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이제껏 살면서 먹어본 무화과라고는 베이글집에서 크림치즈를 고를 때, 건무화과를 넣고 만든 크림치즈. 그건 무화과를 먹는 게 아니라 분명 크림치즈에 향과 식감만 조금 더해줬을 뿐이었던 그 무화과. 나에게 무화과라고는 그게 다였다. 요즘이야 가을이 오기 시작하면 생무화과를 가득 올린 케이크들을 종종 볼 수 있지만, 내가 먹어본 것은 기껏해야 한두 번뿐이었으려나. 건무화과의 톡톡 튀는 식감과 특유의 향은 좋아했으나 생무화과를 먹고 맛있다!라고 느낀 적은 없었다.
내가 사는 이곳에는 무화과나무가 많다. 길을 걸으며 보는 무화과나무는 처음이었거니와 이렇게 큰 무화과나무는 더더욱 낯설면서도 경이로웠다. 한국에서 내가 키우던 무화과나무는 30cm 남짓, 그렇게 작던 무화과나무도 가끔 무화과를 한 두 개쯤 뿜어내었으나 이내 나무는 시들었다. 가을이 오면서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기하급수적으로 말이다. 집집마다 무화과나무가 있고, 산길을 걸을 때에도 무화과는 나를 반겼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무화과 사냥꾼이 되었다. 이름하야 피그 헌터(fig hunter). 피그가 그 피그가 아니라 무화과를 피그라고 한다.
처음엔 잘 익어 보이는 무화과가 몇 개 있길래 샐러드에 올려볼까 하고 몇 개 따왔는데, 웬걸. 정말 맛있다. 달콤한 게 매력적이었다. 무화과는 따놓으면 금방 물러서 그날그날 아침 산책 때에 몇 개씩 따오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사람들은 왜 무화과를 먹지 않는 거지?라고 물으니, 이곳 사람들은 과일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했다. 이곳저곳 천지가 과일나무여서인가? 그래서 또 물었다. 그럼 왜 슈퍼에서는 과일을 파는 거야? 가끔 이곳에서 나지 않는 과일은 사 먹겠지만, 그건 아주 드문 일 같이 느껴진다. 왜냐하면 가끔 슈퍼 앞을 지나갈 때면 오래 팔리지 않아서 썩어버린 과일 박스들을 보곤 하기 때문이다.
어떤 집의 무화과는 달콤하게 익다 못해 터져서 바닥을 나뒹군다. 이제는 충분히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나무들은 무화과를 뿜어낸다. 배와 사과나무의 아래에는 떨어진 과일들로 가득하다. 그야말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들이다.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고기를 주로 먹는다고 한다. 샐러드라고 하면 양상추와 토마토에 올리브오일과 소금을 뿌린 것이 전부. 그래서인지 슈퍼에도 채소의 종류가 얼마 없어서 조금 슬프다. 한국에서는 이 나물, 저 나물을 계절마다 캐와서 먹는 재미가 있었는데. 물론 이곳에서는 이 과일 저 과일을 따와서 먹는 재미가 있다.
끝없이 생겨나는 무화과를 처치하기 위해(내 의지로 따왔음에도 불구하고) 무화과탕후루도 만들어보고, 무화과 샐러드, 무화과케이크 등 무화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는 중이다. 무화과나무마다 무화과 속의 색도 다르고 맛도 다르다. 그래서 이제 무화과라고 해서 무작정 따오지는 않는다. 이렇듯 나는 지금 무화과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끝날 듯 끝나지 않는 무화과의 계절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곳은 이제 막 포도 수확기가 끝나서 한동안 집집마다 시큼한 포도냄새가 진동을 했다. 수확한 포도들은 집에서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한다고 한다. 이제 올리브 나무마다 올리브가 포동포동해지는 걸 보니, 곧 집집마다 올리브오일 냄새를 풍기겠다. 시골살이는 사람들의 진짜 일상을 마주하게 되어 배우는 것이 많다. 단지 이곳에서 한 계절을 넘겼을 뿐인데도 무화과나무들을 덕분에 내 마음이 이 마을 속에 녹아든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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