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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근데 엄마가 안 오셨으면 좋겠어요."

4화 사춘기아들과의 좌충우돌이야기-아들의 바이올린과 학교행사참여문자

by 윤슬





학원 다녀온 아들이 배고프다고 조른다.

뭔가 준비하고 있는데 배가 많이 고픈지 이미 식탁에 앉아 있다.


나는 마음이 급해서 저녁에 사놓은 앞다리살 양념구이 팩을 뜯어 급하게 볶았다.

밥 두 그릇은 뚝딱이다. 왠지 아무 말도 없이 알아서 밥도 뜨서 챙겨 먹는다.


매실청 생각이 나는지 얼마 만에 먹을 수 있는지 슬그머니 물어본다.

정확히 청매실은 한 달이 지났다.


밥을 다 먹고 제 방에 가더니 방 안에서 나를 불러 젖힌다.


"엄마 선생님께서 이번 금요일 학교행사가 있는데 저녁 6시 반에 와주셨으면 좋겠다 하셨어요."


안 그래도 일하다가 학교에서 온 단체발송 문자를 보고 딱 시간도 되고 가볼까 생각 중이었다.

월요일이라 정신이 없을 정도로 바빠서 깜박 잊고 있었는데 아들이 상기해 주었다.


당연히 가야지.

담임 선생님의 부탁이기도 하고 시간도 되니 교육도 듣고 교양도 쌓아보자 싶었다.


"아니 근데 엄마가 안 오셨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가고 싶다고. 누나 때는 모든 행사에 다 참석했었는데."


"엄마 안 오면 안 돼요?"


아들의 말을 나지막이 듣고 바로 선생님께 문자를 보냈다.

시간이 조금 늦었지만 가는 것을 바로 확정 짓고 싶어서였다.


늦은 시간이었으나 바로 담임선생님으로 부터 답장이 왔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어 하던 말로.


"S처럼 멋진 아이와 한 해를 보낼 수 있어서 제가 감사합니다.^^

어머니도 건강한 여름 보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아이가 이사 오고 나서부터 한 번씩 지각할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반장이 저래서

어떡할까. 시험기간이 되면 더욱 움츠러들고 마음 졸였다. 옛날 세대인 나는 반장은 반에서

1등을 해야 된다는 생각과 함께 지각이라도 하면 늘 죄를 지은 듯한 마음이 들어서다.

이번 학년에는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한 번도 선생님에 대한 불평을 들은 적이 없다.


앞전 담임은 국어과목이었는데, 벌점을 너무 많이 주시고 아침에도 다른 반보다 일찍 등교를 해야 했었다.

어른인 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선생님께서 무던히도 애쓴다는 것을 알지만 사춘기 아들은 참 힘들어했다.

막판엔 수학여행을 통해서이기도 했고 학년을 마칠 때쯤 되어서야 선생님마음을 조금은 이해하는 것 같았다.

(담임선생님과 주고받은 문자)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방과후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 해오다가 이사를 오면서 다시 바이올린 방과 후 수업을 들었다.

정말 좋으신 선생님들을 만난 덕분에 그만 둘 뻔한 상황에서도 다시 붙들어 주셨다.


5학년 말이 되면 오디션을 거쳐 학교이름을 건 오케스트라 악장을 뽑게 된다.

최종 후보에서 도찐개찐 실력으로 아들포함 2명이 겨루어 M초등학교 오케스트라악장이 되었다.


아들이 악장이 되고 나니 엄마는 자동적으로 오케스트라어머니회 회장이 되는 것이었다.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가시던, 아인슈타인을 주제로 멋지게 학기 초 강연을 하시던 선생님께서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시면서 전화를 하셨다.


마침 그때 나는 한 직장근무를 마치고 다른 곳으로 저녁 아르바이트를 가려던 차 안에서였다.


"S어머니. HL입니다. 마지막으로 부탁도 드리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가능하시면 잠시 통화가능할까요?


어머니 S가 오케스트라 악장된 거 축하드립니다. 제가 떠나게 되어서 무척 서운하지만 한 가지만 당부드리고 싶어서 직접 전화드렸습니다.


S어머니. 회장을 하시면 많이 힘드실 겁니다. 한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인내하고 또 인내하세요] 많은 어머니들 사이에서."


그 말이 참으로 1년 내내 봉사를 하면서 가장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마침 그때는 상근직인 데다 과장직함이 있어서 직장에 아이일로 말씀드리면 흔쾌히 지장이 없는 한은

학교 볼일을 보도록 허락을 해주셨다.


그렇게 나름 직장일을 하면서 오케스트라 어머니회 회장직을 수행하였고 저녁시간이 빌 때마다 아르바이트까지 뛰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다. 그 이전에는 G예술의 전당을 빌려 연말이 되면 다른 학교들과 공연을 하였다.

우리는 코로나 정점에 들어섰고 마스크를 끼고서도 단기여름캠프까지 해가며(다행히 아무런 확진사고도 없었다.) 발표할 곡을 선정하고 공연준비를 하였다. 같이 하였던 총무어머니가 가장 고생을 했었다.


