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시험이 오늘날 우리에게 묻는 것
이제 아브라함의 마지막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가장 유명한 일화,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는 장면입니다. 신께서 그를 시험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네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가거라. 거기에서 그를 번제물로 나에게 바쳐라."(창세 22,2)
신의 목소리는 단호했습니다. 아, 여기서. 그는 정말 '외아들'이었을까요? 성경에서는 그에게 이미 여종 하갈을 통해 낳은 첫아들, 이스마엘이 있었음을 증언합니다. 그리고 훗날 후처를 통해서도 여섯 명의 아들을 더 두었습니다. '외아들'이라는 표현은 사실관계의 기록이라기보다, 본처 사라에게서 난 언약의 상속자로서 이사악이 지닌 독보적인 지위를 부각하기 위한 신학적 강조였을 것입니다.
이는 성경을 작성한 사람에 의해 기록이 다듬어졌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누군가는 성스러운 경전에 인간의 편집이 개입되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종종 인간 저자들의 손을 빌려 자신의 뜻을 전했습니다. 신의 영감이 깃들었다 해도, 그 글을 적어 내려간 것은 결국 인간이었기에, 우리는 성경이 작성됐던 시기의 배경과 언어적 한계, 심지어는 후대의 번역이나 주석이 덧붙여지는 과정까지도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여하튼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름에 순응합니다. 그는 이른 아침, 잠에서 깨어나 나귀에 안장을 얹었습니다. 아들 이사악을 데우고 제물에 쓸 장작을 쪼개어 묵묵히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은 꼬박 사흘을 걸어 신께서 지시한 곳에 당도했습니다. 그곳은 훗날 '알 아크사 모스크' 혹은 '바위 돔'이라 불리게 될 성전산이었습니다. 오늘날 그 바위 언덕은 중첩된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야훼께서 천지를 창조하고 첫 인간 아담을 빚으신 곳. 아브라함이 백 세에 얻은 아들을 바치려 했던 바로 그 장소. 솔로몬이 장엄한 성전을 지어 올렸던 터전. 시간은 흘러, 621년 어느 날 밤, 예언자 무함마드가 그곳에서 하늘로 올라 '알라'를 영접한 성소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에서 '알라'는 창조주를 일컫는 말로, 쿠란은 그가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과 동일한 존재임을 명시합니다. 그들은 신을 일컬어 아브라함의, 모세의, 예수의, 그리고 무함마드의 하느님이라 부릅니다.)
다시 돌아와서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고 장작을 벌여 놓았습니다. 아들 이사악을 밧줄로 묶어, 그 장작더미 위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칼을 잡습니다. 그가 아들을 향해 칼을 내리치려던 바로 그 찰나, 하늘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그를 부르죠.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천사의 음성이 이어졌습니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네가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이로써 아브라함에 대한 시험은 끝나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이 중대한 시험의 순간은 이슬람교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뤄집니다. 다만, 이야기의 핵심 인물이 달라요. 이슬람교의 경전인 쿠란에서도 아브라함(이브라힘)이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신(알라)의 명령에 순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많은 이슬람 전승에서는 그 아들을 이사악이 아닌, 그의 첫아들 이스마엘(이스마일)로 해석합니다. 신을 향한 절대적인 순종이라는 주제는 같지만, 그 믿음의 증거가 된 아들이 다르게 기억되는 것이죠.)
아브라함이 눈을 들자,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그는 숫양을 끌어와 아들을 대신해 번제물로 바쳤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의 이름을 '야훼 이레'라 불렀습니다. '주님의 산에서 마련된다'는 뜻으로, 오늘날까지도 회자되는 말입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이야기에서 또 다른 구원자의 모습을 겹쳐 봅니다. 이사악 대신 제물이 된 숫양에게서 신의 어린 양인 예수님을 떠올렸고, 이사악이 모리야 산을 오르며 지고 간 장작더미에서 골고타 언덕을 오르던 십자가의 그림자를 발견하고기 합니다. 제단에 묶였다가 풀려난 이사악의 모습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을 부활의 예표로 읽혔습니다. 그렇게 보면, '사흘째 되는 날'이라는 시간조차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습니다.
이 이야기는 시대를 불문하고 깊은 고민을 안겨줍니다. 그것은 명백한 '인신공양'의 요구였습니다. 이 극단적인 순종이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면, 오늘날의 사람들 역시 구원을 위해 그와 같은 수준의 믿음을 증명해야 하는 걸까요? 고대에는 존재했을지 모를 풍습이라 해도, 현대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습니다.
저는 이 모순을 풀기 위해 성경 구절을 찾아봤는데요. 우선 구약에서 호세아 예언자의 목소리를 발견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호세 6,6) 그리고 신약에서는 예수가 선언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일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다고 말입니다.(마르 12,33 참조) 또한, 그는 부유한 이들의 막대한 헌금보다 가난한 과부가 생활비 전부를 바친 작은 동전 두 닢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습니다("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3-4)).
오늘날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고 있지만, 돌아보면 그의 삶은 순탄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버지가 이교도였고 정든 고향을 떠나 정처 없이 방황해야 했고, 낯선 땅에서 기근을 겪으며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후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었지만, 백 세가 다 되도록 기다려야 하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럴 때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러한 부분, 즉 예측할 수 없는 미래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신을 신뢰하는 자세는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 사는 데 참고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사악을 제물로 바쳐야 했던 그 극단적인 행위까지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겁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모리야 산'은 아마도 직장에서의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일 수도, 혹은 도저히 해결될 것 같지 않은 인간관계의 갈등, 또는 나의 가장 소중한 계획이 좌절되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악'은 내가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나의 경력, 자존심, 혹은 내가 통제하려 했던 미래일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정말 말하려는 것은, 그 맹목적인 복종 자체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조차 '주님의 산에서 마련될 것'이라 믿었던 그 마음일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바로 그곳이 '야훼 이레'의 장소임을 기억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