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을 잃는 시간
독립이나 자취를 시작하면 먹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지만 처음에는 꽤 잘 버텼던 것 같다. 매일 품을 들여 하루 세끼를 영양가있게 챙겼기 때문이다. 문제는 피로가 누적되며 벌어졌다. 떠나기 전 기대했던 여유로운 생활은 환상에나 존재하게 되었고, 그 날 밥을 준비하는 데 실수라도 발생하면 출근에 쫓겨 엉망진창인 요리를 먹어야 했다. 게다가 도시락을 싸고 다녔던 것도 한 몫 했다. 아무리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내 볶음밥에선 왜 이리 냄새가 나는지. 별 거 아닌 문제였지만 결국 내 식단은 점점 익숙해지고 좁아져 갔다.
캐나다인의 밥상
입맛을 잃었다고 식욕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노동량이라는 게 있으니 자연스레 먹는 양이 많아졌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식탐이 생겼달까. 요리하는 양이 점점 많아졌고 일할 때도 걸핏하면 군것질로 배를 채웠다. 이런 나를 볼 때마다 사장님이 다람쥐라고 불렀으니 어떤 수준인지 알 만하다.
미꾸라지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동료들도 간식을 챙겨오거나 먹을 걸 주곤 했다. 절대 거절하는 법은 없었다만, 순식간에 먹보 이미지가 붙은 나로서도 항변이 남았으니... 대체 캐나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밥을 대충 챙기냔 말이다.
이들의 인식에 경악했던 적이 하도 많아 일일이 전하기보다 나열식으로 보여드리겠다.
"그거 네 점심이니?" -가게에서 초코바를 먹던 나를 보고 사장님이
"오늘 저녁 메뉴는 샐러드야!" -어쩌다 들은 사장님과 남편의 대화. 행복해 보이셨다
"바쁘니까 밥은 대충 먹어야겠어" -감자칩이나 육포를 집어가던 수상택시 운전자들
"안 될 건 뭐야?" -일 년 내내 파스타나 샌드위치만 먹고 살 수 있냐고 비꼬던 나에게 J가
"얼마든지 있으니 많이 먹어요" -친구에게 저녁을 대접하며 고기파이와 아보카도를 주던 홈 맘
똑같은 경험이 쌓이다 보면 전의를 상실하고 오히려 내 쪽이 이상한가 의혹이 드는 법이다. 당장 다른 도시락만 해도 고만고만해서-샌드위치, 파스타, 샐러드, 심지어는 프로틴 박스라고 부르는 "스틱야채, 크래커, 햄"- 꾸역꾸역 밥을 싸가 데워먹던 나로서는 덩달아 입맛을 잃어갔다. 종내에는 피자와 샌드위치만 먹었던 것 같다. 오죽하면 지금도 친구들과 떠들 때마다 먹는 이야기부터 해 대니, 집착이 결팁을 보여준다는 말은 의심할 여지없이 사실인가 보다.
Fill up your bag
에드시런의 Shape of you가 한창 유행할 때, 누군가 그랬다. 가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절약정신 운운하며 뷔페에서 남은 음식을 싸 가는 데이트가 어딨냐고. 가성비라는 말에 워낙 질릴 때라 어쩌다 그런 가사를 썼는지 의아해하며 동조했던 기억이 난다.
자, 영국까진 아니더라도 캐나다 사정은 어떨까. 어떤 메뉴건 결국 이만원을 훌쩍 넘어가게 되어 있고, 정작 양은 이인분인지라 남은 음식을 싸 가는 게 너무 당연하다. 사람들의 위장이 고무줄도 아닐 텐데 평소 식사와 외식의 간극이 왜이리 큰 건지. 가격을 낮추든가 양을 줄이든가 하나만 하라고 내 안의 일침꾼이 깨어나지만 아쉬워도 참을 수밖에.
