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밧줄
한 달에 한 번, 간절히 기다려지는 특별한 날이 있다. 바로 월급날이다. 이날이 어서 돌아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나. 월급이 나한테는 구원 같은 한 줄기 희망이자, 동시에 하나의 절망 그림자가 된다.
월급이 입금되는 순간, 마침 밑 빠진 독과 같이 돈들이 줄줄 빠져나간다. 돈이 들어오자마자 시원하게 쭉 쭉 빠져나가는 돈들. 내 통장에 잠시 스쳐 지나가는 내 월급이다. 우선 고정지출들이 주르륵 흘러 나간다. 주거비, 신용카드, 보험비, 교통비, 품위 유지비 등등. 다 나열하기도 힘들다. 항상 그렇듯이 한숨을 내쉬면 한심한 나를 보면서 손가락으로 계산기를 두드린다.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생각해 보고 가계부를 써도 고정지출은 줄어들 생각을 안 하고 점점 늘어나는 마법에 걸렸다. 월급이 한순간 다 사라져 버리는 마법에 잠시 걸리고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면 그 괴로움이 두 배가 된다. 이제 그다음 월급날까지 어떻게 버틸 수 있나.
지난달은 또 어떤 소비의 유혹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품위 유지비라는 말도 안 되는 항목에 리스트는 점점 길어진다. 이 늪에서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든다. 마치 모래 늪에 빠진 것처럼, 움직일수록 더 깊어지는 이 느낌.
이미 너무나 깊게 빠져버린 (월급의) 늪.
그렇게 한 달을 겨우 버텨낸다. 하지만 이미 나는 너무 깊게 빠져버렸다. 바로 그 월급의 늪. 월급날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소비의 즐거움도 있지만, 사실은 다음 달까지 다시 살아남기 위한 금융 치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야지 다음 달까지 다시 버틸 수 있다. 이 힘든 이 힘든 하루하루를 버티는 나의 힘이 돈이다. 월급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찍히는 그 숫자를 통장에서 확인하면서 숨을 돌린다. 내가 왜 회사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제공한다.
월급의 늪도 돈을 벌고 싶어서 안달이 나면 더 빠져버린다. 통장에 찍히는 내 월급을 한 달에 한 번씩 보면서 한 달을 살아가는 내 모습이 참 처량해 보인다. 회사 일로 인해 받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감당하면서 금융 치료받을 날만 기다린다. 꿈꾸던 미래는 멀어졌고, 눈앞의 현실만 더 선명하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라는 물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떠오른다.
“다음 달은 더 나아질 거야.”
이 한마디를 되뇌며 하루하루를 버틴다. 월급이 있으니 내가 살아갈 수 있다고 그 월급으로 고지서들을 납부하고 시원하게 생각 없이 소비할 수 있으니까. 내 우울한 기분과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감정노동에 대한 대가이니깐.
하지만,
난 언제 이 늪에서 벗어날 용기를 다시 내어볼까? 벗어나고 싶다고 외치면서도, 익숙해진 이 안락함이 내 움직임을 무겁게 한다. 변화는 두렵고, 실패의 가능성은 더 두렵다. 탈출의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나 자신을 다독인다. “괜찮아, 언젠가는 이 늪에서 탈출할 거야.” 이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며,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탈출의 순간을 이미지화만 해본다. 실행의 시도는 해보지도 않고 또 월급날이 온다. 금융 치료를 받고 또다시 이 늪에 안주해 버린다.
언젠가 이 늪에서 나와야 하는 날이 오겠지, 이 늪이 영원할 순 없는 것을 알면서도 이 아늑한 월급의 늪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아무 데도 도망가지 못하게 나를 꽁꽁 묶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