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05

by 진혁

태주의 아버지는 외교부 서기관이었다. 아버지의 순환 근무지가 바뀔 때마다 가족들은 이사를 해야 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야 했다.

다양한 친구를 만날 수 있어서 좋겠다는 엄마의 말에 태주는 기대도 했었지만, 정들었던 친구와 헤어지게 되고, 이별의 상처가 늘어가면서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마음의 벽이 높아져 조용한 아이였던 태주는, 학교에서 이유 없이 따돌림당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 번은 다수의 백인계 아이들에게 강제로 끌려간 일이 있었다.

태주를 둘러싼 아이들이 낄낄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겁먹은 태주에게 비수 같이 차가운 말들을 쏟아내더니, 급기야 주먹과 발길질로 때리기 시작했다.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항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다 죽겠다 싶을 정도로 폭행이 무자비했기에, 태주는 제발 이 악몽이 빨리 끝나기 만을 바라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놈들의 폭행이 잦아들고 있었다. 녀석들 시선이 머문 곳에는 동양계 아이가 서 있었고, 그 아이는 겁도 없이 녀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태주는 잠시라도 폭행을 멈출 수 있게 해 준 것에 감사했지만, 녀석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걸 알기에 한숨부터 터져 나왔다.

체격이 가장 컸던 캐빈이 어이가 없었는지, 흑성 탈출 운운하며, 인종 비하 욕을 비아냥거리듯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어깨에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거침없이 캐빈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가소롭게 내려다보는 캐빈의 허벅지에 로우킥을 날렸다.

고통 섞인 소리를 토해내며, 캐빈이 허벅지를 손으로 감쌌다. 캐빈은 얼굴색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일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 아이들의 눈동자가 캐빈에게 집중되었다. 긴장감이 고조된 순간, 캐빈이 그 아이를 향해 고릴라처럼 달려들었다.

그 아이는 몸이 빨랐다. 캐빈의 손아귀를 재빠르게 피하며, 넌지시 다리를 걸었다.

캐빈이 중심을 잃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캐빈이 아이를 향해 성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고개를 가볍게 기울이며 캐빈의 커다란 주먹을 피했고, 왼손과 오른손 주먹을 번갈아서 캐빈의 턱에 꽂아 넣었다. 캐빈은 힘도 못쓰고, 벌목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흥분한 아이들이 벌떼같이 그 아이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아이는 예상하고 있었는지, 접근하는 녀석들을 밀치고, 피하기도 하면서, 기회가 생길 때마다 주먹으로 한 명씩 바닥에 쓰러뜨렸다. 남은 두 명의 아이가 겁을 먹었는지 자리에서 주춤거리다가 한 아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야구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태주가 야구방망이 든 아이 앞을 막아서자 뒤에서 그 아이가 소리쳤다.

"꺼져"


그 아이의 말 한마디에 남은 아이들이 자리에서 도망쳤다. 태주를 도와준 그 아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바닥에 있던 자신의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말없이 돌아섰다.


"야!... 나, 너 알아"


태주가 소리치자, 아이가 발걸음을 멈췄다.


"고마워... 난, 태주야 서. 태. 주."


돌아선 아이는,


"바 다로"

"뭐?"

"바. 다.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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