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 결정장애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찾아오는 끔찍한 악몽과 자괴감. 한때는 천국이었던 회사가 이제는 지옥이 되어버렸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숫자만이 내 영혼을 달래는 유일한 위로가 된다. 30일의 새로운 생명력이 주어진다. 나에게 새로운 숨을 살 수 있는 산소통 같은 월급.
나는 한때 열정이 넘치는 일의 신이었다.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은 언제나 설렘으로 가득했고, 매 순간의 성취감은 내 삶을 빛나게 했다. 야근도, 주말 근무도, 심지어 휴가 중의 업무까지도 즐거웠다. 회사를 향한 지독한 짝사랑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그 사랑에 모든 것을 바쳤다.
하지만 지금, 그 찬란했던 순간들은 모두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설레었던 출근길은, 지옥을 향하는 길이 되어버렸다. 사무실 문을 열 때마다 숨이 막힌다. 하루하루 버티는 나의 마음은 점점 비참해진다. 지금 이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알면서도 시도를 못 하고 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 내 행동. 퇴사 말고는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다. 다시 돌이키기에는 너무나 멀리 왔기에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용기가 안 난다. 용기도 없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막역한 미래에 대한 불길한 걱정, 이 모든 것을 또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매일 아침, 거울 속 내 모습은 점점 더 초라해진다. 끔찍하다. 오늘은 또 어떤 일들을 당할지. 어떤 감정 소모를 해야 하는지 불안 불안하다. 하루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하루의 에너지를 이미 다 소비해 버린 것 같다. 날 괴롭히는 그들은 웃으면서 즐거운 회사 생활을 하는데 난 왜 혼자 또 괴로워하면서 감정노동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인가.
누구를 위한 일인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참아 가면서 일을 하는지, 왜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누구보다도 내 일을 사랑했고 그 누구보다도 일에 대한 대단한 열정을 가졌던 나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는 길이 설레고 흥분되었고 하루하루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근데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내 일이 싫다. 다 엎어 버리고 싶고, 자괴감도 든다. 어디서부터 모든 일이 꼬여버렸는지 생각을 해봐도 모르겠다. 잘못된 길을 걸어온 지 너무나 오래되었다. 지금 불행한 삶이 당연하고 익숙해져서 내가 행복하지 않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며 살아왔다. 나는 인정 중독자였다. 나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칭찬받기 위해 사는 게 옳은 일이라고 착각하고 살았다. 학생 시절은 선생님께 칭찬받고,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위해서, 회사에서는 상사의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갔으며, 회사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잘했어. 수고했어” 이 한마디를 듣기 위해 내 삶은 없었고, 오직 일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던 나. 나 자신으로부터 주는 칭찬보다, 남의 해주는 칭찬이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당연히 모든 것은 내가 스스로 좋아서 한 결정들이다.
내가 정말 내일을 사랑해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했는지, 아니면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아등바등했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남의 칭찬을 통해 얻어왔던 일에 대한 열정과 성취감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했고, 큰 공허함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큰 물음표.
과연 누구를 위한 삶을 나는 살아왔는가?
이것이 과연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불만이 가득한 내 마음 때문에 괴롭다. 지금, 이 상태가 오래간다면 정말 못 버틸 것 같다. 그만두고 싶다. 탈출구를 향해서 달려가고 싶다. 근데 기운이 없다. 저 멀리 보이는 탈출구가 계속 희미해져 보인다. 그 길에 계속 장애물이 놓아지면서 탈출구로 향하는 나의 발걸음을 잡는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나는 안다. 누구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지 난 안다. 남이 아닌 나를 위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월급의 늪 그리고 돈의 노예가 되어서 탈출구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다.
나는 언제쯤, 이 굴레를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당신은 지금 누구를 위해 살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