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포르투갈에 온 이유
처음 포르투갈에 온 것은 약 10년 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 뒤인 10월의 중순. 순례길을 같이 걸은 친구와 함께였다. 내가 처음 느꼈던 포르투갈은 밝고 경쾌했다. 어딘지 모르게 정겨웠고, 1년의 유럽생활을 마무리하던 곳이라 더 애틋하게 남았다. 화려한 타일로 무장한 건물들과 형형색색 각기 다른 집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스페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좀 더 정겹게 느껴졌던 곳. 그 이후 대만여행을 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우리는 먼 길을 돌아 포르투갈에 왔다.
한국 생활 초반, 포르투갈로는 돌아가지 않겠다 말하던 남편이 생각난다. 그 이유를 물으니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미래를 계획하기 힘들다는 것. 사실 시부모님이 예전부터 사업을 하신 덕에 부족하지 않게 자란 남편이지만 현재로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우리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부모님의 사업은 상황은 좋지 않아 졌고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으셔야 했다. 아니 그보다 더한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포르투갈로 가기로 했다. 왜?
한국에서의 생활이 바쁘고 힘들다고는 하지만 여러 혜택을 누리며 경제생활을 할 수 있다. 취미생활이나 여행을 다니면서도 저금을 할 수 있기도 하고, 잦은 외식도 가능하다. 우리도 이 점이 좋았다. 남편과 나는 많이 벌지는 못했어도, 나름대로 생활이 괜찮았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은 진지한 얼굴로 나에게 말했다.
'나 포르투갈에 가야겠어'
첫 번째 이유는 한국의 겨울. 포르투갈은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온화한 겨울이다. 그런 곳에서 나고 자란 남편은 따뜻한 날씨가 좋아 태국에서 3년 동안 지냈을 정도로 여름을 좋아한다. 한국에서의 첫겨울, 남편은 눈을 보고 어린아이처럼 신나 했지만 그것은 그날 하루뿐이었다.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개산책뿐 아니라 프리랜서로 일하는 남편의 직업 특성상 이동이 많아 굉장히 불편했다. 물론, 나는 이 점에 대해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한다. 남편은 오토바이를 몰았다. 오토바이는 겨울이 되면 위험한 것뿐 아니라 느껴지는 추위가 엄청나다. 초반에는 남편에게 그러니 오토바이를 왜 몰고 다니냐라며 엄청 잔소리를 했지만, 오토바이를 사 준 것은 결국 나였다.
두 번째 이유는 대형견 두 마리. 우리는 한국에 와서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두 마리 모두 남편이 원했지만, 나중에는 각자 한 마리씩 담당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대형견을 키운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두 마리씩이나. 개 산책을 할 때면 느껴지는 시선들과 퉁명스러운 말들, 무엇보다도 산책할 곳이 마땅치가 않다. 한국말도 못 알아듣는 남편을 향해 매일 하루에 두세 번은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다른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하나 더 꼽자면 공기. 남편은 비염이 있는데, 한국에 와서 더 심해져 마지막 해에는 매일 콧물을 달고 살았다. 비염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더군다나 남편은 사람들과 말을 하는 직업이었다. 매 해마다 공기의 질은 나빠지기만 했다. 결국 참다못한 남편은 나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이곳에 온 후. 남편이 원했던 모든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나의 경우에는 하나만 빼고. 한국에서는 개 때문에 산책을 하기 힘들었다면, 이곳에서는 사람들 때문에 산책을 하기가 힘들다. 이유가 뭔가 하니, 워낙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한 골목을 지나 한 이웃을 만나면 남편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또 한 골목을 지나 다른 이웃을 만나면 또 다른 수다의 장이 열린다.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는 나는 멀뚱멀뚱 개를 쓰다듬고 있다가 그들과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본다.
그러다 문득 생각해 본다. 만약 내가 이곳에 오랫동안 지내게 되어 자유롭게 말하고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면 나도 지나가는 이웃들을 붙잡고 하하 호호 수다를 떨게 될까? 그때는 길을 걷다가 눈이 마주치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