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2주 동안 살아보기
Day 10
취다선 리조트에서의 이튿날, 피곤한 몸을 일으켜 대략 2시간 정도 아침 차 명상과 동적 명상 클래스를 들었다. 요가를 향한 열정이 아침잠 많은 나의 만성피로를 이겼다고나 할까. 아침 차 명상은 30분 동안 명상을 하고 남은 20분 동안 따뜻한 차를 음미하면서 중간중간 명상하는 클래스였는데, 솔직히 말하면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락날락했던 것 같다. 졸면 안 돼.. 아침밥 먹고 싶다.. 아냐 집중해... 오늘 스케줄은 뭐였더라... 아직 명상은 많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반면에 동적 명상 시간에는 다 같이 서서 음악에 맞춰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뼈와 근육의 움직임 자체를 인지하고, 또 변하는 리듬에 맞추어 변형된 동작을 마음껏 만들어 보는 수업이었다. 처음에는 이게 명상인가 싶었고, 다른 투숙객들처럼 쭈뼛쭈뼛했으나, 리듬이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나를 포함해) 모두들 춤?을 추고 있는 마법을 볼 수 있었다. 클래스가 끝나고 보니 나름 역동적이었던 움직임을 통해 그동안 억눌러져 있던 감정과 스트레스를 해소한 듯, 기분이 한 껏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조식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취다선 리조트의 조식은 리조트 앞 오조미야 식당에서 미역국/전복영양죽/들깨쑥떡국/들깨보양장어탕 중 선택할 수 있었다. 솔직히 크게 기대하지 않고 들깨쑥떡국을 주문했는데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반찬도 정갈하니 맛있었고, 부드러운 쑥떡이 들어간 들깨국은 속을 시원하고 든든하게 만들어주었다. 아침일찍부터 부지런히 사용한 에너지를 조식으로 다시 꽉 채웠으니 얼른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정말 가보고 싶었던 카페 중에 한 곳인 오른은 리조트 바로 옆 차로 2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는데 시간 맞춰 오픈런한 터라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덕분에 예쁜 포토 스팟들도 자유롭게 찍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바다를 마주 보는 편안한 자리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오전 시간을 조용한 커피타임으로 보낼 수 있었다. 자리 곳곳마다 조금씩 다른 매력포인트가 있어 인기가 많을 것 같았고, 주말이면 사람이 많아 착석할 자리도 못 찾을 핫한 신상 카페일 것 같았다. 디저트 종류도 많았는데, 조식을 알차게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체리 토핑이 얹어진 체리주빌레 파이를 하나 주문했다. 맛은 말모말모. 달달하니 아메리카노랑 조합이 찰떡이었다. 원래는 다른 시그니처 음료가 있다고 하는데 그건 다음 방문 때 마셔봐야겠다.
혼자 카페에서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낸 뒤, 당일 제주로 날아온 직장동료와 합류하여 성산일출봉에 올랐다. 근데 날씨가 갑자기 너무 더워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따듯하면서도 바람이 불면 시원한 날씨였는데, 이 날 따라 한 걸음씩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한여름처럼 땀이 우수수 내려오는 것 아니겠는가. 둘 다 긴바지 차림이었는데 덥다며 어느새 무릎까지 바지를 접어 올리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가 제주 여름의 시작인 듯했다.
그 더위를 이겨내고 정상에 도착했을 때의 희열이란...! 초록 빛깔이 카펫처럼 깔려있어 신비로워 보였다. 그 신비로움 때문에 마치 저 아래에는 우리가 모르는 동식물들이 몰래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잠시 해보았다. (영화 ‘돈 룩업’에서 지구가 멸망하고 몇만 년이 지나 깨어난 냉동인간들이 만난 새로운 세계처럼)
성산일출봉에서 실컷 사진 찍고 하산하는 길에는 근처 어촌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 폭의 산수화처럼 보이는 해안 절벽도 절경이었다. 오르는 계단이 덥고 조금 힘들긴 했지만 나중에 꼭 부모님을 모시고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일출 보러도 와야지.
