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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그날

56 연출 20210723

by 지금은 Dec 02. 2024

덥습니다. 열대야가 지속되는 복더위입니다. 틈틈이 머리를 감고 샤워했지만, 살갗에 달라붙은 끈적끈적한 더위를 떼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밤 아홉 시 뉴스가 끝나자 일어섰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 갇혀만 있었더니 답답합니다. 바람이라도 쐬면 기분이 좋아질까 하는 마음입니다.


공원의 숲을 반쯤 걸었을 무렵 달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높은 건물과 나무들에 가려 달이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핑계입니다. 원인은 하늘을 올려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풍선 같은 얼굴입니다. 보름이 내일모레니 통통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아무리 다이어트를 한다고 해도 내일모레까지는 어림도 없습니다.


숲을 벗어나면 달을 찍어야 합니다. 하늘의 풍경을 계속 찍기로 했으니 달이라고 빼놓을 수는 없습니다. 잔디밭에 이르러 달을 바라보니 주위의 배경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나무들이 방해합니다. 호숫가를 지나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높지 않은 언덕은 주위의 건물이며 숲들을 물리치고 나에게 무동을 태워주었습니다. 스마트폰을 꺼내어 장소를 옮겨가며 달을 담았습니다. 잠시 후 화면을 검색해 보니 그게 그거입니다. 달이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배경도 아닙니다. 지금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보니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맞아 연출을 해보는 거야.’


지난해 추석날입니다. 아내와 이곳에 올라 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갑자기 터키의 ‘가파투키아’가 생각났습니다. 아내에게 배구공이나 농구공을 손가락에 올리고 뱅그르르 돌리는 자세를 주문했습니다. 달을 손가락에 올려보라고 했습니다. 언덕 비탈에서 몸을 움직여 가며 달을 손가락에 올리기 위해 노력을 했습니다. 위치를 맞추기 위해 아내가 움직임과 나의 움직임을 반복했습니다. 달을 두 손으로 마주 잡는 모습도 해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어휴 힘들어, 그만.”


카파도키아에서도 그랬습니다. 하늘을 가리키는 바위의 손가락과 아내의 손가락을 겹치기 위해 노력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나서서 해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진의 화보에 나온 모델의 모습은 어려워 보이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환한 웃음까지 머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멋진 화면을 보이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을 것이 분명합니다. 반복되는 시도가 한 장의 사진을 건져 올렸습니다.


다시 해보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모델이 없으니, 그늘막이나 가로등을 이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것들은 움직임이 없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미동을 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나의 움직임에 의존해야 합니다. 달을 바라보며 내 움직임이 이어졌습니다. 쪼그려 앉아 전진과 후퇴를 했습니다.


‘찰칵.’


달이 그늘막 꼭대기에 전구처럼 얹혔습니다. 가로등 위에도 얹혔습니다. 꼭 전구에 불을 켠 것 같습니다. 동그란 불입니다. 더 좋게 표현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크리스마스의 밤을 장식하는 하나의 꼬마전구라고 하면 꼭 맞습니다. 아니 둥글고 넓적한 막대사탕입니다. 찍은 것들을 하나하나 확인합니다. 주위의 각종 불빛으로 인해 생각만큼 농담의 효과를 얻지는 못했어도 원하는 바를 얻었으니 만족입니다.


하나의 요령을 터득한 셈입니다. 그림책을 만들 때 길가의 민들레를 찍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원하는 화면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처음에는 실패의 반복이었습니다. 강사님의 말에 힌트를 얻어 연출했습니다. 합성 사진을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훼손된 옷감을 짜깁기하듯 원하는 것들을 불러와 이어 붙였습니다. 원하는 장면을 얻었습니다. 생각하지 못한 학습을 했고 효과도 얻었습니다.


언덕을 내려오면서 생각했습니다.


‘내일이나 모레쯤에는 아내와 함께 와야 해.’


두 손에 달을 안겨주어야 마음이 풀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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