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제주, 숨은 오름 찾기

제주도에서 2주 동안 살아보기

by 데이지

Day7


서귀포에서 송당리로 떠나는 날. 빠르게 체크아웃하고 에그타르트로 유명한 '아줄레주'에 오픈런을 위해 부지런히 달렸는데 사장님의 병원 진료로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어쩐지 그 길로 들어가는 차가 나밖에 없었다.)


아쉬워서 찍은 외관. 아줄레주 언제 가볼 수 있을까ㅠ




아쉬운 대로 근처에 가보고 싶은 카페로 저장해두었던 '덴드리'로 출발. 근데 플랜B로 온 곳 치고는 너무 근사한 곳이었다. 외관도 내부 인테리어도 음식도 식기도 하물며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스페인 분위기가 물씬 녹아있었다. 나 제주 아니고 유럽여행 온건가...?

덴드리 입구
야외 포토존



외관도 외관이지만 실내에 있다 보면 더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 곳이었다. 내부 인테리어에도 통일된 컬러와 소품들로 갖추어 꾸며놓아 사진으로만 보던 스페인 분위기가 물씬 나는 듯했다. 테이블마다 예쁜 창문들이 나있었는데, 그중 최고는 바로 입구 옆쪽에 큰 테이블이 있는 자리. 큰 창문을 통해 밖에 귤?나무가 보이는데 그림 같은 뷰포인트이다. 분명 제주인데 제주가 아닌 느낌이 났다. 오픈 시간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손님들이 하나둘씩 들어찼는데, 주말이나 휴일에는 자리 잡기도 어려울 것 같은 곳을 운 좋게 오게 되어 아침부터 기분이 업됐었다.

내부에서 바라본 입구. 파란 문과 라탄 조명이 이국적인 느낌을 부른다
내부 테이블과 한 켠에 자리잡은 피아노
창밖 뷰가 액자 속 그림 같은 곳이다



이 날은 오후에 안돌오름에 올라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평소와는 달리 당 보충을 위한 청귤라떼와 크림브륄레를 주문했다. 미리 당 충전을 해두어 떨어질 체력에 대비했다고나 할까. 사진만 봐도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SNS 갬성 넘치는지) 알 수 있다. 청귤라떼의 시원한 그라데이션, 크림브륄레 톡톡 깨 먹는 맛. 정말 말모말모(하트)

청귤라떼와 크림브륄레




이 날의 주요 코스였던 안돌오름. 여기는 다른 오름들과 달리 잘 보이지 않는 입구 찾느라 꽤나 애먹었다. 일단 길목이 매우 긴 비포장 도로를 쭉 들어오다 보면 적당한 곳에 차량들이 주차되어있어 그곳에 나도 주차를 하고 걸어 들어왔다. 근데 비밀의 숲을 지나 한참을 더 안쪽으로 걸어 가보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없는 입구... 그래서 비밀의 숲 매표소에 물어봤더니 내가 갔었던 방향으로 500m 가면 입구가 있다고 했다. 나는 못 보았는데;; 다시 전방을 주시하며 가다가, 결국 블로그 검색으로 입구를 찾았다. 쓰러져 가는?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이 입구가 맞다는 것.


표지판과 꼬불거리는 입구가 보인다면 안돌오름 제대로 찾아온게 맞다




거짓말처럼 힘겹게 찾은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벽 같은 나무가 울창하게 뻗어있었다. 마치 나 혼자만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안돌오름 입구와 언덕길에서 보이는 경치
중간 중간 보이는 오름아래 전경과 멀리 보이는 한라산



씩씩거리며 올라왔는데 나무 벤치 하나가 보인다면 정상에 온 것이 맞다. 나도 정상인지 아닌지 가물가물 했지만? 역시 디지털 검색의 도움을 받아 정상인 것을 알았다. 이곳에 앉아서 저 멀리 360도 경치도 한번 둘러봤다가, 가까운 듯 멀리 보이는 한라산도 바라봤다가, 나중엔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고 왔다. 자연스레 명상이 되었던 곳이었다. 올라오는 길이 좁기도 하고 벌레도 많아 혹시나 뱀도 나올까 봐 조금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햇살 가득한 낮에 잘 올라왔다 싶었다.

