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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

롬복에서 발리로 가는 길

by Dahi

몇 주 뒤, 발리로 떠났던 독일 친구 Lukas가 연락을 해왔다. 발리는 언제 올 거냐며. 사실은 처음 인도네시아, 쿠타로 왔을 때의 계획은 2주 후 발리로 떠나는 Lukas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발리에서 오래 지냈던 그는 나에게 그가 지내는 곳과 친구들을 보여줄 생각에 신이 난다고도 말했다. 롬복에서 발리로 가는 여행객들이 많아서 가는 교통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쿠타 메인 로드에 있는 곳 중 한 곳에 들러 발리, 창구로 향하는 교통편을 500 IDR 약 50,000원에 구매했다.


SUV 혹은 승용차로 아침 9시 숙소 앞 픽업이다. 가장 먼저 픽업 차량에 오르게 된다면 운전석 바로 옆 자리에 앉을 것을 추천한다. 차는 항상 만석이므로. 그렇게 2시간 정도를 북쪽으로 달려 방살항구에 도착한다. 페리에 오르기 전에, 오피스에서 약 2시간 정도 대기한다. 딱히 스케줄을 알려주는 건 아니라 사람들을 따라 움직이면 된다. 오피스 내에서 혹은 주변 식당에서 음식을 팔기도 하지만, 나는 작은 도시락을 챙겨갔다. 자주 가던 카페 앞에서 아침마다 파는 도시락인데, 나시고랭으로 골라왔다. 밥을 먹고 따사로운 햇살에 나른해져 한숨 잠을 자고 일어나니 발리로 가는 사람들을 부른다.


여러 업체가 있기에 목에 걸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카드를 준다. 그렇게 인솔자를 따라가면 드디어 보이는 방살 항구, 처음엔 낯설고 어색했지만 이후로도 몇 번은 더 오게 되었다. 배낭은 짐칸에 싣고 작은 가방만 챙겨서 선실로 들어선다. 지난 1월(2024) 발리에서 길리 섬으로 이동할 때 타봤던 경험이 있기에 익숙했지만, 그때보다 더 좋은 컨디션인 건 확실했다. 그리고 조금 전, 점심을 먹고 난 뒤 멀미약을 먹는 것도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원하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아니 곧 누웠고, 그렇게 약 1시간 반을 달려 발리에 있는 파당바이 항구에 도착했다.


파당바이 항구, 이번에는 차를 타고 이동. 물론 한 티켓에 모두 포함이 되어있지만, 차가 주차되어 있는 오피스를 찾아가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지난번에는 이 항구 근처에서 하루를 묵었던지라 대략의 지리는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신청한 업체의 오피스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내 목에 걸렸던 카드는 페리를 탈 때 이미 그들이 가져간 뒤라, 누구도 나의 소속을 모른다. 페리에서 내리면 앞에서 기다리는 많은 호객꾼들의 유혹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이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앞으로 전진.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는 당당함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사실 마음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쪼그라들 데로 쪼그라든 상태.


사람들에게 업체 이름을 불러 보이며 물어물어 드디어 도착한 오피스. 세상에나. 알고 보니 전에 묵었던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오피스. 나는 그때 방 앞에 놓은 작은 탁자 옆에서 커피를 마시며 밖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구경하기까지 했었다. 나는 오늘 바로 그 사람들 중 하나가 되었다. 지금 저 위에서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스침과 동시에 위를 올려다보고 싶지만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까 싶어 의식적으로 시선을 아래쪽에 두었다.


이리저리 헤매느라 내가 너무 늦지 않았나 싶었지만, 나보다 늦게 도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운전사는 10분 뒤에 출발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알렸다. 나는 배낭을 차 트렁크에 실은 뒤,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냥 화장실만 이용하기 멋쩍어 카페에서 작은 쿠키와 커피도 한 잔 테이크아웃 했다. 차 안에 앉아 기다리기를 30분. 문득, 10분 뒤에 출발한다고 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때마침 옆에 앉아있던 사람들도 하나씩 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사람이 한켠에서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던 운전사에서 언제 출발하는지 물어보니 돌아온 대답은 다시 10분 뒤. 그제야 나는 그저 하는 말이구나 알아챘다. 나도 차에서 내려 보이는 곳에 앉았다. 오랜 시간을 달려가야 한다는 걸 알았으므로, 조금이나마 차 밖의 공기를 마시고 싶었다.


우리가 약속했던 10분 뒤라는 시각으로부터 1시간이 조금 넘게 흘렀을까? 약 3시. 드디어 차에 시동이 걸렸다. 차는 낡은 봉고차여서 달리는 도로의 지면을 온몸이 흡수했다. 이 정도의 흔들림도 나의 쏟아지는 잠을 막을 수는 없었겠지만, 이미 아침부터 차에서, 페리에서 줄곧 잠을 잤던 지라 이번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덜커덩 거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갑자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은 피로했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았지만 누군가가 도착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

이 모든 경험이 행복한 피로라는 사실.

창 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이 새삼스레 소중해졌다. 그리고 그 끝에 괜스레 눈물이 났다.


여러 감정과 생각들로 뭉쳐진 눈물방울들을 훔치며 그렇게 나는 3시간 뒤, canggu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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