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사춘기아들과의 좌충우돌이야기-일요일 아들의 동선과 요구사항
오늘도 긴 하루가 시작되었나.
아쉽게도 황금주말은 막바지네요...
일요일 아침 8시 25분경.
눈을 떠서 입원한 지인의 문자에 답장을 해주고 그래도 쉬는 날이니 뒹굴뒹굴.
꼭 쉬는 날은 눈이 더 말똥말똥.
일어나야겠다.
아들방에 들어가서 1차로 동태를 살펴본다.
아직 잠이 덜 깬 상태다.
먹는 걸로 잠을 깨운 후 재활용 분리수거장에 같이 가서 정리해야지.
장마기간이다 보니 그동안 미뤄와서 오늘 할 일이 너무 많다.
-먼저 밀려둔 빨래하기-"잘못하면 장마철 입을 옷 없어."(세탁기의 경고.)
-설거지정리하고 식기 세척기 돌리기-"언니야 나 좀 돌려놔.ㅎ"(식기세척기 동생말.)
-재활용 분리수거- "오늘 반드시 내 공간 탈환하고 말 거야."(자기 공간 욕심내는 다용도실)
-집 안방 및 거실 물걸레질 하기-"화이트로 다시 태어날 거야."(원래피부로 돌아가고픈 거실마루.)
-벽 및 모든 먼지구역 털어내기-"알레르기 없는 청정구역으로."(이제 숨쉬기 힘들다는 벽면틈새구역들)
-냉동실에 얼려둔 음식물 쓰레기 정리-"언제까지 나를 이곳에 둘 거니?“(냉동실 독거음식쓰레기일동.)
얼마나 미뤘으면 이렇게 할 일이 많을까.
심하게 반성하 것... 습니다... 요...
냉동실 얼린 음식물 쓰레기 꺼내다가 대봉감 홍시 발견.
(앗. 한 공간에 같이 있진 않습니다.)
'아 이거닷!!!. 일 다 끝내고 샤워 후 홍시 한잔 '후루룩' 어떠세요?'
(모델은 어제한 염색머리를 땋아서 늘어뜨린 후 고무줄로 질끈 묶고 붉은 계열 앞치마를 두르고서 대봉감 홍시를 입술 앞에 두고 요염한 포즈로 "앙"하면서 홍시를 쳐다본다나 뭐래나... 크읔. 상상은 맘대로.)
오로지 힘들어도 그 일념하나로 버티면서 온 집안 구석구석 작정하고 덤비고 다닌다.
일은 끝이 없다.
아들에게 엄마 일손 돕는 것을 억지로라도 가르쳐야 한다.
사실 혼자서 해도 된다. 조금 벅차더라도.
큰 아이는 일찍 아르바이트하러 나갔다.
복숭아 2개를 반달모양으로 썰어 동그랗게 담고, 미숫가루를 타서 노크 후 다시 들어간다.
"엄마 집안 청소하고 2시간 뒤 분리수거 갈 예정이야. 그때는 도와줘."
1차 통보 후 쉬지 않고 집안일을 해나간다. 12시 반쯤 다되어 집의 윤곽이 드러난다.
세탁기 앞에 쌓인 빨랫감이며 재활용 쓰레기가 넘쳐서 공간 분리가 안되었었다.(한숨.)
3차로 아들 방에 다시 들어갔다.
"S 일어났구나. 30분 후에 재활용장 갈 거야.
거의 다 정리가 되었는데 네 방 쓰레기만 따로 담아서 내줘."
게임을 하면서 듣는 둥 마는 둥 대답을 하더니.
거의 30분이 지나서 4차 방문을 하면서 '나가자'하니 회색 커튼까지 닫아 둔 상태라 쓰레기 정리가 되었는지 살펴본다.
이미 분리해서 재활용장에 버려야 할 것들을 묶어서 책상 앞에 내놨다.
나가기 직전 한우국거리를 그냥 양파 넣고 볶아 먹으려고 미리 설탕과 간장 참기름으로 밑간을 해둔다.
대체 이렇게 많은 박스를 들고나가 재활용장까지 가서 정리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시간을 재어 본다.
약간 습관이기도 하다. 늘 시간을 재어서 [다음에 할 때 얼마 안 걸리니 용기 내어 시작하자]고 뇌를 깨우곤 한다.
이런 일은 식기세척기 돌리기 직전 기계에 넣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대략 평균 12분 정도), 빨래 정리해서 세탁기 넣기까지 시간(5분미만), 건조기에서 나온 빨래 다 개비는 데 걸리는 시간(평균 5분 이내), 심지어 아들 방전체 청소에 걸리는 시간(평균 20분 정도), 이전에는 자전거 타고 어떤 목적지를 통과할 때마다 평균시간을 재어서 활용했었다. 사소하게 시간재는 일은 아주 많다.(비슷한 분이 많으리라 생각함.)
정확히 현관에서 재활용장까지 가서 정리하는데 15분이 걸렸다.
