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제주, 전 행복한 사람입니다만?

제주도에서 2주 동안 살아보기

by 데이지

DAY 3


셋째 날 오전은 요가원에 운전해서 가는 길 자체부터가 힐링이었다. 아침 일찍 맑은 기운에 차창을 열어두고 달렸는데, 밖에서 불어오는 산뜻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의 조화, 종달새 노랫소리까지 완벽했다.

오전에 방문한 아가스트 요가원은 잔디마당에 마련된 넓은 마루에서 요가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여기서 머릿속 복잡한 생각은 닫고 아무 생각하지 않는 것에 집중해보고자 명상 수업 드롭인을 신청했었다. 요가원 근처 공터에 주차를 하고 천천히 올라가는데 요가원 입구부터 마당, 요가를 할 마루까지 꽤나 감성적이어서 더 설레었다.


내가 신청한 '호흡과 명상' 수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평화로웠다. 의식적으로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느껴보고 그 숨을 통해 공기가 내 목과 가슴을 거쳐 배로 차오르는 것, 또 반대로 배에서부터 가슴, 목을 따라 코를 통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느껴보려고 했다.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항상 생각을 멈출 수 없는 나로서는 어려운 연습이었지만, 최대한 머릿속의 잡생각들을 지워버리려 노력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다른 생각이 떠오르면 그 생각을 하는 나를 멀찍이 두고 지켜보고자 했다. 선생님의 리드에 따라 호흡하며 중간중간 앉고 눕는 자세를 바꿨는데, 여러 자세에서 주는 편안함이 명상의 몰입도를 더욱 높여주였고, 명상하는 동안 들리는 새소리, 산들산들 불어오는 여름 바람, 따뜻한 햇볕이 맘껏 힐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아, 이게 내가 제주에 오고 싶던 이유였음을 느꼈다.

다 같이 요가매트를 펴고 명상했던 마루
매일 이런 곳에서 요가를 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상상해본다




오전 요가가 끝난 후 커피러버는 어김없이 카페인 충전하러 '카페루시아'로 달려갔다. 오후에 해가 넘어가면 역광이기 때문에 오전에 무조건 방문해야 한다고 들어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조금 걸리는 거리를 차로 부지런히 달렸는데, 역시나 카페 전경으로 박수기정과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아주 멋진 곳이었다. 끝없이 넓고 깊어 보이는 바다가 물결칠 때마다 나는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함께 느꼈다.

도착하자마자 찍은 오션뷰
그리고 나가는 길에서 찍은 오션뷰. 박수기정이 조금 어둡게 보이기 시작한다




키아나요가원에서 두 번째 드롭인 수업을 듣기 위해 오후에 다시 사계리로 넘어왔다. (나의 일부 지인들은 내 SNS를 보고 태릉선수촌이 최종 목표냐는 장난스러운 DM을 보내왔다.) 오전에는 매우 정적인 자세에서 호흡에 집중했다면, 오후에는 많은 근력과 밸런스를 요구하고 오랜 시간 부동으로 유지해야 하는 하타요가를 수련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따라가기 영 쉽지 않았다. 아니 어려운 동작이 훨씬 많았다. 아직은 부족하기에 더 많은 연습이 필요했던 요기니였음을 2시간 동안의 수련 내내 절실히 깨달았다. 다른 수강생분들이 멋있게 척척 해내는 시퀀스들을 나는 핸즈온을 통해 겨우겨우 이어나갔다. (특히나 나는 피존 포즈에서 골반 중심잡기가 항상 힘든데) 그래도 키아나 선생님의 핸즈온 도움을 받아 겨우 정렬을 맞추고 스트랩을 반쯤 접은 뒷다리에 걸어 간신히 끌어올리는 데까지 성공했을 때에는 그동안 가로막혔던 큰 장벽을 깨뜨렸다는 사실에 신나기까지 했다.