안돌오름 정상
한라산 옆에 고래 구름 한 마리



오름을 내려와 비밀의 숲 방향으로 가는 길에 보였던 한적하고 시원한 들판. 여기서 돗자리 깔고 잠시 쉬었다 가는 것도 너무 좋을 것 같았다.




비밀의 숲은 안돌오름 옆을 산책로와 같이 조성해놓은 곳이었는데, 입장료가 1인 3,000원 정도였고, 여행객들이 많이 들어가길래 나도 따라 들어가 보았다.

비밀의 숲 입구



입구에서 쭉 들어오다 보면 큰 나무들 사이로 만들어진 산책로가 있고, 구역마다 테마가 있어서 사진 찍기 좋게 꾸며져 있었다. 오름에 올라가는 게 조금 힘들거나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비밀의 숲에서 걸어 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매우 좋을 것 같았다.

유채꽃밭이 이렇게 빛날 수가 있을까
포토스팟인 나무 그네




비밀의 숲에서 이동한 다음 장소는 '카페감귤달'. 사실 평대 해변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쉬려고 갔다가 시원하게 마실 당근주스를 사러 잠시 들렸다. 당근주스 두 병을 호기롭게 주문하고 카페를 둘러보았는데, 옛 원목가구들, 조명, 소품과 어우러진 플렌테리어가 새로운 곳에 여행 온 듯 한 느낌이 들게 했다. 또 카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여서, 안에서 편히 쉬면서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테이크아웃한 당근주스를 들고 평대 해변에 매트를 깔았다. 오전에 호텔 체크아웃하며 사온 서귀샌드도 펼치고 해변 곳곳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필름 카메라도 꺼냈다. 큰 돗자리에 대자로 누워 바닷바람을 쐬며 책을 읽는데 신선놀음이 이런 건가 싶었다.




새로운 펜션으로 체크인하러 가기 전, 저녁을 먹기 위해 들린 '벵디'. 항상 웨이팅이 많은 곳이라고 보았는데, 나는 애매한 시간대에 가서 그런지 바로 1인석에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시그니처 메뉴인 돌문어덮밥을 시켰다. 푸짐한 돌문어 한 마리가 밥 위에 얹혀서 나왔는데, 직접 가위로 잘라 밥 위에 한 입 먹은 문어가 세상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었다. 문어가 애초에 큼직해서 먹어도 먹어도 양이 줄지 않았고, 양념도 단짠단짠 하니 밥과 비벼먹는 게 꿀맛이었다.

식사를 하며 밖을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푸짐한 돌문어덮밥





8일 차부터는 송당리에서 2박 3일 동안 묶을 숙소로 순덕이별당펜션을 예약했다. 사실 2주 동안 숙소를 사용할 생각을 하니 비용도 만만찮았는데, 에어비엔비에서 송당리 근처 가성비 갑 숙소로 이곳을 찾아서 얼른 예약한 곳이었다. 복층 침실이고 널찍한 거실에, 무엇보다도 안쪽 테라스를 통해 청보리밭 뷰를 즐길 수 있다는 리뷰를 보고 한껏 기대하여 예약했으나, 계절상 청보리밭 뷰는 이른 봄에 볼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잘 갈아놓은 흙밭 뷰만 볼 수 있었다. 그래도 밭 위로 올라오는 흙냄새, 노을 지는 햇살과 날아다니는 새들을 바라보자니, 나중에 조용하고 한적한 동네에 위치한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덕이네별당




테라스 밖을 바라보며 긴 하루를 노을 진 아름다운 하늘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싶었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저 밭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겼던 송당리에서의 시간이 아직 생생히 기억난다. 제주에서의 첫 주말을 바람소리 새소리만 들리는 송당리에서 오롯이 나 혼자 보낼 생각을 하니 기대되었던 날이었다.

노을이 서서히 져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
알고보니 강아지 친구가 순덕이다. 재워줘서 고마워 순덕아 ^.^


keyword
이전 06화5월의 제주, 익숙한 것의 새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