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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한국 5년을 캐리어 2개에 담아왔다

가진 것에 감사하게 되는 곳

by Dahi

이민 올 때 내가 비행기에서 가지고 내린 건, 캐리어 2개와 대형견용 켄넬 그리고 나의 반려견. 지난 한국에서의 5년을 캐리어 2개에 담아왔다. 물론 겨울 옷과 요가 옷, 그리고 책 몇개를 택배로 먼저 부쳤다.



짐을 풀고 보니 가져온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행히 이 집을 살 때 가구와 식기는 포함되어 있었다. 밥을 먹을 수 있는 식탁과 접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고, 한국에서는 넘쳐 흐르던 물건들이 이곳에서는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금방 깨달았다.



24시간 열려있는 편의점과 달콤한 디저트와 시원한 음료가 있는 카페, 맵고 달달한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생각난다. 내가 사는 마을엔 슈퍼 2개와 빵집 1개. 카페 1개. 그리고 몇개의 식당이 있다. 슈퍼는 시골의 동네 슈퍼를 생각하면 되고 빵집은 빵집이라기엔 뭔가 애매한 곳이다. 카페는 정말 커피만 판다. 식당은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앞으로도 가지 않을 것 같다. 음식은 짜고 고기를 위주로 판다는 남편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것을 사려면 큰 도시로 나가야한다. 차로 20분 남짓. 하지만 남편의 스쿠터로는 30분 정도 걸린다. 도시로 나가도 내가 원하는 걸 다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아마 이 나라에 없을 수도 있다.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큰 상심은 없다.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 뿐.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우리가 모두 이렇게 조금씩 부족하게 살아간다면 세상이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 무조건 새로운 걸 사기보다는 가진 것을 고치고 아껴서 쓰는 습관. 그리고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고. 그게 당연한 일이 되는 곳.



한국에 놓고 온 많은 것들이 생각이 난다. 오기 전에는 가서 또 사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택배를 부칠 때는 가서 또 사느니 그냥 가진 것을 쓰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택배를 보내는 값을 생각하니 가서 사는데 더 싸게 먹힐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 돈을 들여서 별 볼 일 없는 옷과 물건들을 보낸 이유는 지구에 짐을 더 늘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진다고 하니 무언가 부족하더라도 세상 일을 잘 알 수 없는 이 시골 마을에서 한적하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첫째, 타마(반려견)가 행복한 모양이다. 이웃들이 강아지를 꽤나 예뻐해주고 근처 산과 들로 매일 산책을 나간다. 공기도 굉장히 좋다. 둘째, 식당과 카페는 없지만(한국식) 원래 한국에서도 많이 나가는 편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집순이라 이곳에서도 차이를 잘 모르겠다. 빵과 케익은 내가 구울 수 있고, 음식은 내 입맛에 맞게 요리해서 먹는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장점은 많이 있다. 물론 큰 단점도 있지만, 해결할 수 있는 단점이기에 시간을 두고 기다려본다. 식재료. 정말 대도시에 나가야 한국 식재료를 구할 수 있다. 이곳에 온지 한달이 거의 다 되어가도록 한국음식이라고는 가져온 김 뿐. 그래도 아직 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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