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예민한 거야
천억짜리 프로젝트의 무게만큼 무거워지는 마음.
매일 아침 건설 현장에 도착하면 큰 한숨이 새어 나온다. ´오늘은 어떤 일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생각하면서 내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특히 빌런과 진상 고객과 일을 같이 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감정노동이 필요하다. 프로젝트의 책임자로서 그 빌런과 진상 고객과 대화를 통해 일을 진행하는 것은 당연지사.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도 경청하고 좋은 방향으로 일의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도 회사에도 득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언제나 기가 빨리고 힘든 미팅을 마친 뒤에도 군소리 없이 내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었다. 이제는 빌런과 진상 고객과 함께하는 무서운 하루가 내 일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프로젝트 진행이 속도가 빨라지면서 감정소모 하는 일이 점점 늘어났다. 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니, 신경 쓸 것도 끝도 없었고 많은 업무량으로 24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해도 해도 일은 줄어들지 않았다. 핸드폰에서는 이메일이 들어오는 속도와 일치하게 알람이 울려댔고 답장하지 못한 이메일을 계속 쌓아갔다. 전화도 쉴 새 없이 울려댔다. 업무량의 증가와 함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나의 부정적인 감정들은 내 마음에 차곡차곡 적립되었다. 스트레스 해소할 시간도 없이 계속 이어지는 스트레스로 인해 내 마음과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있었을 때쯤, 폭탄이 또 터졌다.
„난 너에게 계약조항을 전달했어. “
공사 현장 회의실에서 빌런의 고성이 쩌렁쩌렁 울린다. 이런 예상 친 못한 일에 다들 혼돈의 도가니다. 빌런의 목소리는 점점 날카롭고 커졌으면 우리는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모든 이의 시선이 순식간에 나에게 꽂혔다.
사건의 발달은 이렇다. 빌런이 우리에게 (진상) 고객과 합의한 계약조항을 알리지 않았고 당연히 그 조항을 알 수가 없는 우리는 공사 현장에서 그 부분을 반영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현장에서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빌런의 터무니없는 생떼에 난 할 말이 없다. 난 전달받은 일이 없는데 본인이 전달을 안 한 책임을 나에게 또 덤터기를 씌운다. 아무리 같은 회사 동료라서 무작정 빌런을 감싸는 것도 한계가 왔다. 우선, 빌런은 자기부터 빠져나가야 한다는 뻔히 보이는 속셈으로 무작정 나에게 변경된 계약 조항을 전달했으니 나보고 해결하라고 모든 사람 앞에서 쉴 새 없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내 속에서 욕이 꿈틀꿈틀 올라오는데 이 상황에서 기름에 불을 붙일 수는 없고 심호흡하고 그 어이없는 무책임함에 답한다.
„난 너에게 전달받은 것이 없어.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나중으로 미루고 지금 우리가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
내 차분한 대응에 빌런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때 나에게 빌런이 멈추지 않고 난리를 쳤으면 난 욕을 하고 그 미팅 장소를 나왔을 거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내가 더 이상 잘못을 따지지 않으니 조용히 넘어가려는 심보로 빌런의 입이 다물어진다.
그렇게 그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 부당한 일들을 난 더 이상 참을 수도 참고 싶지도 않았다. 나에게도 이제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내 상사와의 면담이었다. 단 한 번도 불평불만 없이 빌런과 함께 프로젝트를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진행을 해왔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상사는 빌런 때문에 신청한 나의 면담이 이상했나 보다. 그동안 어떤 일들이 빌런과 있었으면 빌런과 그 진상 고객의 행동들을 낱낱이 이야기했다.
„음… XX 씨, 당신이 좀 예민한데…, 당신이 예민한 성격이라고 생각 안 들어요?, 본인이 많은 일들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다고 난 생각하는데. “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결론은 모든 일은 내 예민한 성격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란다. 상사는 언제나 문제가 생기면 내 예민한 성격 때문이라고 가스라이팅을 한다.
„남자라면 허허하면서 넘어갈 일들인데…“
언제나 내가 예민하기 때문에 내가 넘기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것이라고 가스라이팅이 중이다. 거기서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내 예민한 성격 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내 책임이라고 못 박는 가스라이팅. 괜히 상사에게 빌런 때문에 면담 신청했다가 가스라이팅 당하고 억울하게 내 탓만 하면서 상사의 방을 나간다.
모든 문제점은 나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그 가스라이팅을 몇 년 동안 직장 안에서 당하고 있는 것도 몰랐다. 누군가의 잘못을 내 탓으로 돌리고, 내 감정을 부정하고, 나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 이 가스라이팅을 몇 년째 당하고 있었다니.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는 것이 잘못일까?
나의 감정과 경험이 `예민함`이라는 한마디로 무시될 수 있는 걸까?
정말 내가 예민한 건가?
이 와중에 내 핸드폰이 울린다. 나에게는 단 한순간이라도 고민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생긴 이 분노함은 또다시 많은 업무량의 무게에 짓눌려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