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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i Apr 04. 2024

치즈 살 돈도 없대

포르투갈 이민 현실


한국에서 떠난 지 약 36시간 만에 포르투갈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고 며칠정도는 시차라는 핑계로 하루종일 늘어지게 자기도 하고 강아지들과 산책을 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도착한 당일에는 날이 좋았지만 그다음 날부터는 하늘이 엄청나게 우중충하더니 지금까지 내내 비가 내리다가 이제야 겨우 그친 것 같다.


어느 날 저녁 장을 보러 간 나는 와인 한 병과 블랙올리브를 사 왔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저렴한 것은 와인과 치즈랄까. 와인은 5유로 정도면 맛있는 것을 살 수 있다. 남편은 이제 술을 마시지 않으므로 나 혼자 저녁마다 홀짝홀짝 마셨다. 크래커 위에 올려먹는 치즈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하지만 그 마저도 여유롭게 보낼 수는 없었다. 포르투갈의 평균임금은 800유로. 약 100만 원이 살짝 넘는 것 같다. 전기세며 가스비, 수도세로 10만 원 정도가 나가고, 인터넷과 핸드폰 요금으로 10만 원 정도. 출퇴근용 오토바이로 기름으로 20만 원이 넘게 나간다. 이것저것 합치고 나면 식비로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마저도 내가 없던 몇 달 동안의 지출이었으니, 내가 합세한 지금은 더 지출이 늘어날 예정이다.


남편이 포르투갈에 온 지는 약 1년이 넘었고, 나는 이제야 기껏 며칠, 지난해에 세 달 정도. 아직 비자도 받지 못했다. 포르투갈의 느린 시스템. 왜 우리는 다운그레이딩을 했을까. 오기 전 너무 많은 환상에 젖어있기도 했지만, 남편의 10년 전 포르투갈의 기억만으로 다시 온 이곳은 차갑디 차가운 현실이었다. 바깥만 추운 것이 아니라 내 마음도 추워지는 겨울이 온 것이다.


하루종일 내리는 비를 피해 잠시 잠잠해질 때면 후다닥 강아지들을 데리고 산책을 다녀왔다. 처음 며칠은 그래도 많이 춥지 않아서 어딘가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어느 사이엔가부터 한기가 뼛속까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밖도 추웠지만 집안은 바깥보다 더 추운 현실. 더군다나 난방을 한다 해도 온기가 쉽게 느껴지지 않고, 난방비는 한국보다 더 비싸다.


싸다는 치즈를 살 돈 여유도 없는 지금, 난방은 우리에게 사치였다. 나는 밤이면 등을 새우처럼 엄청나게 굽혀 몸을 웅크리고 잠에 들었다. 일어나 보면 목이며 허리며 아프지 않은 곳을 찾는 것이 더 힘들었다. 매일같이 하던 요가도 추위에 몸이 굳어하지 않게 되었고, 하루종일 소파에 이불을 푹 덮어쓰고 앉아서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는 날이 더 많았다.


따뜻한 겨울나라에서 지내느라 나에게 이번 겨울은 없을 줄 알았는데, 나에게 늦겨울이 찾아온 것이다. 남편은 직장에서 일 년만 채우기로 했다. 아니, 이제 남은 것은 6개월 정도. 현재 5성급 호텔과 4성급 호텔을 왔다 갔다 하며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은 짧지만 1년이라도 이곳에서 경력을 채우고 나면, 스페인 남부로 떠나기로 했다.


그 와중에 나는 다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 3개월도 비자를 받기는 글러먹은 것 같다.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놈의 나라가 이렇게 되는지. 물가는 한국보다 비싼데 월급은 1/3. 삶의 질을 찾아왔다고 했는데, 우리는 지금 그 삶의 질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일단 올해까지만 버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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