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제주, 요가의 연속

제주도에서 2주 동안 살아보기

by 데이지

DAY 5


서귀포에서의 이튿날, 원래는 어김없이 미리 프립 앱에서 예약해두었던 요가 클래스 수업을 들었어야 하나, 갑작스럽게 전날 수강인원 미달로 취소되었다. 새연교 방향을 바라보며 요가를 할 수 있는 곳인데 너무 아쉬웠다. 아마도 갑작스러운 외벽공사로 맑은 날씨의 상쾌한 뷰를 기대하던 드롭인 수강생들은 모두 취소한 것 같았다. 그래도 요가는 하고 싶었기에 급한 대로 서귀포 시내의 요가원을 찾아 미리 연락하고 그다음 날까지 이틀을 등록했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운전해서 찾아간 하라요가원. 이 날은 빈야사 수업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원데이 클래스를 듣는 사람은 나 혼자였고 보통 고정적인 인원의 회원님들이 출석하시는 듯했다. 수업 내내 원장님은 기본적인 자세와 정렬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분명 집 근처 요가원에서도 수업마다 중간중간 항상 하던 다운독 자세인데 나도 모르게 정렬에 맞지 않게 굳어진 위치와 습관을 하나하나 잡아주셨다. 제대로 된 정렬을 잡고 나니 다운독 자세가 이렇게 진땀 나는 자세인 줄 이때서야 알았다. 그 외에도 하이런지, 전사자세, 차투랑가 등등... 자주 하는 기본 요가 자세들부터 정렬을 다시 체크하는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무심했던 삐뚤어진 발 아치와 다리, 라운드 숄더, 거북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제대로 체감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원장님이 내려주시는 따뜻한 차로 몸을 이완시켰고, 다른 회원님들과 나의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면서 마무리했다.

요가원 한편에 자리한 싱잉볼들



요가 수업이 끝난 뒤, 다시 돌아온 호텔. 평일 오전이다 보니 사람 없는 한적한 수영장에서 좀 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에 몸을 잠시 담그고 있다가 책도 읽으며 쉬다 올 생각이었다. 후다닥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올라가니 날씨는 약간 흐렸지만 서귀포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왔고, 생각보다 따듯한 물속에서 나는 혼자 신나게 물장구치고 숨 참기 연습도 하면서 나름 재미있게 논 것 같다. 사실 나는 물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물에 대한 공포심을 조금이나마 지우고 싶어 계속 숨 참기를 연습했는데, 숨을 참는 것보다 떠오르려고 하는 머리를 물속에서 버티고 있는 게 더 어려울 줄이야? 서울 가면 (살기 위해서라도) 꼭꼭 수영 배워야지.

까사로마 호텔 루프탑 수영장
수영장에서 보이는 서귀포 칠십리공원
새섬과 서귀포항




융드립 커피로 유명한 '홉히워크룸', 평일엔 오후 3시까지만 운영해서 점심도 미루고 부랴부랴 달려간 곳이다. 사실 이곳은 친한 직장동료와 함께 작년 제주여행 중 가고 싶었던 첫 카페였는데, 당시 임시휴무로 (심지어 그날 오전에 임시휴무가 걸렸다) 아쉽게 먹어보지 못했던 곳이었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나중에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줄곧 얘기하곤 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가게 되었다. (나 혼자 가서 미안해!!ㅠ) 앉아서 마실 테이블 하나 없이 오직 카운터와 작은 주차장만 있는 곳이지만, 만차여서 주차를 대기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나는 시그니처 메뉴인 크림 커피를 주문했는데, 역시나 흔히 먹는 아인슈페너가 아닌 묵직하고 진한 크림에서 아주 꼬소한 맛이 느껴졌다.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돌아다니며 밥 한 끼 못 먹어 지쳐있었는데 순간 크림 커피로 당수혈 받아 온몸에 호랑이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정신이 번쩍 들고 세상 기분 좋아지는 그런 맛. 다음번에는 구수해 보이는 따뜻한 융드립 커피로 몸을 녹여봐야겠다.

