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탄생
세계 3대 시민혁명이 있다.
우선 영국 청교도혁명(1642~1651). 당시 영국 왕이었던 찰스 1세는 스코틀랜드의 무장봉기를 막기 위해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려 했다가 내분을 겪는다. 그 결과 찰스 1세는 처형되고 영국에 공화정이 실현된다.
두 번째로 미국의 독립혁명(1776~1783). 당시 피식민 지배를 받던 미국은 영국의 지나친 과세 정책에 반발해 독립을 선포한다. 그리고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1783년 파리조약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프랑스혁명(1789~1799). 미국 독립전쟁 지원을 비롯해 수많은 전쟁으로 국가 재정이 고갈된 프랑스는 전체 인구의 2%인 성직자와 귀족에게는 면세, 그러나 98%였던 국민에게는 가중한 세금을 매겨 강한 반발이 나왔고 결국 프랑스혁명이 일어난다.
이 3대 시민혁명의 공통점이 있다. 세금이다. 어느 누가 세금 내는 걸 좋아하겠냐만은 과도하면 혁명으로 이어질 정도로 중요한 게 세금이었다. 조선시대 동학농민혁명 역시 고부군수 조병갑의 부당한 세금과 착취로 시작하지 않았는가.
세금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이스라엘 왕국 역시 마찬가지라서다. 당시 솔로몬의 통치(기원전 970-933년)가 끝나고 아들인 르하브암이 임금이 되기 위해 이스라엘의 열두 원로들과의 스켐에서 만남을 가진다. 그 모임에서 이스라엘 북쪽 지파 사람들의 요구사항이 구약에 기록돼 있다.
“임금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멍에를 힘겹게 하셨습니다. 이제 임금님의 아버지께서 지우신 힘겨운 일과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임금님을 섬기겠습니다.”(1열왕 12,4)
온 이스라엘은 임금이 자기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은 것을 보고 임금에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다윗에게서 얻을 몫이 무엇이냐? 이사이의 아들에게서 받을 상속 재산이 없다. 이스라엘아, 네 천막으로 돌아가거라. 다윗아, 이제 네 집안이나 돌보아라.”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은 자기 천막으로 돌아갔다.(1열왕 12,16)
솔로몬 때부터 누적된 과도한 세금과 강제노동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이른 것이다. 이렇듯 이스라엘 남북의 분열은 오래전부터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솔로몬의 죽음으로 더욱 가시화됐고 르하브암이 개선될 여지를 남기지 않음으로써 명분이 구체화됐다.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12지파 중 북쪽의 열개 지파는 솔로몬의 부역 감독으로 있었으며 그 강제노동정책을 비난했던 예로보암을 임금으로 추대하며 북이스라엘 왕국으로 독립한다. 그리고 남쪽은 유다지파와 벤야민 지파로 이뤄진 유다 왕국이 된다.
이후 두 개의 왕국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다른 의식을 가지게 된다. 북 이스라엘은 토지가 비옥해 농경사회로 발달했고 남 유다왕국은 목축업이 주된 생산 양식이었다. 이렇듯 두 왕국의 생활방식이 달라지면서 종교관도 바뀌게 된다. 북이스라엘의 경우 농사가 주업이라 춘분, 추분에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준비했을 테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냈을 거다. 신에게 말이다. 그럼, 그 신은 누구인가. 야훼 하느님인가? 초창기엔 그랬을 거다. 그런데 제사는 아무 장소에서나 할 수 없었다. 그 장소는 예루살렘이었는데 그곳은 남유다 관할이다.
마음이 탐탁지 않다. 나라의 기강을 잡아 안정적으로 왕국을 이끌고 가야 하는데 시작부터 예루살렘에 오가며 교류한다면 남유다에 이끌리게 되는 사람들이 생길 거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종국적으로 북이스라엘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게 막아버릴까. 아니. 그건 안 하느니만 못한 방법이다. 예로보암 왕에 대한 반감만 커질 뿐이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동기 자체를 차단해야 할 텐데. 원인의 제거. 그런데 그 원인을 어떻게 없앨 수 있단 말인가. 생각해 보니 방법은 있다. 북이스라엘 주변 가나안 사람들 역시 북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농경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 역시 농사의 성공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야훼 하느님이 아니었다. 추수를 관장하는 풍산신(豐産神), 바알이었다. 그렇다. 하느님이 아닌 바알에게 제사를 지낸다면 예수살렘에 갈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그래서 예로보암은 황금송아지를 만든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바알을 모시게 한다. 이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흠숭하라'는 십계명 중 첫째 계명을 위반한 것이었다. 최고의 공경을 하느님이 아닌 바알 신에게 드렸으니 말이다.