임시숙소, 존중하며 버팁시다
서론이 참 길고 길었다. 하지만 이쯤되면 나의 심란한 밥상을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정착 전 워홀러들은 임시 숙소에서 생활을 해결한다. 방을 구하는 데 사기를 당하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생활이 조금 지난하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요리를 할 수 있는 자기 소유의 거주공간이 아니어서 그렇다. 홈스테이 주인은 부엌 사용을 허락했다만 걸핏하면 식기를 망가뜨리는 요리 실력과 아시안 음식 특유의 냄새, 장보기도 애매한 기간 덕에 나의 선택지는 하나로 수렴했다 : 존버
이미 육 개월 간 식욕 해소의 끝을 본 나는 이럴 때 유용한 방안들을 알고 있었다. 마트에서 파는 캘리포니아 롤은 적당한 한끼가 된다. 게살, 망고, 싸구려 연어나 참치, 오이 등 조화롭지 않은 식재료는 이해불가의 영역이지만 묵묵히 먹을 수밖에. 햄버거는 10달러 내외의 훌륭한 가격에도 한 끼밖에 남지 않으니 적당한 대안은 아니다. 차라리 두 조각씩 네 끼를 퉁칠 수 있는 피자 한 판이 최고다. 길가에 널린 샐러드 가게, 그리스식 라이스볼, 정체 불명의 중국식 프랜차이즈와 서브웨이 12인치는 남겼다가 밤까지 먹을 수 있다... 예산을 넘기는 날에는 컵라면을 먹어가며 가라앉혔던 마음은 결국 어느 저녁 폭발해버렸다.
돈 새는 구멍이 너무 많아 일부러 싼 아시안 음식점을 찾았던 날, 투박한 종이 팩 안에는 찹쌀과 견과류, 새우 한 줌과 단무지가 들어 있었다. 묘사만으로 맛을 상상해보시길 바란다. 얼마나 끔찍하던지! 다행인 점은 밥 양이 워낙 많아서 세끼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 첫 날 새우를 다 먹고 다음날 점심엔 달걀과, 그 저녁엔 편의점에서 산 소세지와 함께 먹자니 결국 울분이 터졌다. 뭘 위해서 입맛을 망쳐가며 여기까지 왔는지 다시 구렁텅이에 빠지려던 순간, 그런 생각이 났다. 아,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
용감함과 미련함 그 사이
이상하게 토론토에 온 후로 빅토리아에 있을 때보다 포기의 원심력이 늘었다. 더럽게 넓은 도시, 온통 뒤죽박죽인 일상과 그림의 떡에 불과한 렌트와 일거리. 관광이고 구직이고 헛발질을 하는 동안 위장이 맛없는 밥에 절여지느라 스멀스멀 무기력감이 몰려왔다. 매번 한 시간이 넘는 이동거리 속에서 포기하지 말자 중얼거리다보면, 불확실한 미래를 붙잡고 있는 내 쪽이 미련한 건 아닌가 불현듯 의심이 들고 만다. 결국 잘 먹고 잘 살자고 꿈을 좇아 온 건데 굳이 먼 땅까지 와서 몸과 마음이 상하는 게 현실이라서.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머리에 맴도는 먹구름을 쫓아 내느라 얼마나 밖으로 쏘다녔는지.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는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아도, 허기가 찾아와 위가 싸해지는 순간엔 다시 현실로 돌아와 버린다.
심지어는 과연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있나 하는 반성도 불시에 머리를 두드리곤 했다. 하고 싶은 거 하겠다고 여기 온 내 책임이니까. 그래서 계속 행복하고 밝은 부분만 적는지도 모르겠다. 밥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선 온실 속 화초에 지나지 않나 싶고.
희소식도 있다. 드디어 집을 옮겼는데, 주인 아주머니(당연히 한인이시다)가 며칠째 밥을 챙겨주신다. 심지어는 아직 삼십 대도 넘지 못한 나보다 에너지가 넘치셔서, 위생이니 건강이니 미적 감각이니 하는 데 배로 신경을 쓰신다. 조금 변두리에 위치한 곳이라 죽어라 걸어다닐 때는 아직도 서울이 아른거리지만, 버스를 타고 먹고 싶은 음식을 잔뜩 담아 오면서 갑자기 콧노래가 나왔다. 행복은 위장에서 온다. 내가 알기론, 세로토닌이 그렇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