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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긴 일요일이 한국보다 빨리 오나봐

일요일마다 생각이 나서일까

by Dahi

한국에서는 주말에도 일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 주말이 다가오는 설렘은 잘 없었다. 더군다나 나는 평일에 쉬는 게 더 좋았다. 북적이지 않는 카페에 한가로이 앉아있는 오후 같은 느낌이랄까. 나의 일주일은 쉬는 날을 기점으로 리셋되어 다시 돌아가곤 했다. 나에게는 쉬는 날이 일요일이 되는 느낌.


포르투갈에 와서 전업주부가 된 현재는 그 리셋점이 사라졌다. 집안일은 매일의 연속이고, 쉬는 날 따위는 없다. 그렇다고 배테랑 주부처럼 일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나의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개산책을 하고 남편 도시락을 싼다. 그리고 10시 즈음 집청소를 한다. 10시라고 정한 것은 청소소리가 이웃의 단잠을 깨울까 염려스러운 마음에서이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10시면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가끔은 참지 못하고 9시 반쯤 시작하는 날도 있지만 대게는 그 언저리에 시작해서 11시 전에는 오전 집안일은 끝이 난다.


남편을 싸주고 남은 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장을 보러 가거나 간단히 빵을 굽거나 디저트를 만들어둔다. 12시가 살짝 넘으면 강아지들 배변을 하러 나간다. 그리고 나서야 내 시간이 난다. 간단히 글을 쓰거나 티브이를 보고 가끔은 낮잠도 잔다. 이렇게 적고 보니 세상 좋은 팔자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렇게 팔자 좋은 나는 가끔 요일을 까먹는다. 일을 하지 않으니 딱히 요일을 체크할 필요는 없다. 남편도 주말에 일을 나가니, 이곳에서도 나에게 일요일은 일요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다 몇 주 전부터 일요일이 나의 리셋점이 되었다. 왜냐하면 동네에 있는 슈퍼들이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으므로. 굳이 필요한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꼭 일요일이 되면 필요한 게 생긴다. 이건 무슨 심술보인지 꼭 일요일이다. 신기하게도 일요일은 빨리도 찾아온다.



가끔 24시간 열려있는 편의점이나 연중무휴의 슈퍼들 혹은 클릭 몇 번으로 집 앞까지 배달해 주는 배달어플들이 생각난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소비를 할 수 있는 곳. 하지만 일요일 하루쯤은 소비에서 자유로워져도 좋지 않을까 싶다.


하루쯤 없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뭘.

이번 일요일은 언제쯤 오려나.

급하지 않게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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