아이들이 졸업하거나 학년이 올라가면 옷사이즈가 맞지 않고, 계속 입는 옷이 아니라서 총무와 함께 추운 겨울 차를 몰고 아파트를 돌면서 옷을 수거했다. 졸업생은 물려주고 사이즈는 서로 공유하면서 입었다.


당시 모든 어머니들이 코로나로 인해 더욱 단결되고 조심해 가면서 행사를 이끌었다. 또 간식은 어떤가. 매주 정해놓은 시간에 연습을 할 때마다 어머니회에서 자발적으로 돌아가면서 간식 봉사를 하였다. 정말 대단한 분들이셨다. 서울로 진주로 대회를 나갈 때는 버스를 대절했다.


드디어 공연날짜가 다가왔고 공연을 한다 못한다 교장선생님 이하 모든 분들의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결국은 1년 내내 봉사를 한 대가로? 연주 영상을 찍어서 학교 사이트에 올리고 공유하는 걸로 마무리가 되었다. 당시는 너무 서운하였다.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엄마로서 잘생긴 아들이 (남자악장은 드물어서) 제1 바이올린으로 지휘자님과 제일 가까운 자리에서 연주하면서 공연장에서 카리스마를 내뿜고 지휘자와 제일 먼저 인사하고 퇴장하는 것을 예술의 전당에서 간절히 보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힘들었던 일도 다 추억이 된다. 중요한 것은 이후로 아들이 바이올린과 담을 쌓은 것이다.

바이올린까지 중고로 내놓으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막았다. 잠시 그러고 말겠지. 6년을 꽉 채워 연습한 것인데... 하면서 늘 안타까운 마음이 교차한 채로 바라보게 된다.

그렇지만 강제로 아이에게 다시 바이올린을 잡으라고 할 수는 없다.

교우관계가 좋고 인기가 많은 아들이 수련회 가서 개인기로 바이올린이나 딱 켰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구처럼 말이다.

(아들이 눈독들이며 관심가지는 매실. 9월 4일 넘어야 먹을 수 있대)



-다음 편에 계속-



(윤슬작가의 변)


그리너리 라운지가 월요일은 쉰다. 매일 하던 운동을 못하면 기분이 이상하다.

저녁을 먹고 다 정리한 뒤 혼자 아파트 산책에 나섰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 저녁 9시를 훨씬 넘긴 시간인데도

시원하지가 않다. 이 시간에 아파트 내 산책은 드문 일이다. 주로 Y공원으로 나가기 때문에.

나간 김에 전에 자전거 훔쳐간 104동 자전거 보관소에 가봤다. 그냥 발길이 머문 것이다.


누가 화가 난 거처럼 그 자리에 자전거를 밀어 쓰러뜨려 놨다. 딱 우리 아들 자전거를 뺀 그 자리에.

순간 또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 마음이 잠시 흔들린다.

아직 바닥분수가 나오지 않는 곳에 가서 몇 개의 블록으로 만들어졌는지 어릴 때 돌치기? 하던 생각으로

셈을 하면서 뜀박질을 해본다. 모두 169장이다. 13X13이다. 정확히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름은 유럽정원이다. 바닥 타일의 원산지가 유럽이라고 들은 듯하다.


하릴없이 폰 앱을 켜서 120칼로리를 만들려 엘베를 타고 뒷동으로 올라가 본다.

놀이터가 있고 발야구장의 네트가 쳐져 있고 가끔 쓰레기 버리러 나오는 남자들이 있다.

혼자 걸어가다 쉼터 같은 곳이 나오면 입주민으로서 의자도 정리하고 재활용장도 들여다봤다.

누가 보면 늦은 시간 여자 혼자서 기웃거리니 이상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젤 뒷동 110 동쪽으로 가니 2층 정도 높이에서 큰 티브이 화면이 보인다. 소리까지 들려서 쳐다보다가

어두운 창가에 앉아 있는 집주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어두운 가운데 내 쪽으로 떨어진 시선을 보고

놀라서 운동하는 척하면서 팔을 휘둘러 보았다.


뒷동을 지나 사잇길로 나가니 아파트 옹벽이 보이고 비가 많이 와서 인지 물이 조금 새어 나오면서 이끼 같은 것이 끼여서 지저분하다 더 안쪽은 옹벽의 정석처럼 대나무가 심겨서 벽과 맞닿아 있다.

이사 온 뒤 처음으로 이곳까지 와본 것이다. 낯선 곳에 서 있으면 생각의 방향을 돌릴 수 있고

나쁜 생각의 흐름도 이렇게 오늘처럼 잡아 준다.




집에 오니 내일 발표할 거리들이 가방에 들어 있다. K채널 시행통계자료, 고객흐름 분석자료, 앞으로 나아갈 방향등등 혼자서 자료정리가 잘 안 되어 독서실에서 돌아온 딸의, 단번의 도움으로 다 정리하고 뽑아서 파일에 담는다. 지금은 새벽 2시 47분. 나는 왜 아직도 잠을 못 이루고 이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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