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Feb 25. 2024

파양 된 그릇 입양했더니 받게 된 대접


좀, 아니 많이 창피하지만


난 결혼하고 1년도 안 됐을 무렵, 재활용 분리수거장에 누가 내다 놓은 그릇을 주워 집으로 들고 들어온 적이 있다. 당시엔 내 행동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득템 했다는 기쁜 마음에 그냥 좋아서 싱글벙글, 소리만 안 냈지 목구멍까지 '아싸'하는 소리가 올라오려는 걸 참아 누르기까지 했다. 그래도 새것이 아닌 누가 버린 걸 주워 온다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상적인 일은 아니므로 혹시 나를 보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지 없는지 힐끔 둘러봤던 기억이 난다.  


이제 결혼한 지 14년 차이니 13년 전 일이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들이 힘든 시절에 있었던 일이라며 할 법한 옛날 옛적 이야기 같지만 불과 10년이 조금 더 지났을 뿐인.


재활용 분리수거 날이라 베란다에 애초에 분류해 두었던 재활용들을 카트에 담아 배출 장소로 나왔다. 당시 남편 월급이 '헉'소리가 날 만큼 정말 적었다. 남편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지만 단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월급'이었으니까. 다행이라면 그때 난 강남에서 수학 강사로 일할 때였고 지역 특성상 월 수입이 남부럽지 않았으니 남편의 벌이가 적으면 내가 맞벌이하면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결혼을 결심했었다. 하지만 결혼하자마자 바로 아이가 생겼고, 극초반에 하혈로 유산이 염려되어 맞벌이는 물 건너가고 말았다. 겉으로 드러내 불안해하지는 않았지만 앞으로 우리 미래는 괜찮을까 하는 생각과 고민을 늘 가지고 있을 때였다. 뱃속에 아이는 자라날 것이고, 친정, 시댁 모두 내가 아이를 낳는다 해서 아이를 대신 돌봐주실 여력도 없었으므로 맞벌이를 언제쯤 할 수 있으려나 한숨만 나왔다.


당장 내가 돈을 벌 수 없으니 최대한 안 쓰는 게 방법이었다. 가끔 재활용을 버리러 나갈 때 분리수거장에서 득템을 하기도 했었다. 코로나도 오기 전이고, 메르스도 있기 전이니 남들이 쓰다 버린 것 뭐 그다지 더럽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이들 책 전집이 나와 있기도 했고, 쓸만한 협탁이 있기도 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책들과 가구인데 사람들 형편이 좀 살만해진 건가, 이렇게 멀쩡한 걸 버린다고? 의아함이 들어 내친김에 들고 들어온 적이 몇 번 있었다. 깨끗이 닦아 없는 살림에 보태면 괜히 흐뭇했다. 꼭 새 거 사야 맛인가, 아나바다도 하고 플리마켓도 하는 판에 내 집 앞까지 찾아온 물건들 깔끔해 보이고 돈 한 푼 안 들었으니 이게 웬 횡재냐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그날,

깔끔한 그릇들이 두 개씩 짝을 이루어 분리수거장 바로 옆 낮은 담벼락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었다. 꼭 나 보란 듯이 줄 맞춰 점잖게 앉아 있었는데 "필요하면 날 가져."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안 쓸 거라고 이렇게 내놓을 정도면 그래도 그릇에 이가 나갔거나, 자잘한 흠이 있는 거겠지 하고 살펴보았지만 전혀 흠잡을 데가 없는 그릇들이었다. 생선구이를 담을 법한 긴 직사각형의 접시와 국그릇으로 안성맞춤인 중간 사이즈 국대접은 도자기 기운이 은은히 흐르는 것이 색마저 고급스러워 보였다. 아마 이사 나가는 부부가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그릇 세트로 시작하고 싶어 이곳에서 사용한 그릇은 두고 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흠잡을 데 하나 없는 그릇들을 그대로 두고 간다면, 결국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미 깨진 도기가 가득 담긴 자루에 함께 담겨 멀쩡한 이 그릇들까지 깨부수어 처리될 테지. 난 마음을 먹었다. 이 그릇들을 가지고 가기로. 마침 재활용 카트도 내 옆에 대기 중이니 딱 좋았다. 그릇들을 챙겨 카트에 담고 집으로 들고 들어왔다. 혹시 누가 본 건 아닐까 그제야 뒤통수가 조금 따갑긴 했지만 뭐 어떠랴, 다른 사람들이 흉을 보건 말건.


