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떠나온 한국
한국집을 떠나 포르투갈 집에서 3개월을 지낸 뒤, 비자 문제로 다시 한국으로 향한 게 벌써 작년 10월. 프랑스를 거쳐 태국에서의 2개월과 인도네시아와 호주에서의 2개월 그리고 필리핀에서의 시간까지 5개월. 결과적으로는 내 인생에 가장 긴 여행이 되었다. 더 있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몸도 마음도 조금은 지쳤던 것 같다. 그래서 급 결정한 한국행. 갑자기 결정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늦게 도착한 감도 있었지만, 덕분에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다.
필리핀 시아르가오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여정은 이러했다. 숙소에서 새벽 4시 반에 공항으로 향하는 밴을 타고 시아르가오 공항에 도착, 그 후 세부공항에서 마닐라 공항, 마닐라에서 인천. 하루를 온전히 다 보내고 나는 밤 11시에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사실 청주에 있는 부모님 댁으로 바로 향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 시각에는 시외버스도 없었고, 서울에 막 취업을 해서 자취를 하고 있는 막내 동생의 집으로 갈 참이었다. 새벽 버스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한 채 동생에게 다음날 아침 일찍 갈 것이라 말해두었지만 공항을 빠져나와 바로 보이는 것은 서울 시내로 들어가는 심야버스. 그것도 5분 뒤에 버스 한 대가 있었다.
부랴부랴 밖으로 나가니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렇게 나는 동생의 집으로 향했다. 잠실에서 내린 뒤에 택시를 타고 미리 받아놓은 동생의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초행길이기도 하고,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나는 우여곡절 끝에 다행히 동생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밤늦도록 수다를 떨다가 잠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첫 아침. 동생은 출근을 하고 나는 집에 혼자 남겨졌다. 12층. 회색빛의 하늘 아래로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날들과의 완벽한 대비에 잠시 주춤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침대 안으로 더 웅크리고 들어가 누웠다. 그렇게 나의 첫날은 동생이 올 때까지 침대 위에서 잠을 청했던 것 같다.
다음날, 동생과 청주에 있는 부모님 댁으로 향했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오랜만에 한국 김밥을 먹었다. 뭔가 감개무량할 것 같았는데 의외로 덤덤했다. 그렇게 부모님 댁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보은에 있는 시골집으로 향했다. 언니 내외도 저녁에 와서 함께 밥을 먹었다. 왁자지껄한 것이 정말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아마도 ‘타마’(나의 반려견) 없이 온 것은 처음이라 그랬을까.
월요일 아침이 되자, 나는 병원에 들러 간단한 검진을 마치고, 요가원에 갔다. 오랜만에 들어선 요가원에서 마주한 선생님을 보고 눈물이 울컥 날 것 같았지만 어른스럽게 잘 참아냈다. 그렇게 한국에 있었던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요가원에 가서 수업을 들었다. 그중 일주일은 동생의 서울 집에서 지내느라 정작 다닌 것은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이었지만 다른 어떤 곳보다 더 나에게 위안을 주는 공간이었다.
하루는 꽃집을 운영하는 언니를 따라 서울 꽃시장에 갔다가, 동생의 집에 들렀다. 오랜만에 세 자매가 저녁 나들이에 나섰다. 그때는 몰라도 이런 소소한 순간들이 나중에는 더 기억에 남는 듯하다. 동생 퇴근 시간에 맞춰 언니와 둘이 회사 로비에서 기다렸다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쇼핑도 하고 디저트도 먹었다. 문득문득 감정이 몰려오는 때가 있었다. 정말 평범한 순간인데도 혼자 울컥하곤 했다. 그런 순간마다 괜히 뭔가를 잘못한 사람처럼 입술을 질끈 깨물며 숨겨버렸다.
사실 한국에는 조금 더 있을 생각이었으나, 하는 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며칠 뒤에 좋은 비행기 편이 하나 있었다. 그걸 놓치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바로 예매를 했다. 어딘가에 쫓겨가는 사람처럼 그렇게 며칠 뒤에 떠날 비행기를 예매한 뒤에 서울에서 부모님 댁으로 내려왔다. 동생이 사는 서울 자취집에서 일주일정도 지내며 생각보다 더 빈둥거렸지만, 동생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사실 그게 목적이었으므로, 아쉬울 것은 없었다. 혼자서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대견했고, 기특했다.
청주집으로 돌아와 떠나기 전에 이런저런 일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나에게 주어진 것은 단 하루. 그날 아침에 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오늘 뭐 할 거냐고 물었고, 언니와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은행도 가고 핸드폰 대리점도 갔다가, 주민센터도 가고, 경찰서에도 갔다. 사실 이곳저곳 간 것치고는 해결된 일은 없지만, 아무렴 어떠냐 싶었다. 언니와 점심을 먹고, 나의 단골 카페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공항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언니에게 한사코 괜찮다고 사양했다. 얼마나 먼 길일줄 알기에. 나도 그 편이 마음이 편했다. 대신 언니는 집에서 버스터미널까지 데려다준다며 새벽에 찾아왔다. 떠나는 나에게 핫팩과 도시락을 건네주었다. 누군가에게 처음 받아보는 도시락. 언니가 잠시 커피를 사러 간 사이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마지막 모습은 울고 싶지 않아서, 부랴부랴 눈물을 훔쳤다. 고맙다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그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그 말을 뱉어버리면 눈물이 왈칵 쏟아져서 떠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눈물을 눌러 담 듯 그 말을 꾹꾹 눌렀다.
버스가 출발하고 담아두었던 눈물이 쏟아졌다. 도착한 첫날부터 동생과 지냈던 시간들, 시골집에서 다 같이 왁자지껄 떠들며 먹던 저녁, 오랜만에 요가원에서 만난 언니들, 도어록을 누르며 들어오던 엄마와 아빠를 기다리던 저녁, 언니와 보낸 마지막 날까지. 받고만 온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언니가 싸준 도시락을 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들어있었다. 분명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그때 그냥 말할 걸 그랬다. 고맙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