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태양은 회사
회사 상사에게 받는 가스라이팅, 빌런과의 트러블, 업무량의 무게, 빠져나올 수 없는 쳇바퀴에서 돌고 도는 악몽이 지속되는 나날들. 아직도 난 회사를 태양으로 알고 회사 중심으로 내 삶은 돌아간다. 그동안의 불평불만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돈을 위해 자존심까지 버린 것인지 나 자신이 한심하지만, 머리 위에서 짓누르는 업무량 때문에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는 시간조차 없다. 숨을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할 뿐이다.
내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을 하면서 보낸다. 저녁에 육퇴를 하고 난 뒤 자연스럽게 다시 책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밀렸던 일을 시작한다. 늦은 저녁도 밤에도 장소만 바뀌었을 뿐 회사 일은 계속된다. 즐거워야 할 주말이 와도 주말에는 또 다른 가족 업무 엄마가 되어야 하고 주말 저녁에도 프레젠테이션 준비하거나 또 일을 한다. 아파도 누워서 일을 하고 휴가 때도 여전히 울리는 전화를 받으며 미친 듯이 일만 한다. 업무량이 많은 것이 아니라 일을 못 하는 사람 아니냐고?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차라리 일을 못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루에 쏟아지는 이메일은 200통이 넘는다. 그 이메일 중 100통이 넘는 이메일 업무는 반드시 내가 다 처리해야 한다. 내가 결정 상항을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책임자이기에. 그 와중에 현장 미팅, 화상 미팅. 오전에서 시작한 미팅은 오후 5시까지 계속된다. 오후 5시가 넘어야 내 진짜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밀린 이메일에 답신해야 하며 다른 팀에서 필요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넘겨야 한다 (언제나 데드라인은 이메일 받은 그날 아니면 다음 날 오전, 특히 런던에서 오는 이메일은 바로바로 답을 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협력사 계약서들을 작성해야 하고 사장단 그리고 투자자 프레젠테이션을 만들어야 한다. 그날 있었던 미팅 중에 바로 해결해야 하는 일들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그 지긋지긋한 빌런과 진상 고객의 이메일은 없는지 두 번씩 확인한다. 그들의 이메일이 없는 날은 행운의 날이다. 그날은 생각보다 일찍 퇴근해서 아이와 한 시간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과의 시간은 거의 없다. 내 시간은 없다.
불필요한 의무감, 내가 없으면 프로젝트 진행이 안 된다는 오만함, 멍청함과 무조건적인 회사 충성심.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피폐하게 만들고 불행을 가져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는 회사 일. 나 같은 존재는 언제나 버려질 수 있음을 인지를 못 하고 나의 삶이 없는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하루살이 같은 나날을 보낸다. 돈, 성공 그리고 가족이라는 줄다리기 사이에 끼여서 나라는 존재는 없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돈을 벌고 아이를 키운 것. 그 어디에서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고 내 삶이 점점 무너지고 있다. 제일 먼저 일어나서 잠옷 차림에 정신도 못 차린 와중에 회사 이메일부터 확인하는 이상한 인간. 이제는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을 맞이하는 것 자체가 고통. 제발 아무 일 없이 이날이 조용히 지나가 길을 바란다.
삶이 불행하다고 느껴진다. 그런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 자체가 고역스럽다. 바꾸어야지, 바꿀 거야 다짐을 몇 번이나 하지만, 역시 피곤한 일상에 치여서 내 다짐은 또 사라진다. 문제를 인식하는데, 해답도 아는데 왜 망설이는지. 왜 용기가 안 나는지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오늘도 하루가 지나간다. 불평불만만 가득했던 하루. 이렇게 반복되는 삶에서 언제 자유로워질지. 나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