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끝에는 후회만 남는다

이승철 -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

by 여백

누군가에겐 사랑을 고백하는 노래일지 모를 이 노래가 나에겐 가족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사랑'이란 게 어찌 연인 간의 사랑만 있겠는가.

가족의 사랑 역시 사랑인 것을.


집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던 청춘의 시간 속에서 문득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면 이 노래를 듣곤 했다.

노래를 들은 뒤에는 괜히 전화를 걸어 아무 의미도 없는 수다를 떨다 끊는다. 그 짧은 통화 중에도 밥은 먹었는지, 별 일은 없는지 묻는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고 나면 마음 깊은 곳부터 따뜻해진다.


천 번이고 다시 태어난대도

그런 사람 또 없을 테죠

슬픈 내 삶을 따뜻하게 해 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세상에 목적 없는 관계란 없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유일한 목적 없는 관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무조건적인 헌신.

그렇게나 많은 것을 주었음에도 여전히 주려고만 하는 그런 존재가 또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가족은 꽤나 특별하다. 특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더 그렇다.

나를 떠난 엄마와 타지에서 일하느라 얼굴 보기도 힘든 아빠를 대신해 지금껏 나를 키워주셨으니 더 특별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릴 때는 '조손가정'이란 말이 너무 싫었다.

'다른 친구들은 다 부모가 있는데 왜 나는 부모가 없는 걸까.'

남들은 다 가진 부모가 없는 게 싫었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게 싫었다.

친구들에게 부모가 없다고 놀림받는 게 싫었고, 성당에 가라는 말이,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남들은 고구마 피자 먹을 때 나는 고구마에 김치 싸 먹는 게,

남들은 치킨 먹을 때 나는 백숙 먹는 게 싫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소중한 줄 미처 알지 못했다.


이만큼 크고 나니 타지에 있다 집밥이 먹고 싶다는 한마디에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상을 가득 채우고 나를 기다리던, 너무 힘들다는 한마디에 그만두고 와도 된다던, 돈을 벌게 되면서 드린 용돈으로 따뜻한 옷을 사서 내게 건네어 주던 그 모든 것들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주기만 하는 무한한 사랑을 깨닫는다.


사랑이란 그 말은 못 해도

먼 곳에서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모든 걸 줄 수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어느덧 나도 훌쩍 커버려 평생 나보다 높을 것만 같던 두 분의 눈을 위에서 내려다본다.

늘 내 걸음에 맞춰주시던 그 걸음에 이제는 내가 맞추어 걷는다.

그렇게나 강인하던 손아귀에는 조금씩 힘이 풀리고 곧았던 허리는 조금씩 굽는다.

내가 이렇게 커버리는 동안 야속하게도 시간은 두 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끝내 할머니를 데려갔고, 할아버지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걷기 힘들어졌다.

이렇게까지 될 동안 도대체 나는 뭘 하고 있었는가.

나이가 들면서 쑥스러움을 핑계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했고,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좋은 집 사서 호강시켜 드리겠단 어린 날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받는 것에 익숙해져 받는 것이 당연해진 내가 할 수 있는 건 후회밖에 없는 듯하다.


사랑이란 그 말은 못 해도

먼 곳에서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모든 걸 줄 수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철없이 어렸을 때부터 험난한 청춘의 시기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 주는 가족들이 있어 행복했다고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껏 받은 무한한 사랑의 발톱만큼도 갚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나의 후회 역시도 가족들은 보듬어 주리라 믿는다.

그렇기에 이제라도 후회 없이 사랑을 드리려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떠한가.

가족들과 평소에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는가.

이 글을 읽는 오늘, 가족들에게 전화 한 통 해보는 것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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