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제주, 보물 같은 송당리

제주도에서 2주 동안 살아보기

by 데이지

Day8


송당리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찌감치 일어났다. 나는 어느 여행지에 가던 일출과 일몰을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이유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빛이 물들어 가는 과정이 물감으로 그려놓은 그림 같아서이다. 이 날도 어김없이 시원한 새벽녘 공기 속에 밝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기상.

복층에서 바라본 창 밖 푸릇한 나무들


해가 떠오른 뒤 테라스에서 바라본 늦봄의 청보리밭 뷰는 사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오름도, 밭 주변을 날아다니는 새들도, 모두 자연이 나에게 주는 귀한 하루의 선물들이었다. (비록 테라스 천장에 집을 짓고 있는 새가 날아들까 무서워 방충망을 걷지 못하고 바라보는 주제이긴 했지만)





오전 일찍 나갈 준비 후, 송당리 주변에 가까운 관광지로 비자림에 다녀왔다. 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와보았던 것 같은데, 시간이 훌쩍 지나 다시 와보니 새삼스럽게 좋았다고 느껴지는 곳이다. 온 사방이 푸릇푸릇한 그늘로 드리워져여서였을까. 피톤치드가 주는 건강한 기운을 온몸으로 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비자림 입구
비자나무를 보러 가는 길목에 갈림길이 있다
비자나무는 굉장한 거목이다
이건 아마도 사랑나무였던 것 같다.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듯한 모습




한참을 걷고 난 후 배고파져서 유명한 송당리 로컬찐맛집 해장국집으로 향했다.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언제부터인가 한식이 점점 더 좋아진 이후로, 예전에는 잘 먹지도 않던 순대국밥이나 해장국을 이제는 찾아다니면서 먹게 되었다. 로컬 맛집인 만큼 웨이팅이 길까 봐 일부러 점심시간을 지나서 방문했었는데, 근처에 이미 식사를 마치고 믹스커피 한잔씩 드시는 동네 아저씨들을 입구 주변에서 볼 수 있었다. 아 이곳은 진짜 로컬 맛집이 맞다는 확신을 안고 들어갔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시점이 여행한 지 약 반년이 지나가는데도 저 보글거리는 사진을 보면 내장탕이 당긴다. (더군다나 일교차가 큰 요즘 날씨에는 더!!)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나오는 꼬들한 건더기에 반하고 또 빠져들게 되었다. 매콤하고 뜨겁지만 속 시원한 저 저 국물에 바로 녹아들었다. 송당해장국 내장탕 먹으러 비행기 탈 수 있을 정도!!




내가 송당리에 온 이유는 또 있다.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편안하게 주말을 보내고 싶었는데, 송당리 근처에는 유명한 소품샵과 서점, 카페들이 곳곳에 있어 내가 원하는 소소한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해장국집 바로 앞, 옆 길목들에 위치) 그중 제일 첫 번째로 방문한 곳은 파앤이스트. 작은 공간 안에 다양한 소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직원분께 여쭈어보니 대부분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수작업으로 진행하여 판매한다고 하셨다. 그런 정성 어린 소품 하나하나들이 아기자기하면서도 제주의 이미지와 제법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는 참새와 같은 나는 (필요한 것만 사겠다는 정신력으로) 여행기간 동안 가볍게 사용할 작은 에코백과 다육식물을 키워볼 손바닥만 한 체크무늬 화분을 구매했다.

주차한 길목에 위치한 파앤이스트의 또 다른 매장




길목을 지나다니면서 구경의 연속(이라 쓰고 사진의 연속이라 읽는다). 골목 곳곳에 송당리 특유의 감성을 만들어내는 곳이 많았다. 한 컷 한 컷 사진에 담으면서 아름다운 이 골목을 계속 기억하고 싶었다.

풍림다방은 매우 유명한 곳이라 웨이팅 때문에 엄두도 못내었다
작은 독립서점인 서실리책방



술의식물원은 예전부터 제주여행 리스트에 올렸으나 항상 동선상, 시간상 가보지 못했었는데 이번에서야 방문한 곳이었다. 풍성한 플렌테리어가 조성된 작은 카페가 마치 숲 속 같아 여유롭게 낮맥을 즐기고 올 수 있다는 리뷰에 꽂혀 간 곳이지만, 펜션에서 송당리까지 걸어가기에는 도로가 위험해 어쩔 수 없이 차를 끌고 가서 낮맥은 성사시키지 못했다. 그래도 술 대신 시원한 제주 녹차를 마시면서 1시간 정도 독서를 즐기다 왔는데, 마치 마당에 식물이 가득한 할머니의 시골집에서 따듯한 햇살을 받으며 주말 오후 여유를 즐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술의 식물원에서 한참을 쉬다가 나와서 다시 걸었던 송당리 골목. 송당리 대로와 골목 구석구석은 사진 속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진다.

카페 시시소소는 에그타르트 맛집인데 다 팔리고 마지막 하나 겨우 겟했다


멕시코 바이브가 흘러 넘치는 산토


테이퍼 캔들이 신기해서 들어간 다품종소량생산




송당리 투어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아쉬워 급 찾은 송당무끈모루에 가보기로 했다. 송당무끈모루는 안도르 카페 앞에 위치한 유명한 포토존인데, 웨딩촬영 두 팀이나 대기 중이었고 그 뒤로도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는 일행이 몇 팀 있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제주 여행기를 풀다가 알게 되었는데, 결혼한 한 친구도 송당무끈모르 유명세 초기에 웨딩 스냅 촬영한 경험이 있다며 웨딩 스냅 성지?라고 했다.) 기다리기가 애매해졌던 (그리고 웨이팅이 싫었던) 나는 그냥 대충 바로 옆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봤는데 충분히 예쁜 모습이 담겼다. (그래도 포토존 위치에서 찍었다면 더 예뻤을 거다.)

이미 아침부터 커피와 녹차를 많이 마셔서 안도르 카페는 다음에 방문해보기로 했다.



하루 종일 송당리를 돌아다니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이 날의 하루. 곱씹어 보면 아마도 북적거리는 관광객들이 넘쳐나는 곳이 아닌, 제주 일상이 스며들어있는 작은 동네를 경험하게 되어서 마음이 편안한 하루였던 것 같다. 펜션으로 돌아가는 길도 마치 친한 친구 집으로 다시 놀러 가는 익숙한 기분이었다. 하루 만에 순덕이(펜션 강아지 이름ㅋㅋ)가 친구처럼 느껴졌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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