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었다.]

7번째 이야기-작년 8월 아픈기억을-주변에 털어놓은 기억을 회상하며 쓰다

by 윤슬






"때론 천천히 걷는 것이, 숨 가쁘게 뛰는 것보다 더 어렵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를 해봐도 대번에 안다. 차라리 속도 9.5 정도로 20분을 빠르게 숨이 차게 달리는 것이 속도 6으로 20분을 걷는 것보다 더 쉽다는 것을. 우리 인생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작년 딱 이맘때의 나는 절망 속에서 모든 것이 멈춰있다고 느낄 때였다. 이 글을 쓰기로 생각하면서 다섯 편은 밤새도록 써서 완성해 버렸고, 나머지 1편은 다음날 새벽에 써서 완성을 했다. 마치 속도 9.5로 달리기 하듯이. 이 기억을 오래 붙잡고 숨을 쉬기엔 너무 아팠기 때문에 차라리 단숨에 써내려 갔는지도 모른다.


아무에게도 결코 드러낼 수도 없고, 말하기도 힘들 것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딸에게, 아들에게 솔직히 엄마가 출근을 안 하는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딸은 첫날 울면서 전화를 해서 알고 있기도 하지만 20세가 넘은 성인이기에 어느 정도 말하지 않아도 속사정을 알고 있었다. 아들은 아니었다. 중학교 2학년의 사춘기를 겪고 있었고, 엄마 또한 권고사직이라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이유로 출근을 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었다. 아들에게는 권고사직이라는 단어는 언급하지 않고 더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해 그전과 같은 직함도 찾아올 것이고 더 좋은 곳에 가기 위해 잠시 쉬는 것이라 말했다.


아들은 바보가 아니다. 사춘기는 더 예민하고, 치열하게 표 나지 않게 바라본다. 그렇더라.

엄마가 출근을 안 하고 면접을 보러 다닌다고 하지만, 쳐져 있고 때론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부어 있는 상태로 거실에 기어 나오면 말하지 않고 엄마의 상태를 다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서열 3위의 여동생이다. 동생에게는 바로 전화를 해서 솔직하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았다. 동생은 몇 날 며칠을 나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매일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면서 그 모든 상황들이 언니 탓이 아니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덧붙였다.


"왜 어디를 가도 그렇게 당하고만 살아? 등신같이."


이 말 한마디 안에는 모든 것이 내포되어 있었고, 전화로 동생 앞에서 한없이 더 어린 동생이 된 마냥 울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준 동생, 늘 나를 따라다니던 그 코흘리개 동생이 어느 날 내게 큰 산이 되어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조금 시간이 지나, 친구들에게 솔직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나랑 같은 경험을 한 친구는 한 명도 없었지만 모두들 내가 된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비밀은 오래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친구들 모두는 부여에, 거제도에 그리고 부산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입이 무거운 친구들이라 누구에게 나를 비방하면서 말할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다. 비방할 이유 또한 없지만. 알고 보면 혼자서 끙끙거리며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척했던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이며 이렇게 생각한다. 맞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내 일에 관심이 없다.] 근 20일 정도 그리너리 도서관에 박혀, 천 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매일 한잔씩 소비하며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그냥 일하는 직원들이 마치는 시간 전에만 저 자리를 비워줬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었을 거다.(뜨거운 아메리카노는 한 잔에 천 원이어서 500원을 아끼기 위해 자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포기했었다.)


그렇게 [시크릿]이라는 책과 문장을 외우다시피 하며 그토록 뜨겁게 나를 옥죄어 왔던 여름도 한풀 꺾였다.


-다음 편에 계속-


(p.s)

모든 과정들이 지났기에 이렇게 쓸 수 있고, 이런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태풍의 눈 속에 들어가 있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 비슷한 시간을 보내는 분들이 계신다면 같이 힘내자고 조용히 손잡아 드리고 싶습니다.

(위 사진은 필리핀 보라카이입니다. 동생대신 저는 휴양지 사진으로 2주 동안 휴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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