 떠나고 난 뒤 뒤처리를 할 때면 그랬는데, 끝나기 전까지 죽어라 육체노동을 하다 보면 사소한 짜증 같은 건 마모되길 마련이다. 어쩌면 이상적이고 이성적이며 상식적인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고.


가장 큰 장점, 남은 음식을 실컷 먹을 수 있다- 밤 열 시에서 열한 시쯤에!


회사는 아니지만 가족 같음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일과도 끝나기 마련이다. 첫날 아비규환으로 보였던 식장은 둘째 날 놀랍도록 체계가 잡혀 있었다. 여전히 첫 업무인 직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우리가 하는 일을 이해하기 시작한 덕분인지 결속력은 강해지고 손동작도 민첩해졌다. 쟁반 나르기는 훈련을 통해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사후처리의 소란스러움과 공허함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래, 모두가 매일 유리잔을 깨뜨리고 손을 달달 떨고 밤까지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도 무슨 상관일까. 더 잘하고 싶어서 말을 건네는 것일 테고 유난히 체력이 없어 보이면 나서서 도와주는데 말이다. 우리들은 대부분 인도나 남미 출신 외국어 사용자, 학생과 동유럽 출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아시아인은 거의 나뿐이라 눈에 띄는 건 사실이지만 모두가 상관치 않고 도와준다. 그래서 저녁 먹는 시간은 유난히 즐겁다. 손님들이 정장과 드레스를 입고 썰던 스테이크와 호텔식 디저트가 몇십 개씩 쌓인 선반에서 아무거나 골라 맘껏 펼쳐놓고 먹으면 되니까. 누군가 "It's Feast!"라고 했듯이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시끄럽게 떠들며 먹는 밤참은 정말로 잔치같이 보인다. 사실은 출근을 할 때마다 그날 하루가 두렵고 어깨, 허리, 허벅지와 발 어디 한 군데도 성한 곳이 없지만, 회사라고 하기도 힘든 반(半) 프리랜서 격의 직장이자 벼랑 끝에 몰린 노동이지만 끝까지 버틸 수 있는 건 오합지졸이란 오해를 견디고 성장하는 동료들 덕분일 것이다.

이전 11화 먹어야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