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의 귀한, 그리고 시작된 악몽
한동안 조용했던 (빌런) 동료와 진상 고객의 활동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정말 최악의 상황. 최악의 상황은 언제나 업데이트가 된다.
상사에게 가스라이팅 당하고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는 시점. 거기다가 직장 (빌런) 동료에게 계속 이래저래 치이고 참다 참다 어느 날 드디어 내가 또다시 폭발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제는 아예 일과가 돼버린 빌런과의 기싸움. 조용하게 지나가는 날이 없다. 이날도 언제나 그랬듯이 빌런이 꼭 건설 현장에 있으면 일이 터진다. 빌런의 검은 아우라가 100미터 전부터 느껴진다.
이번에는 공사 현장에서 여러 건설회사의 소통 부족으로 문제가 생겼다. 많은 건설 회사가 동참하는 프로젝트이기에 언제나 문제는 발생한다. 그런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내 임무. 난 언제나 침착하게 문제 해결에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문제 해결이 최우선인데 거기서 내 (빌런) 동료는 건설회사에 지적질 그리고 갑질을 시작한다. 건설 현장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동료가 앞에서 설치는 모습을 보면서 터져 나오려는 내 웃음을 참느라 이중 고초를 겪는다. 어이없는 갑질이 계속 이어지자 참다못한 건설회사 현장 책임자가 현장에서 이탈한다. 그 사람도 참다 참다못해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욕을 듣고 싶지 않았을 거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어지는 갑질을 당하고만 싶지 않은 심정이 이해가 간다.
빌런은 문제 해결은 못 하고 문제를 더 크게 만들고 건설 현장에서 도망치면서 나간다. 나는 원하지도 않는 빌런이 벌려놓은 일들을 해결하는 해결사가 되어야 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현장 분위기는 침울하다. 이탈한 책임자와 몇 번의 면담을 통해 내가 빌런의 갑질을 사과한다. 이 난리를 해결하는 데 며칠일 걸렸다. 그 사이에 현장 작업 스케줄이 꼬였다. 하필 그때 진상 고객이 현장 확인을 한다고 약속도 없이 찾아온다. 기분이 세하다. 아마도 빌런이 이미 고객한테 넌지시 현장 분위기를 전해준 거 같다. 밀린 스케줄로 인해 고객은 화가 나고 빌런은 진상고객에게 다 내 책임이라고 나를 코너로 몰아세운다. 엎친 데 겹쳐서 회사 임원들까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나를 보는 시선들이 날카로워진다.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고객의 항의까지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한 방 먹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내 동료는 책임 회피를 할 궁리부터 한다. 자기의 갑질이 알려질까 봐 무조건 내 잘못으로 이런 상황이 일어났다고 몰아가는 분위기다. 난 현장에서 직접 문제 해결로 인해 사내 정치에 관심도 없다. 그럴 시간도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금전적, 시간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른 시일 내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내 뒤에서는 다들 나만 아니면 된다는 마인드로 문제 해결은 온전히 나에게 맡기고 멀리 떨어져서 불 보듯 구경만 한다.
이렇게 난 또 남이 벌어놓은 문제를 해결하느라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발바닥에 불이 난 것처럼 뛰어다닌다. 그때 회사 동료들은 해결책 강구보다 어떻게 이 상황을 빠져나가야 할지 머리를 굴리고 있다.
상황은 어떻게 정리되었냐고? 내가 모든 책임을 떠안고 우선 고객을 진정시키는 것이 최우선이기에 내가 머리를 숙였다. 내 실수가 아님을 다 알고 있었지만 쿨하게(?) 내 잘못이라고 인정한다.
„죄송합니다. 제 실수였습니다. “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먼저 고개 숙여 사과했다. 내가 대표로 욕을 먹고 일은 마무리가 되었다.
마무리가 원만하게 타협되어서 회사에서도 아무런 책임을 묻지도 않았고 그 빌런은 당연히 웃으면서 고객과 함께한 회의장을 나갔다. 자기가 원만한 합의를 이끌었다고 하면서… 빌런의 승리 미소가 보인다.
빌런의 행동은 진화가 되는데 왜 난 계속 제자리에서 항상 대표가 되어서 욕을 한 사발을 얻어먹는지.
나는 나를 바라보면서 묻는다.
“나는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것인가?, 누가 옳고 그른 것인가? 고지식하게 열심히 일하고 책임자로서 책임을 지는 내 모습이 한심하고 이상한 것인가? 정말 무능한 것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뒤늦게 깨달은 나의 중대한 실수!
내 인생 우선순위를 잘못 정했다. 회사가 아닌, 내가 먼저였어야 했다.
회사를 위해 내 간과 쓸개까지 다 바친 나는 바보
회사를 위해 고개를 숙인 바보 같은 나
회사를 위해 헌신한 바보
천억이 내 돈도 아닌데 난 왜 이렇게까지 해야 했나?
책임감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바보 같은 내 우직함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