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제주, 안덕에서 서귀포로

제주도에서 2주 동안 살아보기

by 데이지

DAY 4


오늘은 2박 3일 동안 잘 지낸 안덕면을 떠나는 날이다. 오전 일찍 체크아웃을 위해 분주히 짐을 싸고 마지막 아침식사를 먹기 위해 분위기를 내보았다. 메뉴는 토마토, 뚜레주르표 연유 바게트,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창밖으로는 산방산이 보이고, BGM으로 턴테이블을 켜 두고 먹는 여유로운 아침. 평소 출근 준비로 커피 마시는 것 외에는 잘 챙겨 먹지 않는 아침을 9시가 넘어서 여유롭게 먹다 보니 평일도 주말 아침 같은 기분이었다. 역시 다른 사람들이 일할 때 혼자 노는 게 제일 달콤하구먼.ㅋㅋ

아마도 마이클 부블레와 또 다른 재즈 뮤직 바이닐을 번갈아 들었던 것 같다




펜션 체크아웃 후, 두 번째 수강하는 드롭인 수업을 듣기 위해 방문한 아가스트 요가. 이 날도 상대적으로 정적인 인요가 수련을 했다. 인요가는 뼈와 근육들을 자연스럽게 이완시키기 위해서 힘을 풀고 오랜 시간 한 자세에 머무는 요가이다. 아사나를 완성하기 위해 애를 쓰지도 억지로 힘을 주지도 않는다. 그저 중력에 의해 내 몸이 스스로 이완될 수 있도록 하는 것. 호흡과 명상 수업에 이어 인요가 또한 스스로 내면의 고요를 느끼고 신체의 긴장을 낮추기 위해 신청한 요가인데 유독 빡세게? 수련했던 전날 하타 수업 이후의 근육통을 달래주기 위한 목적도 겸사겸사였다. 평소 업무상 잦은 회의와 여러 사람들과의 기술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많을 수밖에 없는 나로서는 머릿속에 항상 생각이 가득했고, 협업하는 과정에서 내 업무뿐 아니라 전체 일정까지 관리해야 하는 태스크 더미에서 아마 나 스스로를 톱니바퀴처럼 쉴 새 없이 굴렸으리라. 그래서 조용한 자연 속에서 이런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귀하고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특히나 이 수업은 전날에 비해 더욱 사람들이 붐볐는데 (대부분 드롭인 수강생들로 보였고) 나처럼 편안한 이완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음이라 생각했다.

수업 시작 때 선생님이 주신 아로마 오일을 손바닥에 바르면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 후, 편안한 자세를 취하면서 점점 근육의 이완에 집중했다. 억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중력에 맡기는 과정. 중력으로 서서히 이완되는 근육을 느끼고자 집중하니 잡생각 또한 사라졌고, 그동안의 긴장으로 굳어진 내 몸이 마치 깨끗한 물에 물감 한 방울 떨어트린 것처럼 서서히 풀어지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가 사는 동안에도 죽을 만큼 노력해야 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나를 잠식시키지 않도록 힘을 빼고 현재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도 필요할 것 같다는 꽤나 철학적인 생각도 들었다.

수련이 끝난 후 새소리가 들리는 곳을 따라 찍어본 사진. 이 날도 날씨가 참 맑았다.
이틀간의 수련을 마치고 돌아서는 길. 열심히 수련해서 또 올게!




드롭인 수업이 끝나고 점심으로 제주 메밀국수를 먹으러 원래는 '한라산 아래 첫 마을' 식당에 가려고 했다. 도착하고 보니 왠 걸, 12시가 되기도 전이었는데 오전 주문이 마감되었다고 한다. (정말 찐맛집인 것 같아 더 아쉬웠다ㅠ) 저장해둔 다른 메밀 국숫집으로 다시 넘어갈까 했으나, 배도 너무 고팠고 근처에 '애월연어' 가 눈에 띄어 들어가 보기로 했다. 주차된 차들을 보니 여기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구나 했고, 안에 들어가 보니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꽉 차있었다. 다행히 식사를 마치신 분들이 있어서 나는 10분 대기 후 바로 들어갈 수 있었고 제일 맛있어 보이는 스노우초밥과 매콤우동을 주문했다. 친절하신 사장님이 스노우초밥은 간장이 아닌 와사비마요소스에 찍어먹어야 제일 맛있다고 해서 (또 와사비러버인) 나는 듬뿍듬뿍 찍어 한 입 가득 먹었는데 입에서 정말 눈처럼 살살 녹았다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 맛있어서 와구와구 먹다가 살짝 느끼할 때쯤 매콤우동을 한 젓가락 먹으면 아주 개운개운. 계획 없이 들어온 곳 치고는 메밀국수를 먹지 못한 실망감을 말끔히 날려주었다.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면서 바라본 바깥 풍경
스노우초밥. 저 와사비 소스에 찍어먹으면 입안에서 녹는다