성산일출봉을 내려와 근처 흑돼지 식당인 독고집에 갔다. 지난 제주 방문 때 휴무로 실패했던 곳인데, 다행히 이날은 오픈! 낮부터 흑돼지 먹으러 온 우리가 사장님은 다소 당황하신 듯 한 건 기분 탓일까 ㅋㅋ
우리는 통항정살 + 흑오겹살로 시켰는데 두툼하고 꼬들한 게 맛있는 건 물론이고, 양도 푸짐해 2명이서 먹기 매우 충분했다. 뱃길이 열린 우리는 추가로 시킨 김치찌개 덕분에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 그래도 제주에서만큼은 흑돼지 실컷 먹어야지.
리조트 방향으로 가다가 우연히 찾아 들렸던 브라보비치 카페. 여기는 정말 동남아 해변가에 놀러 온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었다. 실내석도 있었지만 일단 우리는 넓은 마당에 푹신한 매트리스를 깔아 둔 야외석에 자리 잡았다. 누가 제주도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동남아 리조트 비치펍에 놀러 왔다고 할 정도로 해외 휴양지 분위기였다. 때마침 점심 먹고 노곤 노곤했던 터라 우리는 누워서 잠시 낮잠을 자거나 하늘을 보면서 멍을 때렸다. 사진에 다 담진 못했지만 곳곳에 포토존이 있고 다양한 타입의 좌석이 많아 이국적인 느낌의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많을 것 같았다.
리조트로 다시 돌아와, 이날은 혼자가 아닌 둘이서 티클래스를 들었다. 어제와는 다른 타입의 차실이었는데, 이 날 많이 걸어 다녔던 우리가 차를 마시며 편하게 휴식을 취하기에 너무도 좋은 좌식 방이었다. 어제와 동일하게 티 마스터가 다기를 설명하고 티를 내려주면서 우리는 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마침 싱잉볼이 있어 사용법을 배워 울려보기도 했다. 그때 참 힘든 한 주를 보낸 동료에게도 휴식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같이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키는 게 도움이 되었으면 싶었다. 내가 어제 느낀 그 평온함을 동료도 똑같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티클래스를 마치고 어김없이 저녁 요가 클래스인 인요가와 소리명상에 참여했다. 인요가는 지난번 아가스트요가에서 들었던 수업과 동일하게, 내 몸을 중력에 맡긴 채로 자연스레 힘을 풀고 이완시키는 요가였는데, 여기서는 더 많은 도구를 활용하고 다양한 자세에서의 근육 이완을 체험했다. 솔직히 너무 편안한 나머지 코 골면서 잠들뻔했다.(실제로 코 고시는 분들도 있었다.) 소리명상은 클래스 내내 수업 지도자의 리드에 맞춰 내 이름을 부르면서 그 안에서 나는 소리와 가슴 울림을 인지하고 느끼는 시간이었는데, 평생 내가 부를 내 이름을 이 날 다 부른 것 같았다. 내 이름 석자를 또박또박하게 불러줄 사람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내 스스로가 부르는 일은 더욱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시간만큼은 우리 부모님이 지어주신 내 이름을 정성스럽게 한 자씩 부르고 귀 기울여 듣는 시간을 가지면서, 이름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더 나아가서 자존감까지 채울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나뿐만이 아니라 동료도 이 수업을 통해서 뭔가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새로운 감정을 느꼈고, 지친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한 것 같아 좋았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우리는 리조트 내 기념품샵에서 이리저리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밀린 빨래 때문에 근처 코인 세탁소까지 갔다 오니 거의 열두 시가 다 돼서야 각자 객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피곤 덩어리 그 자체이긴 했지만 이 날 동료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눠볼 시간을 가졌다는 것, 그리고 동료에게도 위로가 된 하루였다는 것, 또 제주 10일 차도 보람차게 보냈다는 생각에 뿌듯하게 잠든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