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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현경 Jan 08. 2023

무생채와 아끼바레 쌀밥

일요일 아침 반찬으로 무생채를 만들었다. 나는 무생채가 좋다.

입맛 없을 때 새콤달콤 무생채에 고추장, 참기름만 넣고 쓱쓱 비벼서 한입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무생채를 만들면 오래전 직장동료였던 친구 S 집에 가서 먹었던 무생채무침이 생각난다. 새빨갛게 무친 무생채 한 그릇 그리고 윤기가 잘잘 흐르는 쌀밥.     


상업고등학교 졸업하기 전 미아리에 있는 **주식회사 경리부에 취직되었다.  내 입사 소식에 기뻐한 언니는 출근하는 나에게 남대문시장에서 웨지 굽에 까만 에나멜 구두를 사다 주었다. 금색의 실선이 가로로 몇 줄 그어진 구두에 언니가 만들어준 옷을 입고 첫 출근 했다. 시장과 마트를 관리하는 회사였는데 경리부 직원만 열 명 이상이었다. 커다란 계산기를 빠르게 타자 치듯이 두드려서 집계표 모아 계산하는 게 나의 일이었다. 입사했을 때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한 친구가 두 명 있었다. J는 집이 상도동이었는데, 당시 고급옷 브랜드인 조이너스 옷에 고급 구두를 신고 출근했었다. S는 충남 아산 아가씨였다. 커다란 눈에 쌍까풀이 있어 개구리 왕눈이처럼 귀엽고 예쁜 얼굴이었다. 둘 다 성격도 서글서글하니 명랑한 친구들이었다. 우리 셋은 같은 또래여서 금방 친해졌다.


경리 부장님께서 입사 축하 회식을 하자시며 남대문에 있는 ‘홀리데이 인 서울’에 경리부 직원 모두 데리고 가셨다. 공연을 보면서 저녁 식사를 했다. 처음 먹어보는 돈가스에 나이프 사용하는 법도 어설펐지만 다른 사람들이 먹는 모습을 따라서 식사했다. 식사 후에 웨이터들이 앞쪽의 테이블을 치우고 넓은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잠시 후 커다란 음악 소리에 맞춰 화려한 복장의 러시아 무희들이 깃털 부채로 춤을 추면서 등장했다. 쿵쿵 울리는 음악 소리에 현란한 춤솜씨. 공연을 처음 구경하는 나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날씬한 무희들이 윙크하며 퇴장했다. 공연이 끝나자 S와 J가 무대 앞으로 나가자고 한다. 얼떨결에 끌려 나가서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몰려나와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나 춤 못 춰” “그냥 흔들면 돼”

상기된 얼굴의 S는 능숙하게 춤을 추었다.

“춤은 언제 배웠대?” 내가 놀란 표정을 짓자 S는 웃으면서 신난 표정으로 춤을 추었다. S가 춤추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처음 알았다. 그 후에도 경리부 회식을 하면 S는 나이트클럽에 가자고 부장님을 졸랐다.


S와 J는 다른 직원들과 클럽에 가는 눈치였지만, 나는 언니랑 같이 월세방에 사는 처지였고,  남동생이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 월급을 받으면 동생 학비와 생활비를 보태야 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쓸 돈이 많지 않아 같이 어울리기 힘들었다.  나만 소외되는 것으로 보였는지 11월 초 S와 J가 가을 단풍 보러 온양에 놀러 가자고 했다. 숙박은 충남 아산에 있는 S네 집에서 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로 처음 가는 여행이라 두근두근 설레었다. 언니의 바바리코트로 멋을 부리고 고속버스를 탔다. 현충사로 가는 길에 노란 은행잎이 쏟아지는 산책로가 장관이었다. 빨간 단풍 구경도 하고 서로 사진도 찍어주었다. 충무공이순신기념관도 둘러보았다.      


어둑어둑해서야 S 집으로 갔다. 아버님과 어머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오랜만에 우리 집에 간 느낌이었다. 시골집 사랑방은 노란 기름종이로 바닥을 바르고 윤이 나게 닦아 반들반들했다. 아랫목에 거뭇거뭇 눌은 자국이 있는 방은 정겹고 따끈따끈했다. 딸 친구들 온다고 아버님께서 장작불을 많이 때셨는지 더워서 땀이 났다. 사우나 하는 것처럼 뜨끈하니 좋았다. 노곤하게 피로가 확 풀렸다.      


잠시 후에 어머님이 옻칠한 둥근 상을 들고 들어오셨다. 들기름 발라서 고소하게 구운 김을 이쑤시개로 꽂아서 한 접시, 새빨갛게 무친 무생채 한 그릇 그리고 윤기가 잘잘 흐르는 쌀밥. “이번 가을에 수확한 아키바레 쌀로 만든 밥이야” 딸친구들 왔다고 귀한 쌀로 밥을 지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우리는 입을 모아 “잘 먹겠습니다”를 외쳤다. 다른 반찬들도 있었는데 기억에 없다. 김에 하얀 쌀밥을 싸서 무생채를 조금 올려  먹었다. 그때 그 맛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에 침이 고인다. “밥 더 줄까?” 어머님께서 찐 고구마를 한 바구니 주시며 다정하게 물어오셨다. 식사량이 밥 반 공기였던 나에게 밥 한 공기는 먹기 버거웠지만 새콤달콤 고소한 무생채 김밥이 너무 맛있어서 밥그릇을 다 비웠다.      


요즘 인터넷에 조회하면 웬만한 요리하는 법은 다 나온다. 맛있었던 무생채가 생각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 봤지만, 그때 먹었던 무생채 맛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어머님의 손맛과 정성, 따스한 시골 방의 정겨움, 종일 돌아다녀 지치고 허기진 위장 덕택에 더 맛이 있었던 것 같다. 꿈에 맛본 듯 바삭바삭했던 김과 무생채 맛, 따끈한 흰쌀밥이 생각난다. 그때로 돌아가 뜨끈한 구들장에 엉덩이를 지지면서 친구들과 다시 그 상 앞에 앉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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