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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랜드 Jun 29. 2024

아이야

나와 비슷한 네게 보내는 편지.


 아이야, 너는 사계를 갖거라


모래 위를 걷던 발이 봄의 풀을 만날 때엔

가장 단조로운 마음으로

형용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거라


그런 사람과

절대 사고를 허락하지 않는 사랑을 하거라

절대 슬픔을 허락하지 않는 사랑을 하거라


그때엔 그리하거라


더 이상 풀잎에 몸을 누일 수 없고

풀잎 위에 뜨거운 빗방울이 떨어질 때엔

너만이 볼 수 있는 하늘로 만든

우산을 쓰거라


그런 하늘 밑에서

다시는 보지 못할 차가운 비를

아무 저항 없이 떨어트리거라


쉬이 그리하거라


차가운 빗방울이 초연하게 떨어지고,

비에 떨어진 열매가 젖을 때엔

형용할 수 있었던 사람에 발 밑에

낙엽을 떨어트리거라


낙엽이 가을의 편지, 다시 돌아온다는

가을의 편지가 되어

바람에 흩날리도록 내버려 두거라


겨우 그렇게라도 하거라


낙엽이 바람에 끝내 흩날리고,

흩날린 바람이 돌고 돌아 겨우 날카로운

동풍이 되어 돌아올 때엔


발을 내딛음에도 잡히지 않을

바람이 온전히 남아있을 때엔


그제야 모래로 돌아가 발을 묻거라

나를 묻어주거라


아이야, 너는 너의 세계를 갖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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