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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경 Apr 19. 2023

누룽지와 숭늉

찬밥이 남았다. 모처럼 남은 밥으로 누룽지를 만들어 볼까?

누룽지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내가 초등학교를 마치고 서울에 왔을 때 엄마는 연희동 자동차정비소에서 구내식당을 하셨다. 커다란 양은솥에 밥을 한가득해서 정비소 직원 식사를 차리셨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면 양은솥 가득 있던 밥을 다 푸고 연탄불에 올려 누룽지를 만들었다. 엄마는 솜씨 좋게 태우지도 않고 솥 모양의 커다란 누룽지를 만들었다.  잘라서 식힌 후 라면 상자에 담아 보관하셨다.


따끈따끈 갓 만들어진 누룽지는 말랑말랑하면서도 꼬들꼬들 맛있었다.

가장자리는 바싹 말라서 성긴 얼음 조각처럼 입안에서 바사삭 부서지며 녹아내렸다.

누룽지를 만드는 동안 못 참고 솥 안을 들여다보며 “엄마 다 됐어? 다 됐어?”하고 보채던 기억이 난다.

불에 올려놓은 양은솥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밥이 누룽지가 되어가고 있었다. 보채는 나에게 엄마는 누룽지 한쪽을 떼어 먼저 먹으라고 주셨다.

뜨겁고 바삭바삭한 누룽지를 조금씩 떼어먹는 것이 나에겐 커다란 즐거움이고 행복이었다.

따스한 음식은 온몸과 마음마저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누룽지를 보면 엄마의 미소가 떠오른다.   


누룽지로 만든 숭늉은 우리 옛 조상님들의 음료였다. 식사하고 난 후 뜨끈하게 마시는 숭늉은 구수함과 함께 소화제를 마신 듯 속이 편해지는 역할을 했다.      




누룽지 : 가마솥 바닥에 눌어붙은 밥을 총칭하는 것. 사투리로는 깜밥, 깐밥, 깡개밥, 깡개, 누룽갱이 등으로 불린다. 일부러 프라이팬에 구워서 만드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밥 하다가 생긴 부산물이다.

끓인 물 자체를 강조할 때는 숭늉이라고 하나, 누룽지를 넉넉히 하고 함께 불려 퍼먹을 때는 누룽지탕이라고도 한다. 이는 누룽지에 물을 부어 끓인 것으로서 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 보통 집안의 어른(노인)이 치아 상태가 안 좋아서 먼저 먹곤 했다.

또한 예로부터 식사를 마친 뒤에 마시는 음료수. 기본적으로 담백하고 구수한 맛이지만 은은한 단맛도 느껴져서 식후 입 안을 개운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특히 전통적인 한국 요리는 맵고 짠 발효 음식이 많기 때문에 식사 후 입안에 짠맛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은데 숭늉은 이러한 것을 해소하는 데에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여기에 더해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 탄수화물을 끓였을 때 발생하는 구수한 향과 사전적 의미 그대로 담백한 맛, 미음에 가까운 식감, 따뜻한 온도의 시너지 효과로 속을 편안하게 해 주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은 '숭늉을 마셔야 식사를 완전히 끝냈다.'라고 여기기까지 한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숭늉은 식후에 거의 항상 즐겨 마시는 인기 음료였다. –나무위키에서 인용-




예전 일식 장사를 할 때 밥이 남으면 누룽지를 만들어 먹었다. 찬밥을 전자레인지에 살짝 돌려 데워지면 넓고 납작한 전골냄비에 밥을 얇게 눌러 펼친다. 주걱에 물을 묻혀가며 꾹꾹 눌러주고 약한 불에 오랫동안 올려놓으면 누룽지가 된다. 좀더 오래 보관하려면 한쪽을 노릇노릇 굽고 뒤집어서 좀 더 구워준다. 수분이 완전히 날아간 누룽지는 오래 보관해도 상하지 않는다.


바싹 말린 누룽지는 기름에 튀겨서 설탕을 뿌려 먹어도 맛있고, 뻥튀기 해주시는 아저씨가 오면 가져다가 뻥튀기해서 자루에 담아두고 간식으로 먹기도 했다.

소화가 잘 안되어 속이 불편할 때 끓여서 죽처럼 먹으면 소화도 잘되고 한 끼 식사로도 훌륭하다.


누룽지로 만든 음식 중에서도 별미로 꼽히는 것은 찹쌀 누룽지로 만든 누룽지탕이다.

바삭바삭하게 찹쌀 누룽지를 튀겨서 뜨거운 냄비에 담고 각종 해산물을 넣은 육수를 끼얹으면 촤아악 소리와 함께 달콤한 누룽지탕의 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갓 만든 누룽지탕은 달콤한 소스와 함께 씹히는 누룽지의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어우러져 소리만으로도 입에서 군침이 도는 맛있는 음식이다.

  


전설에 따르면 청나라 제6대 황제인 건륭제는 신분을 숨기고 강소성 소주 부근을 시찰하다 인근 농가를 찾아가 식사를 청했다고 한다. 마침 밥이 다 떨어졌고 밥풀이 솥바닥에 눌어붙었는데 여기에 야채 국물을 붓고 뜨겁게 끓여 황제에게 주었다고 한다. 이를 먹은 건륭제는 천하제일의 요리라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나무위키에서 인용-


예전엔 직화로 밥을 했을 땐 누룽지가 늘 만들어졌지만 요즘 전기밥솥은 누룽지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누룽지를 공장에서 만들어 팔고 있다.

옛날 누룽지, 현미 누룽지, 늘보리 누룽지, 흑미 누룽지 등 다양한 누룽지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다.

심지어 물만 부어 먹는 컵 누룽지도 있다.


바삭하고 따끈한 누룽지를 만들어 보자.

구수한 누룽지냄새가 주방에 가득 차면 흐믓한 포만감도 같이 차오를 것 같다.

누룽지 만들기가 어렵다면 시중에서 파는 누룽지 한 봉지 사서 따끈하게 한끼 식사로 끓여 먹으며 속 편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작은 즐거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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