집으로 들어와 열심히 설거지를 했다. 다른 때보다 수세미에 퐁퐁을 두 배로 푹 짤고 박박 문질러 그릇들을 씻었다. 새것처럼 깨끗했지만 그래도 남이 쓰던 그릇이니 조금 찝찝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열심히 문지르다 보니 겨울인데도 몸에 열이 도는 것 같았다. 따르르릉 전화벨이 울렸다. 어머님이다. 조금 화가 많으신 어머님. 집에 일찍 오라 했는데 1시간쯤 늦었다고 집으로 오지 말고 도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역정을 내시고, 명절 때 깜빡하고 전화 한 통 안 드렸더니 괘씸하다고 며느리 전화번호 차단하시는 불 같은 성격의 어머님. 늦게 전화받았다고 또 목소리를 높이실까 싶어 부랴부랴 고무장갑을 벗는데 손에 땀이 차 잘 벗겨지지 않아 잠시 실랑이를 벌였다. 낑낑대며 겨우 장갑을 벗고 휴대폰을 잡았는데 벨소리는 끊기고 말았다. 이런.


얼른 전화를 들어 어머님 번호를 클릭하고 통화를 꾹 눌렀다.


"왜 전화 빨리 안 받냐~"

역시나 앞뒤 이야기 없이 전화를 왜 빨리 안 받느냐고 물어보시는 바람에 다른 둘러댈 거리가 생각이 나지 않아 이실직고하고 말았다.


"재활용 버리러 가다가 누가 그릇을 내놨길래요. 쓸만하길래 가지고 들어와 지금 씻는 중이었어요."


어머님은 아이고, 그러냐, 하시곤 별말씀 않고 전화를 끊으셨고, 난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뽀득뽀득' 소리가 날 때까지 닦고 헹궈 세척을 마치고 건조기에 넣어 살균 작동을 시켰다.




그로부터 5년쯤 흘렀나.

어머님 댁에 반찬을 가지러 간 신랑 편으로 어머님이 그릇을 보내오셨다. 대접 4개와 예쁜 꽃무늬가 있는 우동기 4개였다.


반찬도 감사한데 무슨 그릇까지 보내셨냐고 전화를 드려 감사인사를 전했다. 어머님은   "그릇이 예쁘고 좋아 보여서 내 거 사는 김에 너네 거도 몇 개 샀다. 예전에 너 남의 그릇까지 가져다 쓰던데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라." 하신다. 요새는 그때보단 형편이 나아졌고 잘 살고 있으니 그러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다.


그러고 보면 어머님께서도 속이 꽤나 상하셨던 모양이다. 제법 오래전 일인데 잊지 않고 계신 걸 보면.


그런데 꼭 안쓰럽게만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뭐 어떤가. 식당 가서 먹을 때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릇이 일회용이 아닌 이상 남이 먹었던 그릇에 내가 먹을 때도 있고, 내가 먹었던 그릇 또 다른 사람이 받아 음식을 먹을 텐데. 식당이든, 고급 레스토랑이든 남들이 먹었던 식기류가 더럽다고, 그릇이나 수저, 포크를 들고 다니며 식당을 방문하지는 않으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어쨌든 집이란 공간은 식당과는 또 다르니까, 그리고 나처럼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 테니 좀 특이한 경우이긴 하다.  


매우 까다롭고, 화가 많으신 어머님이신데 그래도 해가 갈수록 내게 화를 잘 안 내시는 편이다. 나와는 성향이 정말 극과 극인데도 불구하고. 어려운 상황인데도 며느리가 불평불만하지 않고 극복하고 아끼며 잘 살아보고자 한 마음을 읽으셨던 건지, 안쓰럽다 생각하셨던 건지, 아니면 그 둘 다였는지, 어찌 됐든 그 에피소드 이후 최강 짠순이 어머님은 가끔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너, 부자 되겠다."


하하하.

아무래도 난, 부자가 될 것 같다. :)

그리고 어머님이 사 주신 대접 그릇에 음식을 먹을 땐 꼭 대접받는 느낌도 드는 게 참 뿌듯하달까.



이미지 출처.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이 평소 안 하던 짓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