점심 식사 후에, 지난번 제주여행 때 '빛의 벙커' 전시를 보고 재미있어서, 이번엔 다른 전시를 찾아보다가 포도뮤지엄을 가보게 되었다. '너와 내가 만든 세상' / '케데 콜비츠 - 아가 봄이 왔다' 전으로 두 가지 전시를 볼 수 있었는데, 내가 방문했을 때는 네이버 예약을 통해 무료입장이 가능했다. 무료입장이라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전시장에 비치된 QR코드로 접속한 페이지에서 각 구역별 도슨트 설명을 들을 수 있어 좀 더 깊이 있게 관람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너와 내가 만든 세상'의 주요 테마는 사람들의 소문으로 시작된 루머와 편견, 차별, 그리고 혐오까지 이어지는 부분에 과정에 대한 경각심을 다루는 내용이었고, '케데 콜비츠 - 아가 봄이 왔다'는 작가인 케데 콜비츠가 세게 1,2차 대전을 겪으며 반전주의자인 독일인으로써, 그리고 전쟁 때문에 자식을 잃은 엄마로서의 슬픔을 담은 그림과 판화가 전시되어있었다. 나 또한 전시를 관람하면서 나 스스로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어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고 그 속에서 슬픔을 느끼기도 했으며, 이를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확인하며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전시 작품은 따로 업로드하지 않았고 직관을 추천한다.)

포도뮤지엄




이 근방에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한 제주 방주교회도 있었다. 교회라 하여 예배 중이거나 목사님 혹은 성도님들만 있을 것 같았는데, 도착해보니 꽤나 관광객이 많았고 평일이어서 예배는 진행하지 않고 있었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모티브로 지어진 교회여서 이름이 방주교회인 듯했다. 뜨겁게 비추는 햇살이 지붕 유리에 반사되어 아우라처럼 보였고, 주변에 흐르는 잔잔한 물이 대홍수 속 물에 떠있는 방주를 연상케 했다. 교회 내부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영화 속 결혼식 장면처럼 작지만 아름다운, 그리고 평화로워 보이는 교회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찬송가 멜로디. 종교 유무를 떠나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만져줄 것 같았다.

방주교회 입구의 반대편. 이 방향이 훨씬 멋있는 장관을 자랑한다
교회건물 주변으로 흐르는 잔잔한 물가
교회 내부




다음 행선지는 까사로마 호텔. 안덕면을 떠나 4일 차부터 서귀포 시내에서 2박 3일을 보낼 숙소였다. 사실 가성비 숙소로 지낼 목적으로 예약했는데 혼자 지내기에 꽤나 아늑한 사이즈의 룸이었으며 컨디션도 생각보다 많이 좋았다. 다만 위층 객실에서 밤늦게 대화하는 소리나, 복도를 지나면서 얘기하는 사람들 대화가 엄청 잘 들렸다. 많이 예민하지만 않다면 저렴한 가격 (나는 당시 1박 6~7만 원 대로 예약한 것 같다)에 조식과 루프탑 수영장까지 이용할 고객에게 정말 가성비 갑인 곳이다. 사실 나는 잠에 매우 빨리 드는 편이고 (물론 너무 시끄러우면 나도 못 잔다) 잘 깨지 않고 자는 편이어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장 큰 단점인 호텔 앞 주차공간이 많지 않아서 만차인 경우 좀 더 거리가 떨어진 주차장을 이용해야 했는데, 나는 대부분 이른 저녁 시간대에 도착해서 호텔 정문 앞에 여유롭게 주차할 수 있었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바라본 바다




서귀포 시내로 이동한 김에 밖에서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호텔 바로 옆 이자카야 '산야'에 갔다. 볏짚 타다키가 유명한 이자카야였는데, 참치 타다키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대신 치킨 난방과 명란 짚불구이를 주문했다. 물론 시원한 진저 하이볼과 아이패드로 챙겨 볼 우리들의 블루스도 빠질 수 없었다. 먼저 나온 하이볼 한 모금 마시고, 이어 나온 부드러운 치킨 난방 한입 먹으니 하루치 피곤이 금세 가셨다. 먹다 보니 궁금해서 시켰던 명란 짚불구이는 익숙한 듯 새로운 별미였다. 짚불에 구워서 불향이 살짝 나면서도 짭조름했고 오이와 마요 소스를 같이 찍어먹으니 적당히 간이 맞아 더 맛있었다. 그리고 다시 하이볼 한 모금. 나는 보통 혼밥이나 혼술을 즐기지 않는 편인데 앞으로 혼술이 좋아질 것 같았다. 하하. 물론 일행과 같이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도 부지런히 놀은 나 자신을 칭찬하며 짠짠짠!

진저 하이볼과 치킨 난방
명란 짚불구이
열심히 먹다가 뒤를 돌아보니 아름다운 노을이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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