융 시트로 내려지는 드립 커피는 처음이야
홉히워크룸 방문 인증샷. 동료에게 바로 보내주었다
카페 앞에 자리 잡은, 아니 아예 드러누운 길냥이. 귀여우니까 그냥 지나칠 수 없지



홉히워크룸에서 멀지 않은 곳에 뿔소라 맛집이 있다고 해서 부랴부랴 달려왔는데... 브레이크 타임에 딱 걸리고 말았다. 배는 고프고 아는 식당은 없고... 그래서 그냥 들어간 옆집 식당이 '다도'이다. 평소 죽을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이 날따라 메뉴에 있는 전복죽이 당겨서 주문했는데, (와 나 자신 칭찬해) 이렇게 진하고 깔끔한 맛의 전복죽이 나올 줄이야. 전복도 두둑이 들어 있었고, 같이 나온 반찬 하나하나가 너무 맛있어서 감격했다. 전복죽은 뜨거우니 어쩔 수 없이 한입한입을 호호 불어서 음미하며 먹었는데, 적당한 바다내음과 고소함이 최고였고, 양도 성인 남성이 먹어도 절대 모자라지 않을 만큼 넉넉했다. (물론 나도 배불리 다 먹었지만ㅋㅋ)

정말 제주도는 1가게1냥이가 국룰인걸까. 전복죽 기다리며 바라본 가게 정원에도 노란 냥이가 흙장난하고 있었다
전복죽과 맛있는 미역국, 그리고 반찬들




숙소에 돌아가기 전, 조용히 쉴만한 근처 카페로 검색해 찾아간 곳은 'UDA'. 카페 곳곳에 심어진 야자나무와 트로피컬 컬러의 조명으로 꾸민 휴양지 컨셉이 확실한 곳이었다. 높이 3층인 건물에 내부가 야외정원으로 연결되어있었고 1층은 작은 전시장도 따로 마련되어있어 휴식과 문화를 모두 즐길 수 있는 카페였다. 특히나 이름이 UDA인 만큼 인테리어 소품 하나하나에 U, D, A 모양이 들어가 있는 부분도 매우 귀여웠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설치된 미술작품
작가들의 시를 걸어둔 전시장에서도 조용히 머무를 수 있다
곳곳에서 발견된 귀여운 U, D, A 들




3층으로 올라가 야외정원으로 나왔는데, 그 야외 계단에 빈백 좌석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빈백에 누워 조용히 휴식하기 좋은 공간이었다. 처음엔 저 멀리 바닷가를 보며 멍도 때리다가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책을 대략 30분 동안 읽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노곤했던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앉더니 꿀잠까지 잤던 나ㅋㅋ 예쁜 공간이니만큼 주말에는 무조건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평일에 간다면 조용히 한적함을 누리고 올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것 같았다. 누군가 서귀포에 간다면 꼭 추천해주고 싶은 카페 중에 한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메리카노, 책, 그리고 종알종알 새소리





숙소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서귀포 시장으로 구경을 갔다. 서귀포 시장에 자주 가는 관광객이면 무조건 들릴 수제 맥줏집 '제주약수터'. 이리저리 시장 먹거리, 과일, 기념품을 실컷 구경하다가 지쳐서 돌아갈 때쯤 마지막으로 제주약수터에 들리면 된다. 이 날도 포장한 먹거리와 어울릴만한 맥주를 골라서 원하는 용량만큼 담아갔다. 기본 설명은 상단 메뉴판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카운터에서 주문 시 궁금한 맥주 맛을 몇 가지 시음해볼 수 있었다. 이 날은 상큼한 과일향이 있는 월정리로 주문!




호텔에 오자마자 뜯은 나의 저녁 겸 간식거리. 줄이 짧아서 후다닥 사온 흑돼지김치말이와 오메기떡 보러 갔다가 엉뚱하게 들고 나온 제주감귤 찹쌀떡. 그리고 제주약수터 월정리 500cc. 솔직히 말하면 흑돼지김치말이는 생각했던 맛이었는데, 제주감귤 찹쌀떡이 은근 맛있었다. 귤이 달아서 그런가? 팥앙금과 너무 잘 어울렸고 떡 크기는 크지만 얇기가 너무 두껍지 않아서 퍽퍽하지 않았다.

많고 많은 오메기들 중에 선택한 제주감귤찹살떡은 단연 굿초이스




5일째 밤에는 호텔 지하 코인 세탁소에서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해치우고, 차와 캐리어에 남아있던 쓰레기와 분리수거도 정리했다. 하염없이 돌아가는 빨래를 기다리다가 (제주 여행은 너무 좋지만 계속 돌아다녀야 하는 피곤함에) 편안하고 아늑한 우리 집이 문득 생각났다. 호텔이 아닌 내 추억이 깃든 물건들이 반겨주는 우리 집. 이렇게 여행의 즐거움과 일상의 소중함을 동시에 느끼다니... 아직 5일밖에 안 지났는데 2주 살기 끝까지 즐겁게 마칠 수 있겠지? 하는 약간의 걱정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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