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천지창조 / 안식일 / 환경보호
성경을 읽으면 처음 접하게 되는 부분 천지창조입니다. 1천 장이 넘는 성경이건만 창세기 1장부터가 이해가 안 됩니다.
첫째 날에는 하느님이 빛을 만듭니다. 둘째 날에는 하늘. 셋째 날에는 땅과 바다. 온갖 식물.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 다섯째 날에는 해양 생물과 하늘의 새. 여섯째 날에는 온갖 동물들을 만드시고 하느님의 모습을 지닌 사람을 창조합니다.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는 걸로 나옵니다.
실은 와닿지 않아요. 자연과학이 발단하기 전에는 신앙적으로 이해됐겠지만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한 오늘날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게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우리 대부분 '이게 정말 사실이야?'라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천지창조 현상을 믿으면 신앙심이 깊은 거고, 그렇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사람일까요. 이는 또한 과학적 증명인 진화론과 대치되는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주와 인간이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게 창조론이라면, 진화론은 빅뱅으로 우주와 지구가 생겼고 지구 생물의 점진적 변화로 새로운 종으로 발전한다는 과학 이론입니다. 우리는 경험론의 세상에서 살고 있죠. 수많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거나(귀납법), 명제를 세운 뒤 이를 증명해 새로운 과학적 이론을 만들어 냅니다(연역법). 이것이 오늘날의 과학적 접근법입니다. 경험론에는 신이 들어갈 틈이 없어 보입니다. 경험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과학적이지 않은 접근 방법을 4가지 우상으로 분류하죠. 과학(경험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창조론은 인간의 타고난 선입견이고(종족의 우상), 개인의 경험만으로 세상을 판단해 왜곡하는 것이며(동굴의 우상), 대중의 말을 신뢰하고(시장의 우상), 권위자가 말하는 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상입니다(극장의 우상). 과학의 시각으로 보면 창조론은 4가지 우상에 의한 오류를 범하는 겁니다.
그럼 이제 천주교 신앙인의 관점에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창조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우선 드리고 싶은 말씀은. 가톨릭교회는 성경의 내용을 토대로 세상이 그대로 창조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라면 하느님께서 6일간 세상을 만드셨다고 나오죠. 하루는 24시간이니 6일이면 144시간입니다. 성경에는 144시간 만에 세상을 창조했다고 나오지만 그대로 주장하지 않습니다. 천지창조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진실의 기록'입니다. 현상을 검증하는 과학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는 사실이 아니라는 거죠. 성경의 저자는 하느님이지만 인간 저자가 그분의 영감(성령)을 통해 작성한 책입니다. 인간에 의해 작성된 거라 당시 저자들이 살던 세계관이 반영되어 성경은 작성됐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읽을 땐 당시에 살던 저자의 입장에서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동시에 오늘날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창조설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실은 뭘까요? 하느님이 세상의 창조주라는 것과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겁니다. 창조된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빛과 어둠, 해와 달과 별, 모든 식물과 짐승.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게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안식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네요. 하느님이 6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7일째에는 쉬셨습니다. 한 주간을 시작하는 첫 번째 요일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월화수목금토일'을 말할 거 같아요. 명확한 기준은 없습니다. 나라마다 달라요(어느 나라는 토요일을 한주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답니다). 우리나라 달력은 일요일로 시작해서 토요일에 끝납니다. 다만 사람들이 월요일부터 일한 후 쉬는 의미를 가져오면서 한주의 시작을 월요일로 하는 문화가 형성됐어요.
그런데 이걸 왜 얘기하는 걸까요? 하느님이 안식일을 가졌던 건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유대인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정하여 쉬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우리는 일요일에 쉬게 됐을까요? 시간은 서기 3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로마 콘스탄티누스대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을 반포합니다. 이로써 오랜 기간 박해를 받았던 그리스도교인들은 종교의 자유를 얻게 됩니다. 콘스탄티누스대제 역시 기독교로 개종합니다. 그런데 그전에 믿었던 종교가 하나 더 있었습니다. 태양신을 섬기는 '미트라교'였어요. 황제는 미트라교와 기독교를 통합할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정하게 된 게 당시 기독교의 안식일이었던 토요일을 일요일로 옮기는 거였어요(일요일은 태양신의 예배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기독교인들이 바꾸는 데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명분이 필요했어요. 황제는 예수의 부활절을 내세웁니다. 예수는 금요일에 십자가 위에서 죽었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합니다. 일요일이에요. 콘스탄티누스대제는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자는 의미로 일요일을 안식일(주일, 주님의 날)로 바꾸게 됩니다. 이 안식일이 굳어지면서 비기독교인까지 포함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에 쉬고 있답니다.
마지막으로 환경보호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천주교인은 하느님께서 아름답게 만들어주신 이 자연을 보호해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으로 재사용 실천이 몸에 배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스웨덴에 스텐 구스타프 툴린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1950년대 경 종이봉투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습니다. 종이봉투의 원료가 무엇일까요? 나무죠. 종이봉투 제작을 위해 엄청나게 많은 나무가 베어졌어요. 그렇다고 종이봉투가 오래 사용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금방 찢어졌죠. 툴린은 환경보호를 위해 종이봉투를 대체할 제품을 만들었어요. 종이봉투에 비해 쉽게 찢어지지 않고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도 편하고 그로 인해 몇 번이나 사용할 수 있는 제품. 바로 비닐봉지입니다. 비닐봉지는 종이봉투를 대체하는 데 성공했어요. 산림파괴를 막을 수 있어 튤린은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알다시피 또 다른 문제가 있죠. 비닐봉지 역시 환경파괴의 가속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이젠 비닐봉지를 대체할 에코백이라는 제품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에코백으로 기후위기를 막자는 겁니다. 그런데 에코백 역시 완벽한 대체제는 아닙니다. 131회 정도 사용해야 비닐봉지 1회 사용과 같은 효과가 있어서 입니다(종이봉투는 3회 사용해야 비닐봉지 1회 사용과 같은 효과를 가집니다). 솔직히 에코백을 131회 사용이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대체제가 나온다고 해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슬픈 현실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안 쓸 수도 없으니 소비를 줄여야 합니다. 불필요한 소비를 말이죠. 재사용 횟수를 최대한 늘려 제작 수요를 줄여야 환경보호 효과가 있습니다. 분리배출도 잘해야 합니다. 불편함이 있겠으나 생활폐기물을 자원으로 재활용해 자연의 가치를 보존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