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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집을 샀는데 이것까지 준다구?

캐리어만 들고 오면 되는 이민 정착기

by Dahi

포르투갈에 집을 샀다. 남편이 먼저 와서 집을 보고, 영상과 사진을 보냈다. 예산이 적었으므로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마련한 집. 집을 사고 몇 달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마주하게 되었다.


첫인상은 계단. 집에 이렇게 계단이 많을 줄이야.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2개. 초인종이 있는 정문은 1층에 주방으로 바로 통하는 문은 2층에 있다. 정문을 열면 오른쪽에는 세탁실과 화장실이, 정면에는 바로 계단이 있다.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거실이 나온다. 더 올라가면 3층. 3층에는 방 2개와 화장실이 하나 있다. 2층 거실을 지나 짧은 계단을 내려가면 주방. 주방의 끝쪽에 밖으로 향하는 문이 있고, 그 문을 열면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초반에 부단히 오르락내리락했다. 1층 세탁실에서 세탁이 끝나면 3층 테라스에서 빨래를 말려야 하고, 아침에 3층 침실에서 잠이 깨어 내려오면 충전기를 가지러 다시 올라가야 하는 등 이유는 정말 많았다. 한 달이 지난 지금은 그냥 포기했다. 중간엔 작정하고 올라가거나 내려가기 전에 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을 가지고 갔지만 언제나 필요한 건 새로 생기기 마련. 이제는 운동삼아 오르락 내린다. 나는 밖에도 잘 안 나가는 집순이라 이렇게라도 운동이 되니 좋은 점도 있구나 싶다.



두 번째로는 집을 샀더니 가구와 식기, 이불까지 함께 들어있었다. 랜덤박스를 열어보는 기분. 침대와 식탁, 소파, 옷장 등 기본적인 가구들은 전 주인이 쓰던 그대로 있었다. 처음 이 집에 오고 시차적응이 안 된 나는 새벽 내내 이곳저곳 정리를 했다. 처음엔 내가 가져온 캐리어를 정리했다. 그리고 옷장을 열어보니 남편의 널브러진 옷들. 모두 정리해 버렸다. 그리고 다른 옷장을 여니 이불과 담요들 그리고 용도를 알 수 없는 많은 패브릭이 나왔다(이름조차 알 수 없어서 패브릭이라 칭한다).



다음은 주방으로 내려와 서랍들을 열어보았다. 한데 뒤엉킨 스푼과 포크 그리고 나이프, 주방도구들. 하물며 냄비와 프라이팬들도 있었다. 또 다른 서랍을 열어보니 엄청난 양의 접시와 컵들. 카페를 하셨었나 싶을 정도로 많다. 종류별로 나누고, 크기와 색깔별로 분류를 해서 찬장에 정리를 했다. 예쁜 컵들도 많고, 버려야겠다 싶은 물건들도 있었다. 남편은 내 마음대로 하라고 했으니 그냥 내 마음대로 했다.



이민을 간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해외이사를 할 거냐고 묻곤 했다. 그건 우리 옵션에는 없었다. 가져가는 비용이 가서 사는 비용보다 더 나올 것 같았고, 그다지 값이 나가는 물건이 없었다. 필요 없는 몇 가지는 당근마켓에 나눔을 하고, 쓰던 가구와 식기, 용품들은 부모님의 시골집에 모두 보냈다. 이민을 가면 모두 내 마음에 드는 것으로 사야지라는 기대감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물론 비용은 꽤 들지라도 천천히 모아가면 좋겠다는 마음. 하지만 와보니 모든 게 다 있다.


그래서인지 한동안 남의 집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이게 우리 집이야라며 나에게 계속 주입을 시켜주었지만, 쉽사리 마음을 열 수 없었다. 남의 취향에 맞게 꾸며진 에어비앤비 집에 잠시 놀러 온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나는 진짜 로컬이 된 것인데 말이다.


나라면 절대 상상하지 못했을 디자인의 소파와 이불의 패턴을 보면서 이곳의 분위기를 익히고 있다. 아직은 매일이 여행인 것처럼 이 집이 새롭고, 동네가 예쁘다. 별명이 핑키인 내가 핑크색 집에서 핑크색 이불을 덮고 자며 포르투갈 이민을 시작할 줄이야. 다행히 전 주인이 남겨주고 간 식기들과 집의 분위기가 꽤나 마음에 든다. 이 집을 만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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