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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로선 Jul 11. 2023

밤낚시

아직도 나는...


오늘은 정말 회사 가기 싫은 날. 연차를 낸다.

십 년 만에 낚시가방을 꺼내 풍문으로 들었던 달의 호수를 방문한다

오늘 밤 이곳에서 실종되고 싶다.


언덕을 넘는다.

푹푹 빠지는 진창길부터 비릿한 물 냄새를 맡는다.

초행길이지만 언덕을 넘으면 저수지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언덕을 넘었지만 저수지는 보이지 않는다. 빗나간 예측. 사바나의 코끼리는 물 냄새를 맡고 수십 킬로의 여정을 떠난다는데, 고작 언덕 너머에 있는 물 냄새도 맡지 못하는 만물의 영장이라니 면목 없다.


저수지엔 부챗살 모양으로 럭셔리한 낚싯대를 펴놓은 낚시꾼들이 군데군데 포진해 있다.

저렇게 많은 낚싯대를 펴놓을 거면 차라리 투망으로 잡는 게 났지 않을까.

열등감에 꽝 칠 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비교적 초라한 좌대에 달빛이 밝다.

정수리 위에 떠있는 달 이름도 모른 채 어색하게 낚싯대를 편다. 야광찌가 흔들린다.

순간 등 뒤의 상수리나무도, 달맞이꽃도  숨을 죽이고 긴장을 한다.

전광석화처럼 챔질을 했지만 붕어는 없다.

헛챔질에 욕심을 낚았다.

빈 어망에 헛된 욕심과, 욕망들이 갇혀있다.

현실과 꿈이 교차하는 모호한 시공간에서 또다시 미끼를 단다.

수초 사이로 가물치가 튀어 오르며 파문이 인다.

흔들리는 달빛.



늙은 강태공


달빛은 흐려지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몽환의 새벽.

유년의 여름방학, 외할아버지와 갔던 작은 소류지의 밤낚시를 기억한다.


할아버지는 미끼를 가져가지 않고 땅을 파서 지렁이를 잡는다.

직접 만든 대나무 낚싯대에 작은 지렁이를 끼워서 던져놓는다. 백발백중 붕어가 잡힌다.

나는 옆에서 약이 올라 안달을 한다.

"내 낚싯대엔 왜 안 잡혀요?"

할아버지가 숨 쉬듯 조용히 방법을 알려준다.

"마음이 물처럼 고요할 때 월척이 온단다."

알 수 없는 말씀.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을 한다.

"자리 바꿔주세요." 내가 말한다.

할아버지와 자리를 바꿔보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잡은 붕어의 투명한 눈을 본다.

붕어도 헐떡거리며 내 눈을 본다.

달빛에 반짝이는 맑은 눈.

불쌍했다. 며칠 전 할머니가 해주신 붕어찜을 맛있게 먹은 죄책감에 눈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오늘 밤 내 낚싯대에 붕어들이 안 잡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잡힌 붕어의 얇은 입술에 걸린 낚싯바늘을 빼는데 정성을 들이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손, 입술은 물론 은빛의 비늘 하나 다치지 않았다,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황토 흙을 먹는 붕어들.

놓아줄 때마다 할아버지가 말한다.

"절대 인간에게는 잡히지 말아라."



눈먼 낚시꾼


시간은 세월로 자라서 이제는 나도 중년이 되었다.

한심하게도 지금까지 월척 붕어를 잡아본 적이 없다.

거만하게 노련한 낚시꾼 흉내는 낼 수 있으나 여전히 물처럼 고요한 마음이라는 화두는 해독할 수 없어 월척은커녕 피라미도 못 잡고 있다.


초릿대 끝도 보이지 않는 물안개 멀리서,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쓴  외할아버지가 웃으며 걸어온다.

낚싯대를 걷는다.

밤새 잡아놓았던 욕심과 욕망도 놓아주었다.

노랗게 비웃던 달님은 오래전부터 새벽잠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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