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이 풀려서일까?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아미는 따끔거리는 눈을 비비며 다른 한쪽으로 사람들을 봤다.
자신만의 세상에 빠진 사람들.
밀집된 장소에서 마주치는 시선이 부담스러웠을 그들은 작은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았고, 그들에게서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찾아낸 아미가 무거워진 눈꺼풀을 잠시 내려놓았지만, 의식의 경계, 그 어디쯤에서 윙윙거리는 안내방송 소리가 잠든 아미의 의식을 끄집어 놓았다.
아미는 허둥거리며 차량 밖으로 나갔다.
고장 난 에스컬레이트를 군말 없이 밟고 올라온 아미가별들이 숨어있는 도시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고, 키 작은 집들이 모여있는 좁은 골목가로등 불빛 아래서 모습을 드러냈다.
집으로 향하는 아미의 얼굴에는 그늘이라는 놈이 기생하고 있었다.
아미는 지난여름,등산을 좋아하는 친구 연지와 설악산에 갔었다. 소청봉에서 밤을 맞게 된 둘은 산장에서 밤을 피해 하룻밤을 묵어야 했는데, 그때 산장에서 느꼈던 낯섦 같다고 해야 하나?
같은 이유로 밤을 피하려는 타인들 속에서, 불안함을 누르며 잠을 청해야 했던 그곳의 느낌처럼, 집이 그랬다.
현관문을 열려던 아미의 손이 멈췄다. 안에서 다툼소리가 새어 나왔기 때문인데, 늘 겪는 일이고 보니, 이제는 지겹지도 않았지만, 가슴이 답답해진 아미는 왔던 길을 되돌아 아무도 없는 놀이터 벤치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내 기분 좀 생각해 줄래!"
배에서 나는 쪼르륵 소리에 푸념 섞인 말을 내뱉으며, 근처 분식집이라도 가야 하나 라는 약간 억울한 고민과 씨름하던 중에, 씩씩거리며 집에서 나오는 아버지를 봤다. 어둠 뒤에서 멀어져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아미는 더 이상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야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가 거실 바닥을 치우고 있었다. 엄마는 기분이 좀 가라앉아 보이는 거 왜엔, 평소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기에 내심 다행이다 싶었지만,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늘 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밥은 먹었어?"
"......"
"저녁 준비할 테니까 씻고 와. 엄마도 안 먹었어."
"응"
아미는 씻으러 가다 말고, 돌아서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왜?"
"......"
"무슨 말인데 뜸을 들여. 돈 필요해?"
"아니, 나... 붙었어."
"무슨 말이야?"
"전에 말했던, 축구 오디션... 합격했어."
실내 축구장 안으로 트레이닝 복 차림의 여자들이 캐리어를 끌고 들어 왔다. 커다란 가방을 크로스로 둘러맨 아미도 그녀들 틈에 있었다.
다부진 몸에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레깅스 팬츠 차림으로 오디션 합격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앉혔다.
"일단, 오디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FC파란펭귄 훈련코치 엄유진입니다."
합격자들의 박수 소리가 들렸다.
"아는 사람도 있을 텐데, 저는 앵그리걸에서 5년간 선수 생활을 했고, 여러분처럼 스탭 오디션을 통해 이곳 훈련 코치로 선발되었습니다. 선수때와는 달리 막중한 책임감과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여러분을 맡게 되었는데, 앞으로 있을 훈련에서 부상당하는 사람 없이 모두가 좋은 성과를 거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곳에서 한 달간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야 합니다. 이 훈련을 통해, 자신의 능력이 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임해주셔야 하고, 매 순간 겪게 될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아시겠지만, 한 달 후에 최종평가가 있습니다.
여기 모인 20명 중에 주전 선수와 백업 선수 포함 8명 만이 FC파란펭귄 이름을 달게 됩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주전과 백업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 중에서, 그나마 재능이 있거나 훈련 성과가 좋았던 사람들은 2군에 편성되어 기회를 엿볼 수 있지만, 컷오프 된 나머지 인원은 안타깝지만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생존한 주전 선수들은 앞으로 5개월 뒤에 있을 세미프로 여자축구 개막전에 FC파란펭귄 선수로 출전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