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꾼의 이중생활
주식투자자는 도박꾼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에 모 방송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증시 흐름을 두고 갑론을박의 토론이 이어졌는데, 한 젊은 패널이 계속해서 저를 포함한 다른 패널들에게 " 뭘 잘 모르시나 본데"를 연발하면서 본인의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본인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은 좋은데, 다른 패널들을 꼭 깍아내려서 본인을 돋보이게 할 필요가 있을까, 저는 방송 중 마음이 계속 불편했습니다. 계속해서 그 젊은 패널의 발언이 이어지자, 보다 못한 모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패널 한분이, 그분의 발언에 강하게 반발을 했고 분위기는 싸늘 해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젊은 패널은 " 뭘 잘 모르시나 본데"를 이어 갔습니다. 그 당시 사회를 보시던 분이 S방송국에서 유명한 고참급 아나운서 분이셨습니다. 이분이 살얼음판 분위기를 잘 컨트롤하시다가, 프로그램 말미에 그 S방송국과 D증권사에서 주관하고 있던 실전투자대회 얘기를 꺼내시더니, 갑자기 순위를 1위부터 꼴찌까지 하나하나 낭독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왜 갑자기 프로그램 마감전에 저런 행위를 하시나 의아했는데, 이유는 잠시 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실전 투자대회는 증권 관련 업종 종사자만 참가하는, 일반인 참여가 제한되어 있어서 참여자가 모두 공개된 상태였는데, 바로 그 마지막 꼴찌가 -60%의 처참한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던 바로 그 젊은 패널이었습니다. 그 아나운서분이 순위를 낭독하자, 그 젊은 패널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마지막에는 분위기가 그야말로 싸한 상태에서 프로그램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 일이 2015년도니까, 벌써 7년이 넘은 옛날 일입니다.
지금 그 젊은 패널은 수십만 명의 유튜브 회원을 보유한 성공한 주식투자자로 포장하고 잘 살고 있습니다. 저는 그분이 어떻게 주식시장에서 퇴출되었고, 어떻게 유튜브로 성공했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요즘은 방송 출연 섭외가 들어오면, 반드시 프로그램 내용을 확인하고, 출연 여부를 결정합니다. 지나치게 상업적이거나, 왜곡된 방송은 출연을 하지 않습니다. 증시 흐름을 분석하거나, 주식강의에 국한해서 출연하다 보니,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이렇게 해야 예전처럼 극단적으로 방송을 기피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거 같고, 회사도 운영해야 하는 제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타협점이 되는 거 같습니다.
예전에는 주식투자를 한다고 하면, 도박꾼과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예전 어른들은 자식이 주식을 한다고 하면 도박을 말리는 것처럼 말렸습니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주식투자(물론 간접투자가 많습니다)를 하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하면, 유독 우리나라만 주식투자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죄악시하는 유교적인 풍토도 있지만, 주식투자를 도박같이 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많다는 것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도박 같은 주식투자는 개인투자자분들 본인의 책임도 있지만, 이런 풍토를 조장하는 언론이나 관련 종사자들의 부추김이 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쪽 업계에서 저 같은 사람은 속칭 인기가 없습니다. 이 업종에서는 도박을 부추겨야 인기 있는 스타가 됩니다. 오죽하면 저를 사칭해서 유튜브를 만든 사기꾼의 유튜브 가입자가 저보다 70배나 더 많다고 직원들이 저를 놀립니다.
주식투자를 하면서 도박꾼과 투자자의 정의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단순히 테마주를 하면 도박꾼, 우량주를 하면 투자자로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제 기준에서의 도박꾼은 증시의 사이클에 맞춰서 투자를 하시는 분들인데, 증시 저점에서 매수하고 증시 고점에서 매도하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는 증시 고점에 유입되셨다가 증시 지점에 퇴출되시는 모든 분들이 도박꾼입니다. 도박꾼과 투자자의 가장 큰 차이는, 도박꾼은 사고파는 타이밍에 집착하지만, 투자자는 본연의 가치보다 싸게 매수해서 본연의 가치를 인정받을 때까지 보유하는 인내심이 중요합니다. 삼성전자의 가치를 15만원 이상으로 보시는 분에게 지금 삼성전자 가격이 6만원 이냐, 5만 원 이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10만원이 될 때까지 보유하고 그 중간중간 배당을 받으면 투자자는 이기는 싸움을 하시는 겁니다. 한 번에 비중을 무리하게 진입하는 도박꾼과 분할로 정해진 비중 이내로 진입하는 투자자는 이미 그 시작부터 게임의 승패는 갈려져 있습니다.
투자는 가치의 판단으로, 트레이딩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저도 늘 위태위태한 순간에 마주 합니다. 이런 위태로운 순간은 내부적인 문제보다는 시장의 문제이거나 우발적인 문제인데, 결국 그런 위태로운 순간을 벗어나는 건 경험과 안정된 심리입니다. 경험은 오랜 기간의 노력이 축적된 결과이고 쉽게 만들어지지 않지만, 심리는 훈련과 노력으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주식투자가 대단한 지식과 투자 철학이 필요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별게 없습니다. 싸다고 판단되는 튼튼한 주식을 사서, 비싸게 되팔면 됩니다. 부실한 종목을 절묘한 타이밍에 거래하겠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