생각보다는 많이 안 걸리니 '제발 미루지 말고 하는 습관 좀 들이자.'
오늘은 예상보다 날이 더워서 아들은 박스등을 들고 나르면서 땀을 삐질 흘린다.
그래도 다른 날 보다는 짜증을 안 내고 다 끝냈다.
거의 혼자 하는 경우가 많아 아들이 도와주니 참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S 고마워. 네가 있어 든든하고 좋아.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났어."
아들은 빈 박스를 다 펴고 마무리까지 하고선, 내가 손을 씻을 때까지 재활용장 입구에서 기다려 주었다.
하기 싫어해도, 혼자서 다 할 수 있어도, 아들에게 가르쳐 줘야겠어.
그러고 일이 다 끝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동안 안 보였던 곳들이 오늘따라 눈에 띄기 시작한다.
밀대를 꺼내었다. 원래 끼우는 시트지가 있었으나 아무거나 4군데 고정해서 끼우기만 해도 되기에
큰 물티슈 같은 걸로 끼워서 온 집안을 닦기 시작했다.
얼마나 힘을 줬을까. 민다고.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 아이들 방사이 복도를 문지르며 닦고 있는데.
뚝.
속수무책이네. 미는 대가 반토막이 나버렸다.
잘려나간 밑동을 잡고 허리를 굽혀 5분여 동안 바닥밀고 먼지 닦는 작업을 끝냈다.
'아 이제 고지가 다 왔구나.
이제 샤워하고 우아하게 앉아서 홍시를 먹을 수 있겠구나.'
갑자기 아들이 1시 30분경 튀어나와 밥 달라고 한다.
잠시도 앉을 틈이 없다.
양념해서 재워둔 한우 국거리에 양파를 듬뿍 넣어 볶고난 후, 초록 땡초 하나를 큼직하게 썰어서 깔끔한 맛을
내고 플래이팅까지 욕심내어 본다.
다 챙겨 먹이고 너무 더워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나니 3시 15분 전.
큰아이 알바 마칠 시간이다. 날씨가 이렇게 더운데 종일 일하고 걸어서 10분여를 오려면 힘들겠어.
홍시고 뭐고 간에 큰 아이부터 데리고 와야겠어.
조잘거리는 아이를 모시고 와 거실 협탁에 앉혀서 식당에서 갖고 온 도시락을 먹인다.
나는? 정말 많이 기다렸다. 이 시간을 위해 그토록 참고 인내하고 또 참았던 것인가.
냉동실에서 꺼내져 다시 냉장고에서 해동되고 있는 그 아름다운 주황빛의 홍시가
오늘 하루 반나절 이상을 고생한 나의 모든 힘듦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아들은 2차 지필고사를 마치고 아주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다.
안 하던 게임도 많이 하시고, 잠도 많이 주무신다.
그날 밤 마사지 하던 순간의 일이 스치고 지나간다.
아들이 나에게 요구한 것은. 두둥.
"엄마"
눈을 감고서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것도 담날 시험이 있는 날인데 밑도 끝도 없이.
"여기 성형 언제 해주실 거예요?"
"으으엉."
"몇 살부터 가능하다고 했어요?"
"아니 네가 아직 청소년이라서 성인이 되면 가능하다고."
내가 했던 얘기를 한마디도 안 놓치고 다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이전 여드름 편 참조.)
"성인이 되자마자 여기 앞가슴에 여드름 자국부위 바로 성형이나 문신으로 가려주세요."
여드름 사건부터 여러 가지 악몽들이 다시 재현되는 듯하였다.
그날 온몸이 노곤해지도록 마사지하던 날 밤에.
-다음 편에 계속-
(윤슬작가의 변)
어제 청소를 얼마나 열심히 했던지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집이 아주 깨끗합니다.
늦게 일어났는데도 짜증이 덜 납니다.
요즘은 좋은 기분을 브런치 덕분에, 또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꽤 오래 유지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문득 든 생각이 누군가를 통해서 이유가 있어서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것보다
이유 없이도 기쁘고, 제 안에서 차오르는 평안과 감사와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쩔 수 없이 어린 시절 환경 덕분인지 늘 불안과 요동치는 감정의 기복이 제 안에서
아우성치면서 싸우고 있습니다.
월요일입니다. 습하고 눅눅하고 자칫 불쾌지수가 올라오기 딱 좋은 날이네요.
한 주간도 이미 시작되었으니 달려 나가 봅니다.
활기찬 시작으로 뛰어 보자고요. 걸어가도 됩니다.
앞을 보면서 천천히요.^^
늘 부족한 글 읽어 주시는 독자님 정말 고맙습니다. 333 33
(아침에 [김태훈의 프리웨이]에서 댓글 읽어주면서 사람들 반응을 얘기하는데 오늘은
젊은 청년들이 일한 만큼 돈 벌고, 시간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정수기 점검에 뛰어들었다고
하네요. 참 현명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 아침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