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째 이야기-신규 태움이야기와 친구의 새로운 시작 선물인 다이아몬드볼펜
(가장 기억에 남는 첫 태움 이야기 한 가지만 하고 넘어갈게요.)
생애 첫 신규간호사로 소아과에 들어갔다. 당시 부장님께서 웃으시면서,
"신생아실에 자기를 두기엔 아까워. 소아과 병동에서 근무하면 좋겠는데..."
신생아실은 폐쇄된 공간이고 소아과 병동은 늘 보호자로 북적이며 외부사람들과 마주치는 시끌벅적한 곳이다. 아이들의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폴대*를 밀고 개구쟁이처럼 돌아다니는 어린 천사 같은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이곳에서의 S차지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수간호사 보다 차지가 더 무서웠고, 차지보다 바로 윗 연차가 더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윗 연차는 혼을 내고도 바로 달래어 주거나, 자기도 1년 전 겪은 일이라 누구보다도 실수하는 시점을 잘 알기에 잘 따라다니면서 배울 점이 많은 선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가운데 31살의 차지가 있었는데 수간호사 바로 밑이었으며 우리들은 노처녀 히스테리가 심하다고 얘기하고 다녔다.(당시 31살은 시집도 못 갈 거라고 수군거리는 나이였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나랑 동시에 들어간 4명의 신규가 있었는데, 돌아가면서 이유도 없이 우리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우리끼리 서로 비교를 해가면서 자존감을 뭉개기도 했었다. 나는 당시 신규들보다 나이가 조금 많았으며(어딜 가나 나이다. 지난 시간들을 반추해 보니) 일을 더 잘해도 혼을 내고 못하면 이 차지선생님은,
"너는 나이가 더 많으니 늘 플러스 알파로 해야지. 같은 신규보다도 더 잘해야 비슷하게 보이는 거다."
소리를 들으며 근무를 했다. 그중에서 유독 예뻐하는 Y동기가 있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 친구는 자기 생각이 없이 시킨 대로만 하니 귀여움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당시 어린 생각으로는.
정말 잊을 수 없이 상처를 받은 일은 뜻밖에도 D번 근무 직전에 일어났다. 수간호사는 오기 직전이었고 한마디로 구미호 같은 차지였다. 신규는 늘 일찍 가서 미리 아침에 들어갈 주사제와 주사기를 개수대로 준비를 해두고 주사약이 들어가기 전에 빠르게 생리식염수와 건조된 항생제인 바이알*과 믹스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날은 내가 차지와 윗년차 인계받는 선생님들이 마실 커피를 탔다. 인계장소 바로 뒤에는 주사실이 있었고 주사실 옆에는 조그만 싱크대가 있었다. 차지는 내가 커피 타는 것을 봤다.
"누가 이렇게 탔어?"
맛도 보지 않은 채, 버럭 고함을 지르더니 바로 뒤쪽 주사실 열린 문으로 들어가, 차지는 내가 보는 데서 커피를 싱크대에 포물선을 그리면서 확 부었다. 모든 근무자가 다 쳐다보고 있었다. 이 장면은 근 25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생생하다. 영원히 잊기는 힘들듯하다.
이제 나는 면접도 마무리하고 새로운 곳에 들어가서 일할 꿈에 부풀어 있다. 이곳 중간관리자 뽑는 곳을 소개해 준 친구를 서면의 영광도서 옆 유명한 갈비탕 집에서 만났다. 친구는 나보다 일찍 도착해서 다이아몬드가 볼펜* 끝 장식으로 달린 볼펜을 내게 내밀었다.
"S야 이제 이 볼펜으로 간호과장 싸인을 멋지게 하는 거야."
친구랑 갈비탕을 먹고 영광도서에, 이번에 가게 된 분야의 전공서적을 사러 갔다. 서점의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바닥에 주저앉아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옛날 초읍도서관 철제 책장과 그 계단밑에서 보았던 전공서적 컬러판의 빨간 심장해부학구조가 떠올라 순간 어지러웠다. 그리고 먼지 낀 책들의 매캐한 내음과 함께 그 시절의 어린 간호사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다음 편에 계속-
(위 사진은 최고의 휴양지 하와이 풍경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