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죄와 구원
인류 역사상 3대 사과가 있습니다. 3개 중 하나는 뉴턴의 사과가 있겠습니다. 뉴턴은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죠. 바로 보편중력입니다. 끌어당기는 힘을 계산함으로써 오늘날 인류 문명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력 측정이 가능하기에 고층건물을 올릴 수 있습니다. 중력값을 계산했기에 비행기가 떠다닐 수 있게 됐죠. 중력값이 계산 가능하기에 자동차가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거고요. 중력을 알기에 인공위성을 지구 궤도에 올릴 수 있게 됐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텔레비전, 인터넷은 인공위성이 있기에 가능해요. 그만큼 뉴턴의 사과는 우리 삶에 큰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폴 세잔, <사과와 오렌지>, 1899년경
인류 역사상 3대 사과 중 두 번째는 폴 세잔의 사과입니다. 일반 정물화와는 다릅니다. 다양한 각도에서 그린 듯한 사과와 오렌지는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원근법도 적용되지 않았습니다(소실점도 없어요). 그동안 보이는 대로 멋지게 그리는 게 좋은 미술이라는 관념을 깨고 본인이 느끼는 대로 그려도 예술이 된다는 걸 일깨웠습니다. 후기 인상주의라고 하는데 기존 눈으로 보이는 그대로를 그렸던 인상주의에서 자신의 감정까지를 표현한 걸 후기 인상주의라고 합니다. 폴 세잔의 사과는 야수파, 큐비즘, 초현실주의 등 현대미술의 출발을 알렸습니다.
이제 남은 사과를 말해야겠죠. 눈치채셨겠죠? 아담의 사과입니다. 하느님은 세상 창조 여섯째 날에 당신의 모습대로 진흙을 빚으신 뒤 코에 입김을 불어 넣어 사람(아담)을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마련하여 지키게 합니다. 다만 그 한가운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는 따먹지 말라는 당부를 하셨죠. 그런데 아담의 반려자인 여자(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아담과 함께 열매를 먹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에 대한 벌로 노동과 출산의 고통을 받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게 되죠.
솔직히 이 부분은 정말 많은 의미가 있어 여기에 다 담을 수 없습니다. 다만 지난 글에서 성경을 읽는 두 가지 방법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죠. 하나는 당시 성경 저자의 의미와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 '비평적 독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하느님이 전하고자 하는 '거룩한 독서(렉시도 디비나)'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창세기 아담과 관련한 의미는 정말 많으므로 '비평적 독서'와 '거룩한 독서'에서 바라본 의미 하나씩 얘기하겠습니다.
우선 비평적 독서. 인류 역사가 250만 년이라고 한다면 249만 년 동안은 수렵채취생활(구석기시대)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한 게 아니었어요. 먹을 걸 찾으러 돌아다녔다는 뜻입니다. 그러다 불을 사용하는 '신석기 혁명'으로 정착문화가 생겨났습니다. 농업혁명이었죠. 사람들이 농사를 하게 되면서 정착을 하게 됐고 소, 양을 길렀으며 그로부터 고기, 우유, 가죽을 얻었습니다(인간의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특히 기원전 9000년경에는 은을 교환 단위로 사용했고, 기원전 2500년경에는 첫 화폐(세켈)가 생겨났습니다. 사유재산이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의 사과는 바로 이 사유재산의 중요성을 강조한 거란 의미입니다. 사유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계급이 생겨났죠(오늘날에도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계급이 나뉘는 거랑 같습니다). 창세기가 쓰인 당시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내용이 들어갔다고 하네요. 물론 다른 의미도 많습니다. 저는 사유재산 개념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으로 들려와서 설명해 봅니다. 재산권이 처음부터 쉽게 보장되진 않았을 거예요. 원래 모든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었는데 언제부턴가 저 나무의 열매는 실은 주인이 있었다고 하면 바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도 같습니다. 재산권을 지키고 안 지키느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사유재산이 없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고, 누가 혁신을 추구할까요. 오늘날 자동차, 냉장고, 스마트폰, AI까지 모든 물건은 개인들이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겁니다. 인류 발전을 위해, 후대를 위해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란 거죠. 엄밀히 말해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도 대부분은 내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아담의 사과를 신앙의 관점에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 창세기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하고자 작성된 글이 아닙니다. 아담의 사과 역시 마찬가지죠. 그렇다면 아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하고자 할까요? 아담과 연관된 단어는 하와, 사과, 뱀이 있을 수 있겠고. 그리고 '원죄'도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걸 원죄라고 하고 이 원죄가 후대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는 게 죄라고 정의합니다. 사과를 먹어도 된다고 뱀이 유혹하죠. 우리는 유혹을 받아 타락합니다. 그로 인해 출산의 고통과 노동이라는 심판을 받습니다. 죄는 그에 따른 벌을 받게 됨을 의미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남으로 하느님과 단절되죠. 현실에서도 죄를 지으면 하느님과의 관계가 악화됨을 말합니다.
이렇게 인간은 죄를 지으면 최종적으로 하느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며 살아가죠.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말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천주교에서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모든 죄를 용서받고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갖은 유혹을 받고 죄를 짓죠. 하느님은 죄를 지은 우리가 회개하여 다시 돌아올 기회를 주시는데 바로 고해성사입니다. 회개는 죄를 반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을 가져옵니다.
현실이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잘 견디며 지냈으면 합니다. 물질만능 시대에 돈이 가볍게 보이진 않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걸 하며 즐겁게 공부하길 바랍니다.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라고 물으실 때 숨지 않고 피하지 않고 핑계 대지 않고,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이 되길 바랍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요한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