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드로 바오로 대축일
이번 주일(6월 29일)은 천주교회의 달력(전례력)에서 성 베드로와 바오로의 대축일입니다. 아무래도 예수의 제자를 의미하는 '사도' 중 대표적인 2명이 있기에 관련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선, 왜 베드로와 바오로의 축일이 같을까요? 베드로는 예수의 첫째 제자이기도 하고 1대 교황이기로 한데 바오로가 그런 베드로와 축일이 같다? 이유를 찾아보진 않았습니다만 알 거 같아요. 바오로는 베드로와 동급이라서 일 겁니다. 바오로는 예수의 열두제자에 속하지도 않고 살아생전 예수를 직접 본 사람도 아니지만 기독교 발전에 가장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와 축일이 같을 겁니다. 그러면 어떤 공헌을 했는지 알아보도록 하죠.
기원후 30년경. 예수가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부활 후 40일간 지상에 머무른 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합니다. 이후 열두 제자들은 예수가 했던 것처럼 선교 활동을 이어갑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라 불리는 바오로의 복음 전파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성장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초대교회는 유대교와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율법과 할례 등 유대교의 전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죠. 실제로 그리스도교는 유대교 내 하나의 종파로서 존재했었습니다. 유대교는 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에세네파, 열혈당,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나자렛파로 나뉘었습니다. 이 무렵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 전통을 지키는 '유대 기독교인'과 유대교와의 단절을 주장하며 유대교 전통을 거부하는 '이방 기독교인'으로 다시 나뉘었습니다. 유대 기독교인의 대표가 베드로 사도였고, 이방 기독교인의 대표가 바오로 사도였습니다.
당시 베드로 사도는 초기 그리스도교가 유대교 내 하나의 종파로 있는 것에 대해 큰 문제 의식이 없었는데요.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는 유대인들이 절대적으로 믿는 율법만을 지키면 하늘나라로 갈 수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어요.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죠.
"율법을 통하여 의로움이 온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돌아가신 것입니다."(갈라티아서 2,21)
구절 그대로입니다. 유대인만이 율법을 잘 지킨다는 이유만으로 하늘나라(의로움)에 갈 수 있다면 예수는 헛되이 죽은 거라는 거예요. 바오로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에 대한 믿음만으로도 충분히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도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듯 초기 그리스도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베드로와 바오로는 신학적 갈등이 있었던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오로가 선교를 위해 해외로 떠난 사이 나자렛파 내에서 율법 강요에 대한 문제로 큰 논쟁이 발생합니다. 바오로는 이들의 분열을 막고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요. 열띤 공방이 벌어지지만 아쉽게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공전만 반복됩니다. 그런데 그사이 베드로가 환상을 보게 돼요. 이 내용이 사도행전에도 기록돼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러 옥상에 올라갔다. 때는 정오쯤이었다. 그는 배가 고파 무엇을 좀 먹고 싶어 하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음식을 장만하는 동안 베드로는 무아경에 빠졌다. 이어서 하늘이 열리고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땅 위에 내려앉는 것을 보았다. 그 안에는 네발 달린 짐승들과 땅의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그때에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베드로는 “주님, 절대 안 됩니다. 저는 무엇이든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베드로에게 다시 두 번째로 소리가 들려왔다.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사도 10,9-15)
이는 율법에 있는 '음식정결법'을 강제로 부여하지 말라는 것과 이방인들을 속되다고 하지 말고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환상을 본 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결정합니다.
「오랜 논란 끝에 베드로가 일어나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다른 민족들도 내 입을 통하여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에서 나를 뽑으신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 예수님의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사도 15,7-11)
이 말은 그리스도 신자가 예수처럼 세례를 받았고, 예수 역시 살아생전에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친구로 맞아 주었으니, 율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건 잘못됐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과감하고 용감한 결정이었습니다. 기존의 잘못된 관행이나 불의에 대해 맞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 냈으니까요. 자기 생각을 고치면서까지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현실에서의 부당한 지시, 나아가 자기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면서 바꿔나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를 감안하면 큰 진전인 거죠.
이러한 결정. 그러니까 율법이 절대적 가치를 가지지 않는다는 복음 선포는 그리스도교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합니다(전 세계 제1종교).
이상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에게 있었던 갈등과 대립, 그리고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살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