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도 중요한 감정 조절하기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과 하와는 인간의 삶을 시작합니다. 원죄의 벌로써 아담은 노동은, 하와는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게 되죠. 이들에게 두 아들이 태어나는데요. 한 명은 카인, 그리고 동생 아벨입니다.
'카인과 아벨'이라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십중팔구 두 형제간 갈등을 그려낸 작품이에요. 이유는 성경의 나오는 '카인과 아벨'의 모티브라서입니다.
카인은 커서 농부가 되고 아벨은 양치기 목자가 됩니다. 그리고 둘은 하느님께 제물을 바칩니다. 그런데 카인의 곡식 제물은 받아들이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물인 새끼 양만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카인은 기분이 매우 나빴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카인에게 말하죠.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하느님은 카인이 시기심이 잘못된 행동으로 이어질까 봐 경고하십니다. 하지만 카인은 참지 못했죠. 아벨과 함께 들판으로 간 카인은 돌로 내리쳐 아벨을 죽입니다. 아우가 어딨냐는 하느님의 말에 카인은 다음과 같이 말해요.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반문합니다. 참 대단한 카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거짓말을 했지만, 카인은 오히려 대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에게 대놓고 저항한 최초의 인물일 겁니다.
카인의 행동은 옛날 옛적 이야기가 아닙니다. 시기심과 질투심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하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요. 어렸을 적 학교에서는 자신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을 보면 질투가 나죠. 외모도 그렇고요. 인기도 그랬고. 운동 능력도 그렇고. 나와 비교해서 잘하는 건 다 얄미웠습니다. 저만 그런 걸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남과의 비교는 이성보다는 본능에 더 가깝습니다.
비교는 무조건 나쁜 걸까요? 그럴 리가요. 긍정적인 측면이 있죠. 선의의 경쟁을 유발해 발전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래서 더 좋은 대학, 대기업에 가거나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합니다. 또는, 내 몸 가꾸기를 위해 운동하기도 하고요. 여하튼 현재보다 나아지기 위한 행동들을 한다는 겁니다. 그런 동기부여가 있었기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가 잘살게 된 건 부정할 수 없죠. 그러면 뭐가 문젤까요? 경쟁이 너무 심하다는 겁니다. 상대방을 이겨야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어요. 부와 명예를 거머쥐기 위해선 계속 이겨야 합니다. 유독 우리나라가 심하긴 하죠. 그래서 경제적인 부분에선 선진국 반열에 오른 거고요. 생각해 봐야 할 건 그것이 목표인 건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게 내 인생에서 중요한 건가. 그것이 내 행복으로 연결되는 건가. 뭐 솔직히 말이죠. 그럴 수 있다고 봐요. 경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에 따른 성공이 따라오는데 행복 역시 비슷하게 따라옵니다. 불평등, 빈부격차 문제가 생기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네요.
결론적으로 경쟁을 무조건 나쁘게만 보지 말자. 하지만 우리나라 무한경쟁은 문제가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받아들여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기라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경쟁에 너무 매몰되면 부작용이 생긴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처럼.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인생은 하나의 병입니다. 대화를 많이 하세요. 자기 자신과 말이죠. 그래서 천주교는 좋습니다. 기도하면서 나는 누구이고, 무엇이고, 무엇을 찾고자 하는지. 나는 어떻게 살 것이며 내가 진정 바라는 건 무엇인지 기도하면서 생활하면 도움이 될 겁니다. 남과 비교하는 삶으로 기준점을 삼으면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없어요. 나 자신을 바라봐야 하는 시간에 내 경쟁자를 바라봐야 하거든요. 인생은 장기전입니다. 경쟁에 매몰되면 결국 지쳐요. 나 자신과 대화하며 살아가세요.
아침 출근길에 찍은 사진입니다. 봄꽃이 만개했네요.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는 일이 많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