이 두 왕국은 2백여 년간 크고 작은 전쟁을 했다. 그러다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한다. 남유다 역시 아시리아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의 침공이 일어난다. 패배가 결정되기 직전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린다. 그러자 다음날 아시리야 군 18만 5천 명은 철수하게 된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발진티푸스(심한 열과 피부에 빨간색 점이 온몸에 생기는 병)에 의해 물러났다고 후술 했다. 어찌 됐든 남유다왕국은 전쟁을 이겨낼 수 있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 제국 역시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한다. 유대민족은 바빌로니아에 맞서 용맹하게 싸웠지만 결국 B.C.601년 바빌로니아의 속국이 된다. 그 이후로도 저항했지만, 예루살렘마저 함락되고 만다. 네부카드네자르 왕은 유다민족의 반란을 막기 위해 8천 명을 바빌론으로 데려갔다(1차 바빌론 유수). 그래도 유대인들이 계속 저항하자 기원전 586년 남유다는 멸망한다. 그리고 추가로 수많은 유대인을 바빌로니아의 수도인 바빌론으로 유배했다(2차 바빌론 유수).
유대인은 자신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민족이라 믿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라가 망하고 타지로 유배를 가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생각했다. 그들은 원인을 자신들의 신앙심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바빌론에 도착한 그들은 매우 놀랐다. 바빌로니아의 문명이 이토록 대단한 것이었던가. 10만 명이 사는 도시라니. 진흙돌이 아닌 뜨거운 불에 달궈진 벽돌로 3,4층의 건물이 존재했다. 도시가 상당히 정비됐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공중정원이 있었다. 위층으로 물을 끌어올리는 기술. 그것뿐인가. 지식, 예술, 법률 시스템이 정비된 도시였다. 그야말로 충격이었으리라. 글도 모르는 야만족이라 생각하고 위대한 유대민족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봤는데. 특히 절정은 신을 경배하기 위해 만든 건축물 '지구라트(바벨탑)'이었다. 90미터 높이의 7층 탑인데 감히 이런 걸 이민족, 아니 인간이 만들었단 말인가.
그러나 그 영원할 것만 같았던 바빌로니아 제국도 과거의 영광으로 남게 된다.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 제국이 바빌로니아를 정복한다.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는 바빌론을 살펴보던 중 유대민족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유수 사실을 듣고는 아무 조건 없이 유대인들을 해방시켜 준다(이러한 사실로 아사야 예언자는 키루스 왕을 메시아로 칭송한다).
유대민족들은 기뻐했겠으나 또 다른 감정이 교차했다. 60년이었다. 바빌론으로 유수된 지 60년. 당시 평균 수명이 약 30년이었음을 감안하면 2세대가 흐른 거다. 예루살렘을 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아졌다. 예루살렘을 가보진 않았지만, 최고의 도시문명인 바빌론 보다 쇠퇴한 곳임은 지레짐작했으리라.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은 고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키루스 왕에 의해 해방을 맞지만 그들의 목적지는 다양했다.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는 게 의무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게 된다. 이 현상을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부른다.
“저의 하느님,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저의 하느님, 당신께 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에즈 9,6)
그래도 그들 중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빼먹을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에즈라 사제였다. 그는 바빌론 유수에서 해방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가 본 예루살렘의 모습은 다른 의미로 매우 충격이었다. 예루살렘 민족들은 야훼 하느님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하느님이 선택한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상실했다. 이제 에즈라의 사명은 명확했다. 이들을 다시 일깨우는 것. 에즈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율법)을 가르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 지난날 자신들이 하느님을 저버렸다는 것을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 에즈라는 모세5경(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편집을 완성하고 율법의 준수를 강화한다. 특히 다른 이방인과의 결혼을 파기하고 순혈주의를 옹호한다. 이미 이민족과 혼인을 한 유대인은 아내와 자식을 그들의 나라로 돌려보내기까지 한다. 오늘날 유대인들의 독특한 공동체 형성은 이 문화에서부터 이뤄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결정적인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바로 구약성경이었다. 아담. 카인. 노아 때의 사람들. 소돔 때의 사람들. 모세를 따르던 히브리인들처럼 유대민족은 야훼 하느님을 몇 번이고 실망시켰다. 그래도 주님께서는 우릴 구원해 주셨으며 그러기에 우리는 선택받은 민족이다. 우리에겐 항상 고통이 뒤따랐지만 언젠가 기름부은 자(메시아)가 등장해 우리를 구원해 줄 것이다. 따라서 유대민족이여. 자긍심과 희망을 가져라. 이런 메시지를 담은 구약성경을 작성한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편집은 어려웠다. 다윗-솔로몬 시대야 그렇게 오래된 일이 아니라 내용을 담아낼 순 있어도 그 이전의 이야기는 사실의 기록으로 담기엔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다. 그래서 에즈라는 최고의 문명이었던 메소포타미아 전승을 참고하기로 한다. 수메르 신화에서 아담 이야기를 만들고. 역사적 사실이었던 대홍수의 기록에서 노아의 방주를 엮어냈으며. 그 웅장한 지구라트에서 바벨탑 신화를 만들게 된다(신을 경배하기 위해 건설된 바벨탑은 그 신이 하느님이 아니었기에 부정적으로 묘사되었다). 모세 역시 메소포타미아의 사르곤 대왕의 신화에서 차입했다.
구약성경은 완성된다. 이로써 에즈라가 목표했던 유대민족의 종교적이고 정신적인 통일을 실현하게 된다. 오늘날 이스라엘에까지.
나에게 바벨탑은 그렇게 신화가 아닌 역사로서의 기록이라는 의미가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