사실 누가 더 잘하나 못하나의 비교우위를 점할 수 없는 게 요가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체형도 조건도 다 다르니까. 갈 수 있는 만큼까지만 나의 몸을 자연스럽게 놓아주어야 한다고 배웠지만, 이 날 아사나 완성을 향한 욕심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던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다. 어쨌든 지친 몸으로 터덜터덜 요가원을 나오긴 했지만 앞으로 돌아가서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반복 수련해서 더 단단하고 견고해진 자세와 멘탈로 다시 일어서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드롭인 수업을 마친 후에는 근처 사계해안을 구경하러 갔다. 사계해안은 용머리해안과 비슷하게 까만 돌바닥에 많은 구멍이 있어서 날씨가 맑은 날 와서 봐야 반짝반짝 예쁘다고 들었다. 이 날은 실제로 햇볕이 가득했는데 반사된 빛에 바닷물이 유리조각처럼 반짝거렸고, 돌 사이에서 기어가는 작은 게들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얕게나마 철썩거리는 파도소리와 바다내음이 하루 종일 요가로 땀 흘렸던 몸을 차분하게 식혀주었다.

반짝이는 해변가
삼각대로 혼자 찍던 사진. 여기서도 산방산이 빠질 수 없다





숙소로 돌아가기 전 비밀의 문 사진으로 유명한 티카페 '테'로 잠시 넘어가 보았다. 하도 땀을 많이 흘린지라 수분 섭취 겸 갔으나 막상 티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다 보니 선뜻 고르기가 어려웠다. 감사하게도 사장님은 여러 종류의 찻잎 향을 맡아보고 고를 수 있도록 친절히 설명해주셨고, 고민하던 나는 블랜딩 (캐모마일, 히비스커스, 페퍼민트의 조합)으로 주문했다. 블랜딩 차를 골랐기 때문에, 우려진 차가 나올 때 (시향 해볼 수 있도록) 찻잎을 따로 비커에 담아주셔서 맡아보았는데, 향 자체는 적당히 산뜻하고 달콤했다. 이 날따라 목이 매우 말랐던지라 벌컥벌컥 들이켰는데, 텁텁하지 않고 깔끔했던 그 맛이 등산 중에 마시는 시원한 약수물과 비슷했다. 매일 마시는 커피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구먼.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나올 것 같은 비밀의 문
T1블랜딩 (캐모마일 + 히비스커스 + 페퍼민트)
카페 밖으로 보이는 노을 지는 정원이 너무 예뻐 한 컷





다시 안덕면으로 돌아와 하루 종일 굶주린 배를 채울 가성비 맛집인 '식과함께' 를 찾아갔다. 나처럼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1인석도 따로 있어 편하게 창밖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주문한 메뉴는 갈치정식 1인 한상(가득한 한상차림이 9,900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인데, 리뷰처럼 든든한 양의 맛있는 갈치구이와 고등어조림을 모두 먹어볼 수 있는 메뉴였다. 제주갈치구이는 짭조름하면서 정말 부드러웠고 고등어조림은 자극적이지 않게 매콤한 맛이어서 양념에 쌀밥을 한 톨도 안 남기고 싹싹 비벼먹었다. 다양한 반찬도 미역국도 어느 것 하나 맛없는 게 없었다. 너무 배불리 잘 먹어서 계산할 때 사장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도리어 내가 하게 됐다. 이런 인심 좋은 맛집이 있어서 다음에도 또 안덕면을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둑어둑해져서야 숙소로 돌아와 문을 열려고 하는데 테이블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노랑이 발견. 이 숙소에 내가 본 길냥이들은 세 마리 정도 되었고, 사진에는 노랑이 한 마리만 있지만 그 외에도 무서움을 좀 타는 냥이와 어디선가 달려와서 다리에 비비적 애교 부리는 개냥이도 한 마리가 더 있었다. 여기뿐만 아니라 제주에서 이동하는 곳마다 길냥이들이 많아서 안쓰럽긴 했지만 이들과 인사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한편으론 곳곳에 버려진 들개들로 인한 주민피해가 심하다는 뉴스도 봤었기에 쫄보인 나는 겁도 한가득 먹었지만 말이다.)

식빵 굽는 냥이




이 날 하루도 부지런히 보낸 터라 몹시 피곤하긴 했지만, 당일 느꼈던 감정들을 잊고 싶지 않아 겨우 일어나 침실에서 (애정 하는 플리 채널 중 하나인) 떼껄룩을 들으며 다이어리를 써 내려갔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날 기록한 다이어리를 지금 와서 보니 "나는 오늘 하루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다."라고 적혀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이 될 때까지 (설렘과 평안, 감탄과 절망에서 위로까지) 내면에서 정말 많은 감정들을 거쳤는데 결국 마무리는 행복을 느꼈다니 다행이다.

침실에서 빔프로젝터로 듣던 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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