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기 목소리 20210827
몇 해 전에 옆집 식구들이 이사 왔습니다. 그날부터 현관문을 열면 가끔 아기의 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젖먹이의 울음소리입니다. 조용하던 실내에 아기의 소리가 들리니 싫지 않았습니다. 가끔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나면 인사를 주고받았습니다.
작년부터는 유치원에 다니는지 등원 시간이 가까워지면 영락없이 아이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할머니와 주고받는 소리입니다. 종종걸음이나 짧은 복도 위를 가볍게 뛰는 소리도 들립니다. 적막한 분위기를 깨는 그들이 밉지 않았습니다. 종일 시끄러운 것은 아니고 잠시뿐이니 반가운 마음마저 듭니다.
하루는 그 집 할머니가 찾아왔습니다.
“우리 손자 녀석이 시끄럽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내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기가 나대지도 않고 차분하더구먼요. 하는 짓도 귀엽고 목소리도 예뻐요.”
할머니는 순간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별것 아니라면서 손에 쥐고 있는 검정 비닐봉지를 내밉니다. 상추입니다. 강화도에 산다며 직접 가꾼 채소랍니다. 밭에서 갓 뜯은 듯 싱싱합니다. 상추쌈을 먹으며 말했습니다.
“받기만 해서 되겠어요. 이담에는 뭐라도 좀 줘야지.”
실천할 사이도 없이 이사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서울에서 볼일을 보고 왔는데 생각지 않은 낯선 사람들이 눈에 뜨입니다. 열린 출입문 사이로 작업복을 입은 사람 몇이 왔다 갔다 합니다.
‘녀석 참 귀엽게 생겼는데 못 보게 되었네.’
내 손자라도 되는 것처럼 혀를 찼습니다. 자식 귀여운 것은 몰랐어도 손자 귀여운 것은 알겠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이 기억납니다. 나는 손자, 손녀가 없어 그런 마음을 모릅니다. 아이가 아직도 결혼하지 않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는다고 마음이 조급합니다. 늦었으니 어서 빨리 상대를 찾았으면 하지만 당사자는 별 눈치를 보이지 않습니다.
다시 복도는 종일 조용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층에는 한집 외에 아이들이 없습니다. 중학생인 듯, 고등학생인 듯합니다. 이 학생은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애써 얼굴을 외면합니다. 처음 얼굴이 마주쳤을 때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했는데 내 공손한 태도와는 달리 고개만 까딱하고 맙니다. 그의 행동에 머쓱해졌습니다. 분위기가 어색합니다. 비교되는 집이 있습니다. 일호집 식구들은 지나칠 정도로 공손하고 예의가 바릅니다. 자기 아버지보다 연세가 많은 것 같다며 만날 때마다 허리를 구십도 정도로 숙입니다. 나는 그 집 식구들을 만나면 자연스레 같이 허리를 굽히게 됩니다.
“할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어르신을 뵈면 인사를 잘해.”
군복을 입은 아들을 보며 당부를 잊지 않습니다. 건강을 묻고 계속 도서관에 가시냐고 물어봅니다. 요즈음 보기 드문 사람입니다.
우리 집 반대편에 사는 부부는 나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한동안 자식을 따라 외국에서 살다가 고국이 그리워 이사했다고 합니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으니 사이좋게 지내자고 말했습니다. 내 나이를 알면서도 그는 나를 형님 대하듯 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자식 이야기를 했더니 손주가 몇 명 있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몇 번 아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집인지 다른 집 아이인지는 모릅니다.
며칠 전입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입니다. 옆집에 긴 유모차가 보입니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는데 아이의 엄마가 유모차를 밀고 다가왔습니다.
“이사 오셨나 봐요.”
“열흘 가까이 되었습니다.”
“아이의 말소리를 듣게 되어 기쁩니다.”
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이때입니다. 아이가 잠에서 깨어 몸을 뒤척이더니 무릎을 꿇은 채 바닥에 엎드립니다. 그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게 아닙니다. ‘낑’ 소리를 내는가 싶었는데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피곤한가 봅니다. 두세 살 정도로 보입니다. 그 후로는 열 시가 좀 지나면 옆집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이의 울음소리도 들었습니다. 이 시간이 되면 귀가 현관으로 쏠립니다. 이사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인구 절벽이라는 말이 들리는 이때 아기의 울음소리도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