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20240303
오랜만에 장학 퀴즈를 보았습니다. EBS 교육 방송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젊어서는 한동안 빠지지 않고 시청을 하려고 한 때도 있습니다. 고등학생들이 나와 지식을 겨루는 장이지만 보고 있노라면 학생 때 나의 모습이 눈앞에 다가오는 듯했습니다. 그때뿐이겠습니까. 중학교 시절도 그려집니다. 학문적 지식을 겨루기도 하지만 실생활에서 나타나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 옛날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장학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나는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실력이 이들만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출전하려면 언제 어디서 신청을 해야 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마음을 같이하며 문제를 풀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대체로 문제가 어렵다고 하면서도 가끔은 기대 이상을 성적을 올리는 때도 있었습니다. 역사, 문학, 과학, 예술, 시사 등 문제가 다양합니다.
풀다 보면 여러 분야 중 내가 잘 맞추는 항목이 있습니다. 시사 문제입니다. 최근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여깁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습니다. 시작 시간이 좀 지난 후 시청을 했지만 9문제 중 8문제를 맞혔습니다. 그것도 출전 아이들의 반응보다 앞서 정답을 입 밖으로 내보였습니다. 옆에서 함께 시청하던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직도 녹슬지 않았나 봐요.”
나는 퀴즈대회가 있을 때 몇 번 참가했습니다. 노인복지관, 시청 등에서 하는 행사입니다. 한때 KBS한국방송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학교를 순회하며 장학 퀴즈 ‘도전 골든 벨’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참석 인원은 100명입니다. 아나운서의 구호가 생각납니다. ‘문제가 남느냐 내가 남느냐.’ 문제가 진행되는 동안 정답을 맞히지 못한 학생이 탈락합니다.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진행됩니다. 최후의 1인은 고난도의 문제를 풀었을 때 왕중왕이 되며 대학 장학금을 받게 됩니다. 일정 기간 해외 문화여행까지 보장받습니다.
이를 차용했다고 할까요. 그 후 성인 무대에서도 이런 대회가 열렸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참석한 대회는 노인 종합문화회관 주최 시니어 도전 골든 벨 대회입니다. 상품과 상금도 있었지만 내 실력을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첫 대회이고 보니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다행히 상식적인 문제 중심이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힘입어 주최 측에서 알려주는 분야를 한 달 동안 공부했습니다. 아는 사람들도 있으니 최소한 망신은 당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학생들의 대회처럼 운동모자에 각각의 번호를 받아 달았습니다.
내 번호는 77번입니다. 행운의 번호인지 모르겠습니다. 모자를 받는 순간 기분이 좋았습니다. 중간에 모르는 문제가 있어 한두 번 짐작으로 답을 정하기도 했지만 순조롭게 진행되어 탈락할 때까지 앞에 5명을 남겨 두었습니다. 처음치고는 괜찮은 성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는 사람들이 축하도 해주었습니다. 왕중왕은 되지 못했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다음 해는 3등을 했습니다. 보통 사람의 실력은 된다는 마음에 삶의 희열을 느낍니다. 배움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알찬 하루를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다음 해 봄입니다. 시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양성평등 골든 벨 대회가 있는데 참석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어떻게 나에게 소식을 전하게 되었느냐고 했더니 노인 종합문화회관에서 추천하게 되어 연락했답니다. 다른 점은 부부 동반입니다. 아내가 자신이 없다며 참석을 꺼렸지만 내가 문제를 풀겠으니, 옆에 앉아있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설득 끝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참석하고 보니 위축이 됩니다. 모인 사람들은 청소년이거나 4·50대의 중년입니다. 그들과 겨루어 이겨낼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는 만족입니다. 왕중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역시 3등입니다. 상장과 상품을 받았습니다. 상품은 호텔 숙박권입니다. 마침 처조카가 결혼하게 되어 선물하려고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상대편 부모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져 결혼식 날짜가 미루어졌습니다. 사용기간을 확인해 보니 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나저제나 미루다가 여름이 막 지날 무렵 신혼여행 아닌 여행을 둘이 떠나게 되었습니다. 먼 곳은 아니지만 월미도와 차이나타운을 비롯한 개항장, 동화마을, 자유공원, 답동을 비롯한 문화의 거리를 돌았습니다. 호텔에서의 밤은 피곤했나 봅니다. 아늑했는지 모릅니다. 호텔 밖으로 보이는 찬란한 불빛을 잠시 본 후에 아침 늦게야 잠에서 깼습니다.
몇 년 동안 골든 벨 대회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코로나의 영향입니다. 전염병이 사그라진 올해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부활하기를 은근히 기대합니다. 세월이 지난 만큼 내 머리를 채운 게 있지 않을까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다시 부딪쳐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