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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hi Apr 11. 2024

남편은 이민국에 전화를 했을까?

나는 하지 않았다에 건다



한동안 뼈가 시리도록 나를 괴롭히던 추위가 조금씩 물러가고 있다. 바깥보다 집안이 더 추운 아이러니한 포르투갈의 현실은 나를 집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 그 고통을 그대로 흡수하도록 만들었다. 나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도록 비를 하루 종일 뿌려대던 까닭이다. 그렇게 나는 보름이 넘는 시간 내내 최소한의 시간만 바깥 외출을 한 채, 집안에 머물렀다.


그런 나를 위로한 것은 바로 나의 두 강아지. 한국에서부터 우리와 함께 지낸 만 7살이 넘은 타마(골든레트리버, 수컷)와 이제 곧 만 7살이 되는 벨라(라브라도 레트리버, 암컷). 특히나 나는 타마와 더 가깝게 지냈고, 남편과 나는 각각 한 마리씩 맡아서 돌본다. 물론 서로가 없을 때는 두 마리 모두 케어를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타마에게 더 마음이 간다. 부모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동일하게 데려온 강아지도 이러한데 내가 낳은 자식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곤 한다.


그렇다고 벨라가 미운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 먼저 눈길이 가는가의 문제인 것 같다. 벨라는 고양이 같은 친구이다. 독립성이 강하고 개인주의이지만 말을 무척 잘 듣는다. 타마는 그야말로 딱 골든레트리버. 사람이라면 누구든 좋아하고, 하지 말라는 건 더 골라서 하고, 고지식한 면이 있다. 강아지를 보면 그 주인의 성향을 할 수 있다던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벨라는 남편, 타마는 나를 닮았다.


다시 온 포르투갈의 공기만 낯선 줄 알았는데, 그때는 내가 이곳에서 이떻게 지냈을까 싶을 정도로 적막하다. 하루종일 묵언수행을 하는 것처럼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을 때가 많다. 유튜브를 계속 틀어놓거나 잘 보지 않던 한국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또 보기 시작하니 은근히 재미있어 내내 묶여있기도 했다. 이번에는 어떤 동기부여도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언어를 배우거나 뭐라도 계속해봐야지 하다가도 역시 혼자서는 그 힘이 금방 사그라든다.


남편은 현재 직장에서 1년을 채운 뒤에 스페인 남부로 가자고 한다. 그것 또한 너무나도 좋은 생각이다. 포르투갈의 현재 상황은 정말 좋지 않으므로. 하지만 이렇게 한 번씩 크게 몰아치는 변화라는 파도들이 나에게 부딪힐 때마다 나는 점점 힘이 빠진다. 어릴 적의 나였다면 온갖 변화를 즐기며 그 상황에 적응하려고 더 노력했겠지만 나는 이제 조금 지쳐버렸다. 넘실대는 작은 파도들에도 멀미가 날 것 같으니 말이다.


어느 날 문득 이대로는 내가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새벽 5시 즈음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멍 때리다가 강아지 산책을 다녀오고, 집정리를 하고 나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끝난다. 나는 그 이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했다. 먼저 최소 하루 1시간은 어떤 것이든 운동을 하기로 했다. 조깅을 갈까 생각도 했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많은 마을 특성상 매일은 힘들 것 같아서 40분가량의 뒷산 등산 코스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해야 할 것.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했다. 먼저 남편에게 이번에는 배우자 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지 이민국에 먼저 연락을 해서 물어보라고 했다. (간략히 설명하자면 포르투갈에서 배우자비자를 신청할 경우, 먼저 여행비자로 입국을 한 뒤 여행비자가 만료가 되는 3개월 시점에 맞춰 이민국에 미팅을 잡아 배우자 비자 신청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번에는 이민국에 연락조차 닿지 않아 포기를 하고 출국 후 다시 돌아와야 했다) 이번에는 남편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원했지만 역시나 미적지근한 일처리에 내가 먼저 확실하게 말해야 했다.


이민국에 전화를 해서 이제 이민 신청 약속이 잘 잡힌다면, 나는 3개월을 기다린 후 비자를 신청 후 승인을 받는다. 만약 이민국에 연락을 했는데도 아직 처리가 느리다면 나는 계속 이곳에 이렇게 있을 이유는 없다. 사실 이유라고 하면 우리 강아지들 뒷바라지가 이유가 될 수는 있겠으나, 강아지들은 종종 시부모님들께서 봐주시기로 했다. 두 번째 상황일 경우, 나는 미리 떠날 계획을 세워야 한다.


나는 포르투갈 사람을 만났다. 그는 포르투갈 사람들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다. 그는 어찌 되었든 이곳 사람이고, 나는 한국사람이다. 서로가 가진 가치관이 지극히 다르며 삶의 속도도 다르다는 것이 이제는 분명히 느껴진다. 한국에서 지냈던 7년 동안, 한국어를 하지 못하고,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 남편과 지내면서 나는 많은 일들을 처리해야 했다. 가장이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날의 나는 포르투갈에 가면 나는 이러한 일로부터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을 거라는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아니 한편으로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는 알고 있었다.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걸. 타지에서 가장이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주체적인 삶을 살기로 했다. 어딘가에 의지하지 않기로 했고, 누군가가 너무 나를 의지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의 삶은 그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않으므로.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그로 인해 피해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착한 이기심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사실 그 마음은 이기심이 아니라 알 수 없는 죄책감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 나는 그 죄책감을 때로는 필요한 죄책감이라 부르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내가 남편에게 이민국에 전화를 해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했는데, 그는 과연 전화를 했을까? 나는 하지 않았다에 걸겠다.



그럼? 내일 내가 남편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야지. 그가 안 하면 내가 해야지. 왜? 내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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