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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슈퍼는 가까워졌는데 화장실은 멀어졌다

반려견과 포르투갈 이민

by Dahi

벌써 포르투갈에 온 지, 2주일이 되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매 순간이 특별했다. 처음 며칠은 시차에 적응하느라 하루가 온통 없어져 버린 적도 있었고, 그 후에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이렇게 흘러있었다. 사실 굉장한 집순이인 나는 이곳에서도 집순이다. 그래서인지 한국과 크게 다른 점은 잘 느끼지 못하겠다. 온전히 혼자 온 것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던 강아지 두 마리와 남편이 있어서일까? 단지 새 집으로 이사를 온 기분이다.



바뀐 점은 집 근처에 슈퍼가 있다. 그것도 두 개씩이나. 시골마을이긴 하지만 그래도 가까이에 편의시설들이 있다. 한국에 살던 집은 도시에 있었지만 우리 집은 외진 곳에 있어서 편의점도 10분은 걸어야 갈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이것은 스스로에게 굉장한 발전.

슈퍼가 가까워진 대신에, 화장실은 좀 멀어졌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저희가 이사 온 집은 3층짜리인데, 주로 생활하는 공간인 부엌과 거실은 2층에 있고, 샤워실과 화장실은 각각 1층과 3층에 있다. 화장실을 이렇게 자주 가는가 싶을 정도로 거리가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슈퍼와 화장실, 둘 다 가질 수는 없었나보다.


그리고 또 바뀐 점 하나는, 강아지들과의 생활. 대형견 2마리를 키우고 있다 보니, 산책은 하루에 적어도 2번은 나가야 한다. 한국에서는 강아지 산책 때문에 곤란한 적이 많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다녀도 사람들의 시선과 핀잔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에 정착하기 더 힘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우리 집은 마당이 없지만 강아지들이 집 앞 골목을 마당처럼 돌아다닌다. 먼저 이곳에 온 벨라(라브라도 레트리버)는 이 마을의 유명인사가 되었는지 이웃들이 밖에서 벨라를 부르곤 한다. 이렇게 우리 강아지들을 좋아해 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정말 행복한 일.



한국에서는 강아지 산책이 의무처럼 느껴졌다면, 이곳에서의 산책은 여유처럼 느껴진다. 골목을 걸으며 이웃이나 다른 강아지들과 인사를 하고, 이제는 도로가 아니라 산 길을 걷는다. 분명 이곳은 한국에 비해서 임금이 높은 편도 아니고,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분명 삶의 양보다 질의 가치를 높게 사는 사람이라면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우리의 경우.


무작정 포르투갈 시골 마을에 있는 오래된 집을 사서 이사를 온 우리만 보더라도 꽤 계획적인 사람들은 아니지만, 정말 운이 좋게도 이곳에 오게 된 것 같다. 포르투갈 사람인 남편도 이곳은 처음이었고, 오랜 외국 생활로 포르투갈에서의 공백이 컸던 탓에 처음엔 많이 헤매기도 했지만(물론 지금도) 우리가 맨땅에 헤딩하듯 한국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던 것에 비하면 굉장한 발전.


이번주에는 한국 집의 보증금을 돌려받았고, 타던 자동차의 보험도 해지를 했다. 한국에서 하고 왔어야 할 일들을 급하게 오느라 이곳에서 처리했지만 역시나 한국은 빠르고 정확하니 그걸 믿고 온 것. 그에 비하면 이곳은 느리지만 걱정이 크게 없다. 제가 요즘 하는 걱정이라고는 그냥 그런 것. 떡볶이를 먹고 싶다거나 닭갈비를 먹고 싶은데 소스가 없다거나 하는 그런 걱정 아닌 걱정들 하하하.



물론 미래에 대한 걱정도 불안도 있지만, 지금 현재를 즐기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조금씩 언어를 배우고 이웃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나도 이 사회에서 몫을 조금이라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목표가 아닐까. 여러 상황 속에서 그래도 나에게 위안을 주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건, 강아지들. 강아지들 때문에 이곳에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우리 친구들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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